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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이 부부의 ‘작은 세상’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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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빠진 남편과의 오후 시간 조절이 여의치 않아짐에 따라, 나는 이 웃이나 가까이 사는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곤 한다. 하예린은 어릴 때 부터 같이 자라온 호정이와 자주 놀기는 하지만 그게 매일이 될 수는 없 기 때문에, 거의 한나절을 나가 있어야 할 때는 나는 속 편하게 친정 어 머니께 하예린을 부탁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요즘 들어 거의 날마다 할머니가 유치원 끝날 때를 기다리다가 하 예린을 데려가는 걸 반복하다 보니, 하예린은 할머니께 신경질이 늘었다. 아예 “또 할머니야?”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노라면, 그저 바쁜 딸 때문에 나이가 드셔서도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께 죄송스럽다.
하지만 하예린은 할머니댁에 제 이종사촌들이 와 있다면, 할머니댁에 가 자고 더 성화다. 물론 이때는 집안이 거의 난장판이 되는 순간이다. 하예 린은 혼자 있을 때는 오히려 조용한 축에 속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만나 기만 하면 거의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느라고 정신을 못 차린다. 이방 저 방 뛰어다니는가 하면, 침대 위를 구르고 문을 타올라가고 거실의 소파 위를 뛰어다닌다. 덕분에 조용히 살아오신 어머니 아버지는 이웃의 항의 도 몇번 들으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몇번 야단을 친 것이 하예린으로 하 여금 할머니를 원망도 하게 만들었나 보다.
어머니께서도 “요즘 애들은 옛날 너희들과는 참 다르구나” 하시며 “내 자식이면 야단이라도 칠 테지만 어쩌다가 야단이라도 칠라면 오히려 사이 만 나빠질까 싶어 수월치 않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신다. 더구나 이 아이들이 제 부모가 거의 해주는 게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할머니가 이 것저것 챙겨주어도 제 엄마가 돌아오면 울먹거리는 소리로 ‘엄마, 할머 니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데 이르면 할머니들은 씁쓸한 웃음밖에 나오 지 않을 것이다. 고부관계에서 아들/남편의 구실이 중요하듯, 바로 이때 도 아이를 부탁한 딸/엄마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제 자 식 욕하는 것은 싫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나이 드신 어머니께서 “네 아 이가 이러구 저러구” 할 때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 이에게도 “어떻게 네가 할머니한테 그럴 수 있니” 같은 태도는 금물이 다. 왜냐하면 아이는 이후 입을 닫고,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하예린의 얘기를 들은 뒤 이렇게 말한다. “하예린, 너 희들이 그렇게 뛰어다니니까 혹시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셨대. 그 리고 너도 들었지? 옆집에서 아이들 좀 조용히시키라고 전화했다며? 아마 엄마 같았다면 너희들을 혼냈을 텐데, 할머니는 어쩌면 이웃이 전화할 때 까지 기다리셨다니? 너희들 집안에서 그렇게 소란스럽게 하면 이웃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야. 할머니가 이웃들에게 얼굴도 못들고 다니게 했으니 어쩌니? 할머니께 사과드려야 해. 너희들이 그렇게 뛰어노는 것은 건강하 다는 증거니까 기쁘기는 하지만, 그렇게 뛰고 싶으면 놀이터로 갔으면 좋 을 텐데 그랬어. 그리고 너희들 유치원에서 논 다음 정리하는 것처럼 할 머니댁에서도 너희들이 갖고 논 것은 정리하지? 나이 드신 할머니께는 어 떻게 해야 하더라?” 하예린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나이 드신 분에게는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제서야 “도와드려야 한다” 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얼른 제 할머니 옆으로 달려가 어깨를 주물러 드 리기 시작한다. 정말 흐뭇한 순간이다.
변재란/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