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한겨레21

예술/역사 아우른 ‘아름다움’

우선 서양 예술의 발달 과정을 총체적으로 짚어보기 위해서는 아놀드 하 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서양문 화사에 나타난 주요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을 두루 섭렵하며 체계화한 점에 서는 견줄 만한 다른 책이 없을 정도로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미술에서는 우리나라 고전미에 대한 최고의 평자인 고 최순우 선생 의 에세이 선집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권한다. 국립중앙 박물관장을 지낸 저자가 쉽고 따뜻한 문체로 적어내려간 우리 미술에 대 한 감상은 건축, 불상, 금속공예, 회화 같은 주요 장르뿐 아니라, 장독대 , 온돌방 장판, 자수병풍, 탈, 비녀 등 생활 속의 예술품까지 두루 아우 른다. 학술적인 깊이와 미적 체험의 풍부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드문 전통미 탐구서다.

존 워커의 `대중매체 시대의 예술'은 우리시대의 대중문화, 대중예술이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 책이다. 팝 아트 등 대중문화를 이용하는 예술과 예술을 이용하는 대중문화, 그리고 기계적 복제와 예술 과의 관계를 살핀 뒤 저자는 순수예술의 존재 가치가 자기 시대에 대한 비판과 비판력에 있음을 설파한다.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는 20세기 미술의 간판스타인 피카소를 철저히 해부함으로써 20세기 미술의 모순을 파헤치고 있다. 피카소의 성 공은 근본적으로 19세기의 천재개념과 그 개념의 상품화에 있었다고 저자 는 본다. 그러나 피카소는 자신의 예술적 권좌를 지키기 위해 역사와 사 회가 그에게 부과한 의무(진보를 위한 투쟁)를 게을리하게 됐고 결국 ‘ 실패자’가 됐다. 저자의 경고는 미술을 넘어 ‘부르주아사회’가 제공하 는 성공과 명예가 인간의 ‘자기 보존’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가 하 는 역사비판에까지 이르고 있다.

서양미술사에 대한 대표적인 개괄서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세세한 부분을 피하고 전체의 ‘지세’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이 책은 그만큼 교양서로서 남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 곰브리치 자 신이 10대들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미술사를 서술하겠다는 의지로 이 책 을 썼다. 전문 용어는 가급적 피하고 작품 분석도 명료한 편이다. 저자는 미술사의 진행을 계속적인 진보로 받아들이지 말기를 독자들에게 권한다. 어느 시대의 미술이 그 이전 시대를 능가한 부분이 있다면 그만큼 잃어버 린 부분도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놀드 하우저 지음/백낙청,반성완 옮김/창작과비평사

사회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예술내적인 문제에만 함몰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맥락과 정신사적인 흐름을 동시에 드러 내 보여준다.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작품 감상 경험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인데, 이런 남다른 교양이 서양예술의 흐름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객 관적으로 조명하는 데 큰 힘이 돼주고 있다.

하우저가 서양 예술을 보는 시선 가운데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자연주 의에 대한 그의 관심이다. 구석기시대의 그림에서부터 나타나는 자연주의 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이원론적으로 보지 않고 동질적 존재의 직접적 표 상으로 파악하는 현세적 세계관이다. 고전 그리스·로마에서 다른 문명권 에 비겨 훨씬 체계적으로 꽃핀 자연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예술의 중 심된 추동력이 된다. 물론 저자는 이원론적 가치를 반영하는 형식주의의 발달과 영향력 또한 간과하지 않지만, 서양 문명이 정치적으로 자유주의 ·개인주의를 크게 진작시키고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진보에서도 선진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같은 현세적 가치, 곧 자연주의의 독 보적 발달과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감안한다면, 이 책이 왜 이른바 ‘순수주의’ 문학과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할 때(70년대 중반) 일종의 대안 모색을 위한 길잡이 같은 것으 로 출판됐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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