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한겨레21

망명 중국민주화 인사가 말하는 덩샤오핑, 그 절반의 성공

왕쥔타오는 지난 76년 ‘민주의 벽’ 운동부터 줄곧 중국민주화운동 지도 부에서 일하다가 지난 89년 천안문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출소해 지난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왕은 덩샤오핑의 서거 직후 마오쩌둥의 사망후 보였던 열광적인 조문운동 이 보이지 않는 데 대해 “당시는 사람들이 갈 바를 몰라 했지만 현재는 모두 일상생활에 바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덩 개인 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덩이 개혁개방을 이룬 성 과는 높이 사야 할 부분이지만, 정치개혁을 이룰 3번의 기회를 묵살한 과 오를 범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덩샤오핑의 죽음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내 할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느낌이다.

-무슨 뜻인가.

=지난 76년 저우언라이나 마오쩌둥이 죽었을 때는 사람들이 갈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일상생활에 바쁘다. 덩 사후에 열광적인 조문 운동이 없는 것은 덩을 위해서도 다행이다. 우리 중국인들이 지난날 그랬 던 것은 우리의 정치적 열망을 표현할 다른 통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갈 사람은 가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성실히 할 것이다.

-서방언론과 학자들은 덩샤오핑을 중국근대사가 낳은 ‘최대의 개혁가’ 로 평가하고 있다.

=반쯤은 동의한다.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에 관한 한 덩이 개혁가였다는 사 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적 추세였다. 어느 정치지도자 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생존할 수 없었다. 덩은 정치개혁의 ‘황금기 회’를 의도적으로 암살했다. 중국현대사에는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기 회가 3번 있었다. 70년대 중반, 80년대 중반, 그리고 80년대 후반이다. 대부분의 당료를 포함해서 중국 국민 모두가 정치개혁을 원했던 시기이다 . 그러나 덩은 경제를 내세우며 당 안팎의 정치개혁 요구를 묵살했다. 심 지어 대만도 했는데….

-덩이 ‘마지막 황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그렇다. 현재의 장쩌민은 덩이나 마오와 비견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없 다. 중국 사람들도 이제는 정치지도자에게서 그런 카리스마를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덩의 후계체제는 일단은 집단적인 권력분점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중기적으로는 ‘장로형 정치체제(집단지도체제)’로 전환 할 것이다.

-장쩌민 후계체제는 확고한가.

=가을에 있을 제15차 당대회가 앞으로 정국 전망의 열쇠를 줄 것이다. 그 때까지는 권력분점을 위한 조정작업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장 체제 의 가장 큰 대항세력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있다. 의장 차오스나 부의장 티엔지윈이 ‘법치’를 강조함으로써 눈길을 끌고 있다. 게다가 전인대는 지난번에 두차례나 장 체제에 도전한 경험이 있다.

-지난 89년 천안문사태와 관련해 실각한 자오쯔양의 복권가능성은 있는가 .

=있다. 덩의 죽음이 예측되던 지난해부터 그런 말이 있었다. “덩이 제15 차 당대회 이전에 죽으면 자오쯔양에게 기회가 있고, 더 오래 살면 기회 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제 자오에게 기회가 생겼다. 그는 천안문사건과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빛바랜 지도자’이지만 그의 복권은 곧 6·4 천안 문사태의 재평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민주화로 가는 좋은 신호가 될 것이 다.

-국영기업 개혁, 부패추방, 인플레잡기 등 개혁은 계속될 것인가.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는 ‘딴웨이(직장 등 단위)’체제를 바탕으로 한 중국사회주의의 기본과 닿아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국영기업 개혁의 경 우, 실업대책수립, 연금체계 개혁, 도산충격 흡수장치 등 ‘사회복지형 대안’을 만들어내지 않고는 요원한 일이다. 부패문제도 엄청난 수의 당 료들이 기존에 누리던 복지수당에 상당한 장치를 만들기 전까지는 없어지 지 않을 것이다.

-대규모 시위와 같은 변혁적인 사태는 없을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6·4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피해의식 때문에 사람들 이 매우 움츠려 있다. 적어도 가을에 당대회가 끝나기까지는 대중적인 의 사분출은 없으리라고 본다. 이때까지는 정치지도자들에게 공이 넘어가 있 다. 그들 자신이 힘겨운 결정을 해야 할 시기이다. 당대회부터 새 전인대 가 열리는 내년까지가 고비다. 우리 중국인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쉬운 일은 없다.”

보스턴=윤성주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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