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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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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2일 황장엽(74)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한국망명 신청, 21일 최광(78) 인민무력부장의 사망, 같은 날 강성산(66) 정무원 총리의 경질 확인. 단 며칠 사이에 북한 권력의 심장부에서는 이처럼 굵직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황 비서의 망명은 김정일에게 황과 관련된 구세대 인물들을 교체할 수 있 는 절호의 기회로 다가온 것인가. 올 가을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점쳐지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 전문가 사이에 나오고 있는 세대교체설은 예사롭지 않다.
숙청작업도 전면화될 듯
북한전문 컨설팅회사로 잘 알려진 브린 앤 구스타버슨사의 마이크 브린은 2월18일 “오는 7월 김일성에 대한 공식 추모기간이 끝나기 전에 북한 권 력구조는 재개편돼야 하며 김정일은 자신의 심복들을 심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 김정일은 황장엽이 ‘한국의 간첩’(변절자)이라면서 황 과 관련된 강경파들을 모두 숙청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
사실 황 비서의 망명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국내 정보소식통 사이에서 는 “올 가을 김정일이 대권을 장악할 경우 당과 인민군에 손을 대지 않 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 소식통들은 “중앙당의 경우 현재 당 정치국 정위원이나 후보위원, 비서국 비서들은 대부분 김일 성과 항일 빨치산 운동을 함께 한 70~80대의 원로들로 구성돼 있다”면서 “김정일은 원로들이 대내외 환경변화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해 답답하게 느껴왔을 뿐 아니라 그렇다고 함부로 대하기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고 진단했다.
또한 이들은 부주석이며 당 정치국 정위원인 이종옥(81), 박성철(85), 김 영주(76), 최근 사망한 최광(78) 인민무력부장, 백학림 사회안전부장 등 군 원로, 당·정·군의 주요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70대 원로들도 김정일 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뿐 아니라 김일성과 혁명을 같이한 원로들이기 때 문에 김정일이 리더십을 제대로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 다. 따라서 이들 원로들은 김정일의 대권승계와 함께 권력의 핵심부에서 자의반타의반으로 배제될 것이 예상돼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발생한 주체사상의 최고 원로인 황장엽 비서의 망명과 군부의 최고 원로 인 최광 인민무력부장의 죽음은 대폭적인 세대교체를 위한 절묘한 명분으 로 작용할 수 있다고 앞의 소식통은 전망한다.
북한은 먼저 황 비서 망명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황과 밀접한 관 계를 맺어온 원로들에 대한 사상검증작업, 그리고 이에 따른 숙청작업을 시작으로 전면적인 물갈이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전망에 따를 경우 김정일의 지도체제는 70, 80대 원로들인 항일혁 명세대가 물러가고 김정일과 같은 세대인 50, 60대가 대폭 충원될 것으로 보인다. 이때 김정일이 중용할 인물들로 현재 대남담당 비서인 김용순(63 ), 김정일의 친동생인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인민군쪽의 오극렬 대장, 조명록 차수겸 총정치국장, 현철해 대장 겸 총 정치국 부국장, 김영춘 차수 겸 총참모장 등이 손꼽히고 있다. 이외에 김 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위원장인 최용해, 한동안 남북문제에 깊이 관여해 왔던 연형묵(66) 전 총리, 김달현 등도 중용될 것으로 점쳐진다.
김정일 친정체제 확고해진다
다른 한편으론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 타개 등 현안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서 권력개편으로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 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이 아무리 의욕적으로 세대교체 를 추진한다 해도 기존의 당·정·군 조직이 갖고 있는 기반을 단기간 내 에 무시하거나 변화된 상황에 짜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들은 실제로 김정일이 현재 자신을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인정해 주는 혁명 1세대들에 대해서는 공식서열의 최고위층에 두고 원로대우를 보장해 주되 실질적인 권력은 자기 세대인 50, 60대 측근들에게 주고 있다고 전 한다.
어느 쪽이든 황장엽 비서의 망명사건 후 잇달은 최광의 죽음과 강성산의 해임은 김정일의 친정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임을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