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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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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7일 저녁 서울 신촌에 있는 한 전화방. 입구에 들어서자 4명의 남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16개의 방이 이미 꽉 차 있었던 것이 다. 직원은 헤드폰을 낀 채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각 방으로 연결시키느 라 숨돌릴 틈도 내지 못했다. 잠시의 망중한(?)을 이용해 그는 “영업시 간인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까 지 최장기록은 13시간이었고 최단기록은 3분. 전화를 거는 사람은 20대 여성이 대부분이나, 늦은 밤시간에는 30대 이상도 많다”고 속사포처럼 귀띔했다.
‘폰섹스’ 가능한 성문화의 숨은 방
‘1시간에 1만원’이라는 기본요금을 내고 전화방 안으로 들어갔다. 노 래방 복도 같은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간 9호실. 1평 정도 크기의 밀폐된 좁은 방 안엔 텔레비전, 안락의자, 잡지, 그리고 전화 한대가 놓여있다. ‘이곳엔 나 혼자밖에 없다.’ 미지(未知)가 풍기는 야릇한 호기심이 서 서히 꿈틀거리는데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22살 직장인이라는 한 여성은 “호기심에서 전화했다”는 한마디 말만 남 기고 “통화 많이 하세요”라며 뚝 끊어버렸다. 통화시간은 약 10초. 왜 끊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2번째 전화도 비슷했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 았느냐는 물음에 “그냥 다 알아요. 정보신문이나 교차로 등이죠, 뭐”라 며 시큰둥해했다.
두번의 전화가 짧은 만남으로 끝나자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또 몇분이 지났을까?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가 이제 두렵기까지 했다. 반복되 는 가식된 자기소개와 질문들이 벌써 지겨워졌다. 수화기를 들자 “백수 ”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였다. 허스키한 목소리. 그저그런 심심한 이야기 를 나누는데 갑자기 말을 놓으면서 “너 폰섹스 해봤어?”라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탔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 폰섹스 했나.” “고1 때부터.” “누구랑?” “친구들 끼리.” “아는 친구들끼리라면 쑥스럽지 않냐?” “그런 거 없어.” “ 이제 그만 전화 끊자.” 마치 타잔이 밀림에서 줄을 타듯 전화는 다음 상 대로, 다음 상대로 계속 이어졌다. 묻지도 않은 임신, 낙태 이야기를 고 해성사하듯 나직이 읊조리며 “후회한다”는 22살 여자, 두 남자와 동시 에 성관계를 갖고 있으며 둘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28살 회사원, 그리고 “얼굴이 너무 못생겨 한번도 남자를 사귄 적이 없어 이렇게 전화라도 한 다”는 여대생.
전화방에서의 대화는 대개 몇분이 지나지 않아 성문제로 귀결된다. “경 험이 있느냐, 어땠느냐”는 등 낯선 사람끼리 마주보고 하긴 거의 불가능 한 이야기들이 십년지기(十年知己)의 대화처럼 자연스럽다.
전화를 건 여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 “전화를 걸면 다짜고짜 ‘거기 어 디냐, 만나서 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남자는 얼마 전에 도 그렇게 만난 여자와 하룻밤 사랑을 나눴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만나자고 하면 내가 먼저 끊는다. 전화방을 통해 만난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뿐 만나고 싶진 않다. 인 간관계를 맺는다는 게 귀찮다.”
그들의 이야기를 주워담길 1시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입구로 나오니 순서를 기다리는 남자들이 1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대부분이 20대 후반 이었으나, 그 사이에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도 끼어 있었다.
남성전용인 전화방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남자는 철저한 약자다. ‘따르릉 ’ 프로포즈에 어김없이 응해야 하고, 찰나의 시간에 상대방이 수화기를 계속 들도록 하는 테크닉을 구사해야 한다. 그러나 심드렁해진 여자가 일 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면 그걸로 끝이다. 전화방에서 남자는 깃털을 활짝 펴는 숫공작, 아니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밤새 울어야 하는 가을밤 귀뚜 라미 신세다.
이 전화방 주인 차아무개(38)씨는 “지난 1월3일 개장했는데 반응이 하루가 다르다. 현대인들이 그만큼 고독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화방을 나서는 길은 더 고독할 것 같다. 차별적 한계를 긋는 방 어적 만남에 익숙해 있는 도시인들이 은밀한 해방공간을 꿈꾸다 결국 전 화방으로 ‘도피’한 건 아닐까?
또다른 고독 낳는 사적 배설행위
‘전화방’은 세기말이 낳은 현대인의 화장실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응어리 함성이 울리기도 하지만, 그 함성은 이발사가 지닌 공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사적 ‘배설’행위일 뿐이다. 야누스를 무색케하 는 인간의 다면성이 ‘전화’라는 가상공간에서 낱낱이 드러날 수 있는 곳. 진수성찬의 ‘입력’에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 사회에 소속된 인간들이 정말로 필요로 한 건 이처럼 냄새나는 배설물을 토할 수 있는 ‘출력’공간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전화방’의 만연이 배설물의 만연 으로 전화(轉化)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앞선다. ‘전화방’은 또다른 고 독을 낳을 뿐이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