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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맛 기행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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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골목안을 누비며 은은하게 들려오던 메밀묵장수의 목소리를 들어 본 지가 이미 오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메밀묵은 추운 겨울에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긴 겨울밤 텔레비전이나 별다른 놀이감이 없던 시절, 화투나 윷놀이를 하며 초저녁 시간을 넘기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 출출한 배를 채우는 데 메밀묵만큼 깔끔하고 시원한 것이 없었던 것이 다.
메밀묵 몇모를 사다가 송송 썰어 파와 마늘, 깨 등을 넣고 무치거나 금방 독에서 꺼내온 김치를 잘게 썰어 얹고 빨간 김치국물에 말아 참기름이라 도 몇방울 떨어뜨려 훌훌 떠먹으면 그 고소하고 시원한 맛이 그만이었다. 아마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 맛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간혹 시장에 서 사오거나 음식점에서 찬으로 나오는 메밀묵을 먹어볼 기회는 있었겠지 만, 제대로 만든 메밀묵을 만나기가 하도 어려워 십중팔구는 제맛이 아니 었을 것이다. 그래서 메밀묵 자체에 대한 인식마저도 그리 정겹지 못하다 .
우리 고유음식들의 특징이 그렇듯이, 메밀묵도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 과정을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남 양주군 와부읍(덕소)에서 15년간 메밀묵을 쑤어온 ‘순메밀묵집’ 강태순 (68)씨의 메밀묵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짐작이 간다. 기나 긴 세월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한말씩 메밀묵을 쑤는 게 강씨의 일 과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메밀을 갈기 시작하는데 오전 11시나 되어 메밀묵이 완성되고, 점심께부터 손님을 받는다.
메밀은 자기 전에 물을 부어 불려 놓았다가,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통메 밀로 간다. 메밀묵은 통째로 갈아야 더 깊은 맛이 나기 때문이다. 예전에 는 기계맷돌이 없어 식구들이 둘러앉아 손으로 갈았다고 한다. 곱게 갈아 낸 메밀은 자루에 담아 물을 부어가며 걸러내 고운 채에 받친다. 도토리 묵은 걸러낸 물을 가라앉히지만, 메밀묵은 걸러낸 물을 그대로 풀이 되도 록 끓인다. 이 과정이 가장 어렵다. 너무 묽어도 안 되고, 너무 되도 묵 의 질감이 떨어진다. 또 눌어 붙어도 탄내가 묵에 배어 묵맛을 버리게 된 다. 그래서 물을 조절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무주걱으로 저으며 끓여야 하는데, 아궁이에서 올라오는 매운 연기와 뜨거운 열을 피해가며 꾸부정한 자세가 여간 고역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15년을 살아 온 강씨의 허리는 이제 펴나 꾸부리나 삐딱하게 굳어버려 더이상 펴지지 가 않는다.
잘 끓여 뜸을 들인 메밀풀을 쟁반에 떠내 식히면 묵이 된다. 메밀 한말에 묵 30모를 떠내는데, 잘된 묵은 회색 바탕에 까뭇까뭇한 점들이 박혀 있 으면서 윤기있고 매끄럽다. 또 탄력이 있어 손가락 크기로 얇게 썰어 놓 으면, 젓가락으로 집어 올릴 때 쉽사리 툭툭 끊어지지 않는다. 맛도 고소 하면서 구수하고 깊은 여운이 뒷맛으로 남는다. 주로 서울 손님들이 입에 서 입으로 전해듣고 찾아와, 몇해고 계속해서 오는 단골 고객들이 된다. 먹고 나서 대개는 몇모쯤 더 사가지고 간다.
묵은 무침과 묵말이로 낸다. 무침은 가늘게 썬 묵을 따끈한 메밀육수에 데워내 조리로 건져 양념장에 무쳐 동치미와 함께 나온다. 묵말이는 썬 묵을 메밀육수에 말아 양념과 김치를 얹어주거나, 손님의 취향에 따라 빨 간 김칫국에 말아주기도 한다. 값은 한그릇에 4천원, 양이 푸짐해 한끼 식사로도 너끈하다. 몸에 좋고 특히 성인병 예방에 뛰어난 메밀은 국수보 다 묵으로 먹는 것이 메밀 고유의 맛과 영양이 잘 보존된다. 나들이를 겸 해 메밀묵의 진수를 확인해 볼 만하다.
맛과 영양 가득한 메밀묵의 진수
순메밀묵집(0346-576-6946)이 있는 남양주시 와부읍(덕소)은 이제 서울에 서 그리 멀지 않다. 강북과 강남 그리고 분당까지도 30~40분대로 오갈 수 있다.
88대로와 워커힐 뒷길 또는 판교~구리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강동대교 끝 자락에서 빠져나가면 덕소 입구 와부 삼거리에 닿고, 2백m쯤 강변 고가도 로가 시작되는 초입에서 덕소로 진입한다.
시가지 중심의 신호등 삼거리인 와부농협 앞에서 좌회전하며, 자동차의 k m를 0에 놓으면 1.5km쯤에 우측으로 자그마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은 구리와 미금 삼거리의 체증을 피해 경춘가도로 빠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김순경/ 여행칼럼니스트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