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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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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섹스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표시이고 남자에게 섹스는 단지 육체 적 욕망이라는 이분법은 꽤 오래된 우리의 상식이다. 물론 상식이 그냥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 상식은 생활양식 속에서 배어난 것이다. 여자에게 다가가는 남자의 궁극적 목적은 ‘함께 자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프 란체스코 알베로니의 `에로티시즘'그런 상식을 적은 책이다. 알베로니는 여성적 에로티시즘과 남성적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다른지를 상식의 차원 에서 구별해낸다. 상식이 어떻게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는지를 들여다본다 는 차원에서 알베로니의 책은 읽어볼 만하다.
그러면 그 구역질이 나지만 약도 없는 그런 상식을 통용시켰던 생활양식 은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한 의문에는 한국의 여성심리학자 6명이 쓴 `여 성심리'가 좋은 책이다. 여성은 본성상 사랑을 추구하고 남성은 본성상 권력을 추구한다, 여성은 부드러워야 하며 남성은 강해야 한다, 여자의 성은 본성상 수동적이고 남자의 성은 본성상 능동적이다 등등 여성과 남 성에 대한 고전적 진리라고 떠돌아다니는 명제들이 어떻게 오래된 편견일 뿐인지를 구체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검토해낸다.
물론 많은 페미니스트의 지향점이 성의 중성화는 아니다. 여성은 여성이 고 남성은 남성이다. 그 중에 여지껏 강한 남성에 눌려 소리없는 침묵으 로만 존재해왔던 여성성이 해방의 출구임을 보여주는 책이 이리가라이의 `나, 너, 우리: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다. 이리가라이는 태아가 모체에서 형성되어가는 그 화해의 과정을 통해 나와 너가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 는지를 보여준다. 차이를 인정하기 때문에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해방적 여성성이다.
박완서의 소설 `도시의 흉년'은 해방적 글쓰기라는 점에서 여성적 글쓰기 의 전형이다. 쌍동이 남매를 둘러싼 일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허위를 허위 로 의식조차 못하면서 살아가는지를 통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의를 지 키기 위해서는 청탁을 배격할 줄 알아야 하고 청탁을 배격하기 위해서는 부자여야 하고 부자이기 위해서는 부자인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사 법연수원생 서재호의 논리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논리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어느새 익숙해진 논리인지도 모른다.
김혜린의 만화 `불의 검'도 만화라는 이유만으로 빼놓기엔 아깝다.
김혜린 지음/댕기네책들
청동기를 쓰는 부족 아무르는 철기를 쓰는 부족 카르마키의 침략으로 땅
을 잃었다. 당연히 아무르 부족은 산지 사방으로 흩어져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불의 검>은 잃어버린 땅, 해가 뜨는 땅을 찾기 위해 항전하는 사
람들의 피와 땀, 위선, 위악을 그린 만화이다.
“이 사람은 산짐승과 눈이 똑같아. 그러니까 거짓말하는 게 아냐”라며
기억을 잃고 죽을 뻔한 사내를 항변해줄 줄 아는 여자 아라가 주인공이다
. 아라는 자기 자신을 비단으로 휘감는 대신 여자에게 지워진 운명의 굴
레를 뚫고 자기의 삶을 찾아 세상 끝까지 맨발로 걷는 당찬 여자다. 그
여자는 역사는 모르지만 작은 손으로 망치를 두드려대며 불칼을 만들 수
있고, 낡은 앞치마에 부싯돌을 감춰 적진에 불을 낼 줄 아는 여자다.
그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 아사는 매력적인 전사다. 아사는 원래 목동이
되고 싶었던 정깊은 사내였다. 그러나 잃어버린 나라에서 전사가 되어 피
비린내에 묻혀 살게 된 아사는 책임뿐인 인생에서 함빡 웃어보지 못한다.
아사와 아라의 무욕한 사랑을 축복하는 가난한 가수 바리도 주목해볼 만
하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불의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