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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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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위안부 강덕경 할머니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지 마사아키(56)는 부랴부랴 한국을 찾았다. 강 할머니의 영전에 바칠 한권의 책을 가슴에 꼭 품고서. <깊은 바다의 녹색에서 영원한 평화를 찾는다>라는 제목의 책 에는 그가 그동안 해온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을 바쳐 기록해온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한국의 피해보고서였다.
“대학 1학년 때 조총련계 재일조선인을 만났지요. 그가 전하는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만행을 들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종군위 안부에 대한 얘기는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까지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
그의 부끄러움은 한국 방문으로 이어졌다. 지난 93년 8월 ‘제1회 한국 평화의 여행’을 통해 15명의 회원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그는 비로소 종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만났다. 나눔의 집에서였다. 첫 만남은 영원한 우정을 낳았다. 그는 일본을 방문한 할머니들을 집으로 모시기도 했고, 한국을 방문할 때면 나눔의 집을 반드시 찾았다.
“일본은 더이상 국가적 배상과 사과를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배 상과 사과가 있고 나서야 민간의 도의적인 모금도 가능하지요.”
일본의 국민모금을 책임회피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그에게 강 할머니의 죽음은 안타까움 이상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집에 머무르기도 했던 김순덕 할머니에게 건강을 챙길 것을 신신당부한다. 반드시 살아서 일본의 배상 과 사과를 받으라는 뜻이다.
교사인 그는 이제 정년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그는 제2의 인 생을 준비하려 한다. 퇴직하고 나면 한국의 근대사를 좀더 알기 위해 한 국에 유학을 할 계획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인들의 무모한 애국을 철저한 사실로써 교정하는 일만이, 일본과 한국이 이웃 나라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윤승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