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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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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국의 14차 전당대회. 다가올 15차 전당대회는 덩샤오핑 이후 중국 권력의 향배를 가늠해 볼 최초의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덩샤오핑의 사망 이후 중국 정치 지도부의 향방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 르고 있다. 지금 중국 권부는 장쩌민 국가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집단지도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집단지도체제는 장 주석을 중심으로 청치국 상무 위원 등 7∼8인이 중앙권력을 장악해 당과 국가를 통치하는 구조다. 하지 만 이러한 집단지도체제의 총설계자이며 관리인였던 덩샤오핑의 사망은 중국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각 그룹들의 파벌성 강화와 내분 격화를 예고 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이한 이해 관계를 가진 정치그 룹들의 상호견제를 전제로 설계된 집단지도체제가 그 최종적 조정자를 잃 음으로써 결국은 내부적 재조정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력투쟁 ‘단기-안정, 장기-격화’
그러나 이러한 권력투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그 귀추에 관해서는 일치하 는 견해를 찾기 힘들다. 우선 권력투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관련해 이미 권력 내부에서 치열한 투쟁이 시작되었다는 다소 성급한 판단에서부터 향 후 1∼2년 사이에는 큰 변화가 없이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판 단에 이르기까지 관측은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안정’, 장기적으로 ‘격화’”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권력투쟁의 귀추에 대해서도 결국 장쩌민체제로 굳어질 것이라는 의견과 집단지도체제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 그리고 격렬한 내분의 결과 중국이 분열될 것이라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권력투쟁은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된 중난하이(베이징시 중 심부에 위치한 정치 지도자들의 집단거주구역)의 권부에서 은밀하게 진행 되기 때문에 권력투쟁이 극도로 치열해져서 표면화되기 전까지는 그 내막 을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래도 앞으로 예상되는 권력투쟁이 대체로 장쩌민, 리펑, 차오스 3인의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덩 사후 명목상은 물론 실질적으로 중국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는 장쩌민(사진. 70) 국가주석이다. 그러나 그의 권력 기반과 대중에 대한 카리스마는 과 거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비록 국가주석, 당 총서기,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등 당·정·군의 최고자리를 모두 차지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맥과 출신이 중요한 중국 정치의 특성상 그는 뚜 렷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장 주석은 앞서 두 지도자와는 달리 혁명 1세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이 누렸던 ‘혁명’의 후광을 기 대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인민들을 휘어잡을 만한 대중 정치가로서의 면모도 부족한 기술관료 출신이다. 1926년 장쑤성에서 테어나 46년 공산 당에 입당한 장쩌민은 지난 47년 상하이교통대학 전기과를 졸업한 뒤 줄 곧 기계 ·전자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지난 85년 7월부터 상하이시의 시장 및 당서기 등의 자리에 있으면서 덩샤오핑의 신임을 쌓은 장은 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 당시 ‘학생 보호’를 주장하다 실각한 자오쯔양(78) 대신 전격적으로 당 총서기에 임명된다. 그 이후 장은 덩샤오핑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지금까지 8년간에 걸쳐 자신의 권력기반을 꾸준히 다져올 수 있었다.
8년 권력 장쩌민 권력기반은 취약
간략한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배경이나 정치적 이력이 그다지 빼어나지 않은 그가 일약 국가 최고권력자의 반열에 오른 것에 관해서는 당시 천안 문사태의 처리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를 보여 온 개혁파와 보수파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장쩌민은 89년 당 총서기에 이어 지난 92년 국가주석직까지 맡은 뒤 소위 ‘상하이방’ 의 인물들을 대거 당과 정부의 요직에 심어왔다. 상하이방은 장의 고향인 장 쑤성과 그의 주활동무대였던 상하이 출신들로 이루어진 정치 계파로, 장 쩌민 국가주석을 떠받치는 핵심 정치세력이다. 상하이방의 대표적 인물로 는 주룽지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 우방궈 부총리, 첸치천 부총리, 딩관 건 당 중앙선전부장, 황쥐 정치국원 등을 들 수 있고, 청칭홍 당 중앙판 공청 주임은 장 주석이 가장 신임하는 직계로 분류된다.
