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한겨레21

야권 ‘김현철 증거수집’사활전


(사진/`독설.' 김현철씨를 맹공격한 신낙균 국민회의 부총재와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 안택수 자민련 대변인(왼쪽부터).)

야권이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 대한 총공격에 나섰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그동안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이라 는 한보특혜대출 사건에서 한보와 정치권을 잇는 검은 커넥션의 ‘몸체’ 로 현철씨를 지목하고,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끈질기게 촉구해왔다. 그러 나 야권은 2월21~22일 이틀 동안 이루어진 검찰의 현철씨 조사가 의혹을 밝혀내기보다는 해명성 ‘면죄부주기’ 행사로 끝났다고 비난하고 국정조 사와 청문회 등을 통해 직접 그 의혹을 벗기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제보자에 허탕치기 일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지난 2월22일 “현철씨가 지난 4년간 한보게이 트를 비롯해 국정전반에 포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일종의 범죄 행위”라며 현철씨를 증인으로 불러내 그가 커넥션의 배후임을 밝혀내겠 다고 선전포고했다.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도 “특별검사가 한보수사를 하 든지 아니면 진정한 성역없는 수사가 되도록 검찰에 긴급명령을 내려 재 수사 지시를 해야할 것”이라고 보조를 맞췄다.

특히 현철씨를 배후인물로 지목한 한영애, 설훈, 이상수 의원 등 당 관계 자 6명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국민회의는 현철씨 공격에 배수진을 치 고 있다. 현철씨에 대한 검찰 조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그동안 확실한 물 증이 있다며 공략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입증책임이 있고, 물증 을 대지 못할 경우 오히려 여권과 여론의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부담 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지난 2월4일 자민련과 공동으로 재경위, 통산위, 건교위 소속 현역 의원들과 변호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한보사태 양당 합동조사위원 회’를 통해 관련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한편 자민련과 양 당 합동회의를 거의 매일 열고 있다. 또 국민회의는 이런 야권의 공동 노 력뿐 아니라 독자적인 물증찾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오길록 종합민원실장을 중심으로 당내 한보비리 고발센터를 운영하고, 한 보사태를 다룰 국정조사특위 간사인 이상수 의원을 중심으로 현철씨 관련 의혹 수집과 확인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하루 3건 정도의 제보를 받고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계속 뛰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민회의가 이런 제보를 통해 어느 정도 뚜렷한 물증을 확보했느 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현철씨의 관련의혹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관측한다. 실제 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제보를 받고 조사를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에 가로막혀 아직 명확한 게 안 나오고 있다”고 실토한다. 그는 이어 “ 한보의 비자금 경리장부를 관리해온 정분순, 선희 자매가 그 장부를 넘겨 주겠다고 해 삼척까지 갔지만 증발해버린 적이 있다”며 “명확한 게 있 었다면 벌써 터뜨렸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자민련의 한 관계자도 “현철씨가 당진제철소를 방문한 증거를 주겠다고 제보해 현지조사를 했 지만 확실한 것을 잡지 못했다”며 “대부분의 제보가 이런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국민회의쪽의 많은 관계자들은 현철씨와 관련한 몇 가지 물증들이 이미 확보돼 있고 단지 언제 터뜨리느냐 하는 시기만이 남았다고 주장한 다. 이상수 의원은 “적어도 현재 한보창고에서 발견된 김현철 책 정도의 정황증거는 여러 건 확보했다”며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현철씨와 관련 한 외압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정확히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 국민회의의 또다른 관계자도 “‘정보근씨는 교우회에서 딱 한번 스쳤 을 뿐 얼굴도 잘 모른다’는 현철씨의 발언이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정도의 증거는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가 이런 정황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다면 현철씨를 청문회에 끌어 내기 위해 가장 적절한 시기에 터뜨려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조사, 소환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폭로전을 병 행함으로써 검찰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을 규명해야 하고, 국민적 의혹의 대상인 현철씨가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한 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에는 자민련에서도 일정 정도 동의하고 있는 것으 로 알려진다.


