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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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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직업을 바꾼 치과의사.’ 전혀 엉뚱한 세계로 뛰어드는 치과의사들이 가끔 화젯거리로 매스컴에 오르기도 해 직업을 바 꿨다는 정도는 오히려 진부하기까지 하다. 유독 그들의 전업이 많아서일 까?
하지만 여전히 호기심은 동한다. 사람들의 입속만 쳐다보며 사는 일이 지 겨운가 보다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전직 치과의사 기희선(33)씨도 그런 의문의 한 대상이다. “왜 그만뒀나요?” 그런 질문을 수없이 받았단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목마름을 풀기에 치과병실은 너무 작았지요.”
기씨에겐 이제 갈색 도복이 95년까지 입었던 하얀 가운보다 더 잘 어울린 다. 일반인들에게 기 수련장으로 잘 알려진 단학선원. 그는 단학선원 일 산 지원의 지원장이다. 의사에서 수련 지도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91년 경기도 원당에서 병원을 열었던 그는 늘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입안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와 생활을 짐작할 수 있지요. 몸 어디 가 안 좋은지,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 보입니다.” 그러나 치료가 끝나면 그때뿐이었다. 한번 찾은 환자는 꼭 병이 재발해 찾아왔다. 충치를 때울 수는 있었지만 충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게으름과 무관심, 편견 따위 의 나쁜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은 때울 수가 없었다. 그는 회의를 느꼈다. 그리고 사람의 본질을 치료하는 진짜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 길은 우연히 찾아왔다. 어쩌다 동네 단학선원 수련장에 발걸음을 옮긴 게 92년. “잘만 하면 몸이 좋아진다는데…”하는 막연한 기대뿐이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수련 경력이 쌓이면서 단학선원은 그를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했다. 단전호흡과 행공(行功)의 수준이 높아갈수록 그곳은 단순한 신체단련장으로 보이지 않았다. 몸과 마음의 완전한 건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곳은 헬스운동이나 에어로빅과는 달랐다. 치과의사 생활 내내 늘 갈증을 느끼던 것이었다. 그는 내처 지도자의 길을 생각했다. 단학선 원 지도자가 된다면 치과의사로서 체념했던 치료행위들이 가능할 것 같았 다. 물론 용기를 내기는 어려웠다. “지금 가진 편안함과 안락함을 과연 버릴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결심이 굳어지기까지는 2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넘어야 할 산도 많았다. 먼저 뼈를 깎는 수개월간의 지도자 과정. 특수부 대에서나 할 법한 훈련과 수행들을 이를 악물고 이겨야 했다. 두번째로 치과의사인 남편의 이해. 집에서 출퇴근하는 생활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단학선원은 그에게 먹고 자는 집이었다. 매일 수련지도와 상담, 외부강연 등으로 24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별거생활은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정기 적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보고 싶을 때 만난다. 한달에 한번일수 도 있고 두세달에 한번일수도 있다. 부부가 꼭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것은 그에게 고정관념이 됐다. 처음에는 갈등도 있었지만 남편도 이 젠 그러려니 한다. “집에 있으면 에너지가 분산되지요. 사적인 생활은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구요. 물론 습관이 고쳐지기까지는 반년이나 걸렸 습니다.”
그가 있는 일산 지원은 생긴 지 1년도 채 안됐다. 그래도 등록된 단원이 2백50명이나 된다. 날마다 출석하는 인원이 1백여명.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가장 기억나는 사람요? 교통사고로 다리를 펴 지 못하던 환자가 불굴의 수련끝에 정상을 되찾았지요. 가슴속 사랑도 되 찾구요.” 정반대로 기 수련에 대한 오해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대 할 때는 안타깝기만 하다.
사실 ‘기 수련’하면 사람들은 으레 초능력을 먼저 떠올린다. 언론이 신 비스런 측면을 자주 부각시켜서일까? 그는 그것이 못내 불만스럽다. “지 나치게 잔재주를 부리는 일은 기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을 염려가 있 어요. 그건 굉장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일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란 원래 이 세상에 꽉차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 이 무뎌져서 잘 못 느끼는 것일뿐. 결국 기 수련이란 그것을 느끼고 활용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인내 없이는 안되지요. 힘든 일입니다. 그 러나 힘든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수련이 시작된 것이고 그래야만 몸과 마 음이 바뀝니다.”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거울을 봐도 내 얼굴이 너무 달라졌어요. 예 전엔 항상 불만족했는데…어떻게 이런 행운이 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러 나 그는 또다시 다른 일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 일이 너무 평범해지고 쉬 워지면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단다. 그럼에도 ‘이웃과 사회를 위해 일 한다’는 삶의 기준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다. “멈추지 말 것, 계속 변해 야 할 것. 그러나 완전히 공적이 될 것.” 이것만은 흔들릴 수 없는 구도 자의 자세라고 믿기 때문이다.
고경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