현재 상하이방은 리펑(사진.68) 총리가 이끄는 보수파, 차오스(72) 전국인민대 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이끄는 개혁파와 함께 중국 정계 3대 파벌을 형성하 고 있으며, 이 중 가장 강력한 인맥과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상하 이에 지역적 연고를 둔 상하이방 내에도 정책 등을 둘러싸고 약간의 견해 차이가 존재해 일률적으로 장 주석의 사람들로 분류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 상하이방은 지난해 반부패운동을 빌미로 베이징의 전통적인 정치세 력인 베이징방의 대표 주자인 천시퉁 당시 베이징 시장을 제거함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소식통에 의하면 장쩌민 국가주석은 오는 제15차 전당대회에서 현 상하이시 간부들을 중앙으로 대거 중용하는 등 상하이방 중심의 세력 구축에 한층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현재 당내 서열 2위에 올라 있는 리펑 총리는 장 주석의 정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다. 리펑은 보수파의 대표 주자면서 혁명 1세대 원로의 자녀들로 구성된 소위 ‘태자당’을 이끌고 있다. 그는 천안문사 태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일로 인해 정치적 부담을 안기도 했지만, 보 수원로그룹의 강력한 지원에다 지난 몇년 동안 중국의 개혁·개방을 안정 적 국면으로 이끈 공로로 정치적 입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강화해왔다. 하 지만 이로 인해 천안문사태의 원죄에서 기인한 낮은 대중적인 지지도라는 그의 약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리펑은 1928년 쓰촨성 청두 태생으로 공산당원이었던 친아버지가 국민당 군에게 살해된 뒤, 중국 혁명의 제2인자인 저우언라이의 양자로 키워졌다 . 55년 옛 소련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베이징전력공급국에서 주 요 간부직을 거친 뒤 79년 전력공업부 부부장, 82년 중국 공산당 제12기 중앙위원회 위원 등으로 순탄한 정치적 행로를 걷는다. 이후 83년에는 국 무원 부총리, 85년에는 정치국원에 선출되었으며, 87년에는 정치국 상무 위원을 맡는 등 급속도의 정치적 성장을 거듭하다가, 1988년부터 국무원 총리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리펑, 장쩌민의 정적으로 등장 가능
리펑이 이끄는 보수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위안무 전 국무원 대변인과 덩리췬 전 당 중앙선전부장 등을 들 수 있으며, 저우잔아오 부총리는 상 하이방의 주룽지 부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보수원로들이 국무원에 심어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리펑은 올해로 총리 연임 기간이 만료돼 이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현재 각 파벌은 이 자리에 자파 사람을 심기 위한 정치적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데, 장쩌민 국가주석은 오는 15차 전당대회에서 당주석제를 부활시켜 자신이 당주석에 부임하는 것과 동시에 주룽지 부총 리를 총리에 밀어넣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 서열 3위의 차오스(사진)는 장 주석이 오히려 리펑 총리보다 더 부담스러워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져장성 출신인 차오스는 상하이난팡중학교에 다니던 1940년 16살의 어린 나이에 광화부속중학교의 지하당 지부위원 겸 서기로 공산당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하공작활동과 조직 부문에서 성장해 왔다. 건국 이후로는 주로 공안부문과 당 조직 부문에서 활동한 정보통이 기도 한 그는 당·정·군에 걸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론과 경력 그리고 청렴한 이미지 등에서 장쩌민 국가주석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정치개혁과 지방분권 등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에 서 있어 흔히 개혁파로 분류되는데, 혹자에 따라서는 중도파 정도로 보기 도 한다. 개혁파에는 권력 서열 4위인 리루이환 정치협상회의 주석 외에 후진타오 정치국 상무위원, 티엔지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 등의 인물이 있다. 차오스는 지난 95년 장쩌민 국가주석이 상하이방을 중 심으로 하는 지연 조직 확장에 힘쓰는 것을 비난하기도 했으며, 지난 96 년에는 ‘정신문명건설’ 등을 내세워 개혁의 속도를 늦추려는 장쩌민에 게 “덩샤오핑식 개혁을 가속화할 것”을 요구하는 등, 장 주석의 정책에 대한 과감한 비판도 서슴지 않아 장에게 위협적인 인물이 될 수 있는 가 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차오스, 장 정책에 노골적 비판하기도
잠재된 내분의 가능성에도 장쩌민-리펑-차오스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당장 와해되거나 바로 권력투쟁의 양상을 띨 가능성은 크 지 않다. 현행 집단지도체제는 당분간 덩샤오핑이 제시한 개혁·개방의 길을 따라 기존의 정책과 노선을 별 변동없이 수행해 나갈 것이다. 덩 사 후 비록 표면적이기는 하지만 당·정·군 각급 기관이 장쩌민 주석에 대 한 충성을 경쟁적으로 표명하고 나선 것도 장을 후계자로 선정한 덩의 유 지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 문제, 천안문사태 이래 가택연금에 처해진 자오쯔양 전 총리의 복권과 정치적 활동 재개의 문제, 개혁·개방의 와중에서 심화되고 있는 여러 경제적 문 제 등 덩 시대로부터 넘어온 복잡한 문제들의 처리를 둘러싼 의견 대립,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군부의 움직임 등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중국 정 치 지도부 각 세력들은 멀지 않아 자파의 정치생명을 건 합종연횡에 돌입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중국이 덩샤오핑 사망에 따라 10월로 예정 된 제15차 전당대회를 서둘러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 전해 져 중국 권부가 새로운 판짜기에 들어갔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 에서 다가올 15차 전당대회는 덩샤오핑 이후 중국 권력의 향배를 가름해 볼 최초의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베이징=김성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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