국정조사, 현철씨 성토장 될까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또 본격적인 국정조사 국면에 돌입할 경우 그동안 ‘설’로만 나돌았지만 명확한 물증을 대지 못했던 핵심 의혹들을 추가로 폭로함으로써 현철-한보 커넥션의 실체에 접근한다는 전략도 세워놓고 있 다. 자민련의 한 의원도 “이미 실체로 인정되고 있어 설만 있어도 충분 히 강성 발언을 할 수 있다”며 “오히려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강성 발 언을 자제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재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은 이런 단계별 전략을 통해 현철씨의 한보 관련의혹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텔레비젼 생중계를 관철해 낼 경우 현철씨에 대한 국 민적 공분을 확대시키고 그와 관련한 새로운 제보수집이 가능하다는 점 또한 야권은 노리고 있다. 이 경우 새로 수집되는 제보를 통해 더욱 구체 적인 물증을 확보한 뒤 현철씨를 압박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야권의 전략에 대한 비관론도 만만찮다. 몇몇 정황증거 말고 는 아직 한보와 현철의 관련 사실을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물증을 확보하 지 못한 상황에서야당의 이런 전략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다. 또 언론에 보도된 사실 정도를 확인할 뿐 현철씨와 관련된 추가적인 사실 발굴 등 직접공격에 소극적인 자민련의 태도 또한 공세의 둔화 요인 으로 지적된다.

때문에 국민회의 내부에서는 정황증거를 가지고 현철씨를 직접 거명해 전 면에 드러내는 공격방법보다는 청문회 과정에서 현철씨 관련 사실을 국민 들이 직접 추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 다. 이미 현철씨의 정치개입 등의 문제를 공론화 하는 등 정치적 성과를 충분히 달성했으므로 굳이 입증책임이 따르는 무리수를 계속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회의 등 야권은 각종 인허가와 거액대출비리, 부도원인 및 부도처리 과정, 검찰 수사의 공정성, 사후처리 부분으로 의원 및 실무진 들의 역할을 분담해 집중공략해 들어간다는 것이다.

야권은 적어도 한보 관련자 1백여명은 청문회에 세운다는 복안을 갖고 있 다. 특히 야권은 한보 철강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을 주도했던 이형구, 김시형 전 산업은행 총재와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의 대출결정 배경을 추 궁함으로써 천문학적인 대출이 배후세력의 원격조정에 의한 것이었음 증 명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부처쪽 관료들이 깊숙히 개 입했음을 밝혀내고, 그 관료를 공략하면 결국 정점에는 현철씨의 외압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야권의 전망인 것이 다.

또 야권은 정태수 총회장, 정보근 회장은 물론 한보쪽 재정담당자들을 청 문회에 세워 당진 제철소 건설비용 가운데 유용 의혹이 일고 있는 약 2조 원의 돈이 어디로 갔는지, 현재 검찰수사에서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 2백40억원은 누구에게 갔는지를 현재까지 수집한 구체적인 사실들을 적시 하면서 추궁할 경우 예상밖에 큰 성과를 거둘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하나의 핵심은 이미 대검 중수부에 압수돼 있는 한보 특혜대출과 관련 한 자료들을 청문회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공격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 의해 걸러진 자료가 아닌, 대검에 있는 생생한 자료들에 얼마나 확보하느냐 하는 것은 곧 현철씨 관련 물증을 확보하는 관건이다”고 말 해 이 부분에도 사력을 다할 것임을 시사했다. “결국 이런 모든 길은 현 철씨에게로 통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물론 이런 간접 전략들이 현철씨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결코 따로 떨어 져 있지는 않다. 단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결국 모든 길은 현철씨로 통한다”

야권은 그러나 국정조사의 증인논의 과정에서 여권의 방해전략에 밀려 이 같은 기본전략이 차질을 빚을 지도 모르는 가능성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현철씨를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야권의 요구에 명예훼손 사건의 고소인일 뿐 피의자가 아닌 현철씨를 증인으로 세울 수 없고, 참고인 5명을 포함해 불과 29명만을 증인으로 채택할 수 있다는 신한국당의 반대에 맞서 초반 부터 지리한 공방만을 계속하다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국 물증이다. 한보사건의 ‘몸체’라고 지목한 현철씨를 증언대 에 세울 수 있을 만한 파괴력 있는 물증을 가지고 여권을 압박해 낼때만 이 야권의 이런 전략이 성공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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