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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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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시원히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사건은 결국 미궁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2월5일 오전 9시45분, 서울의 한 심부름센터에 30대 후반으로 보이 는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표준말을 쓰는 남자의 주문은 간단하면서도 은밀했다. “주소와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아는데, 그 사람의 전화번호와 부인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습니까?”
낮 12시40분, 심부름센터는 다시 전화를 걸어온 남자에게 결과를 보고한 다. 주소를 근거로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전화국 직원을 사칭해 캐낸 정 보였다. “이한영은 혼자 살고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702-ⅩⅩⅩⅩ이고, 주인아주머니가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왜 제보자를 숨기는가
이한영(37)씨 피격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최근 밝힌 수사내용 가운 데 한 대목이다. 사건이 있기 10일 전, 전화국 직원이라며 이씨가 머물던 김장현(46)씨 집에 걸려온 괴전화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범행이 사전에 계획됐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용의자의 행적이 포착된 것이다. 더 욱이 심부름센터에 수수료가 입금된 시각, 은행 폐쇄회로에는 돈을 부치 는 젊은 남자의 모습까지 찍혔다. 두 남자가 같은 인물인지는 아직 확실 치 않지만, 적어도 1명 이상의 용의자가 드러난 것만큼은 분명하다. 마침 내 범인의 꼬리가 잡히기 시작한 것일까.
그런데 정작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은 심드렁하다. 은행에서 찍힌 용의 자의 얼굴을 담은 수배전단을 전국에 뿌리면서도 그다지 기대하는 표정이 아니다.“어차피 잡힐 범인은 아니지 않느냐”는 자조섞인 한탄까지 흘러 나온다. 범인이 간첩이든 아니든, 행적과 인상착의가 드러났든 아니든, 사건은 결국 미궁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심증은 있으되, 물증은 없는 상황을 넘기 힘들 것” 이라고 토로한다. 경찰은 오히려 새롭게 찾아낸 단서조차 의문을 불러 일 으키는 상황에 불안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괴전화의 전모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공개한 통화내용을 곰곰히 뜯어보면 상식에 어긋나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30대 남자와 심부름센터 사이에 이뤄진 통화내용이 자연스럽지 않다. 경찰에 따르면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심부름센터입니까”라고 묻자, 심부름센터는 “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고 전화하셨습니까”라고 되묻는다. 정상적인 심부 름센터라면 의뢰인에게 용건을 묻지, 대뜸 전화번호를 알게 된 경위를 묻 지는 않을 것이다.
심부름센터가 김씨의 부인 남상화(44)씨와 통화한 내용도 이상하다. 심부 름센터는 통화에서 세가지 질문을 던진다. “전화요금 자동이체를 하시면 할인헤택이 있어서 권유드리는 겁니다. 주인아주머니 되십니까”에 이어 “가입자가 누구 명의입니까”를 묻고, 마지막으로 “주인아주머니의 존 함은 어떻게 되십니까”고 묻는다. 의뢰인이 요구한 이씨에 대한 질문은 정작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의뢰인에게 결과를 보고할 때는 “이한영 은 혼자 살고 있다”는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희한한 것은 경찰이 심부름센터의 이름과, 일을 처리한 직원의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찰은 그저 “관련기관으로부터 통보받 지 못해 모르겠다”고만 말할 뿐이다. “안기부가 이미 심부름센터 직원 의 제보를 받아 수사를 벌였고, 그로부터 사흘 뒤에야 자료를 넘겨줘 그 대로 언론에 공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 그러면서 “제보자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안기부가 보호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통상 제보자 의 보호가 필요할 경우 일단 신원을 밝히고 보도자제를 요청하는 관례와 사뭇 다르다.
이러다보니 여기저기서 공개된 통화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 터져 나온다. 일각에선 “30대 남자가 이미 이씨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는 물 론, 세대주인 김씨의 이름까지 아는 상황에서 심부름센터에 일을 맡길 필 요가 있겠느냐”며 통화 자체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고의적으로 흔적을 남기려는 계산이 아니라면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 이다. 경찰 안에서도 통화내용의 신빙성을 문제삼지는 않지만, 그것의 수 사가치에 대해선 대체로 회의적인 분위기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안기 부가 이 통화내용을 토대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 끝까지 정 보를 쥐고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를 해도 별로 나올 게 없었거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경찰에 넘긴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안기부가 수사장악, 경찰은 들러리
안기부에 대한 경찰의 이런 피해의식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수사본부 가 차려진 분당경찰서 형사들은 “경찰은 깃털이고 몸체는 따로 있다”고 푸념한다. 경찰은 겉으로만 나설 뿐이지 실제로는 안기부가 사건을 지휘 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경찰은 2월15일 밤 9시52분께 사건이 터졌는데 도,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현장감식도 하지 못했다. 안기부에서 현장을 선 점하고, 탄피와 이씨의 일기장 등 중요한 유류품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 다. 경찰 감식반은 그 뒤 핏자국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거나, 머리카락 몇 올 정도를 채집하는 데 그쳤다. 이씨가 피격 직후 “간첩”이라고 말했다 는 남씨의 최초 증언이나, 범행에 쓰인 권총이, 간첩이 애용하는 벨기에 제 브라우닝이라는 분석도 안기부가 주도한 합동신문 결과 나왔다. 경찰 은 그저 발표만 맡았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사가 혼선을 빚지 않는 게 차라리 이상하다. 애초 사 건의 성격을 규정케 했던 몇가지 중요한 증언과 증거가 급속히 힘을 잃으 면서 의혹만 불러 일으키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남씨의 증언은 지금은 “이씨가 뭔가 웅얼웅얼하고 있을 때, 경비원이 ‘간첩’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하길래 ‘간첩’으로 들었다”는 말로 바뀐 상태다. 한데 경비 원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범행에 쓰인 권총의 종류도 아직 확언할 단계가 아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따르면 25구경 권총은 여러가지 탄알의 호환이 가능하고, 여기에는 브라우닝 말고도 이탈리아의 베레타, 독일의 모제르 등 여러가지 권총이 포함된다.
구체적인 범행에 들어가면 혼란은 더욱 커진다. 일반적인 강력사건의 경 우에 비춰보더라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우선 범인들은 이씨를 납치 하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죽이려 했던 것일까. 어느쪽에 기대도 산뜻하 게 해명되지 않는다. 당시 상황을 보면 범인들이 납치를 시도했음은 분명 하다. 이씨에 대한 구타가 먼저 있었고, 현장에서 권총에 소음기를 부착 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살인이 목적이었다면, 소음기를 미리 부착했을 터이고, 구타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것도 14층에서 납치를 시도했을 까. “전문적인 살인훈련을 받은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경찰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다.
게다가 범인들은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아무리 사소한 범행이라도 증거 를 남기지 않으려는 게 범인의 일반적인 심리인데, 이번은 오히려 거꾸로 다. 직접 처리할 수도 있는 일을 심부름센터에 맡기는가 하면, 은행 폐쇄 회로에 모습을 남기고, 심지어는 입금표에 지문까지 묻혀 놓았다. 범행장 소로 고른 곳도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이고, 일 처 리 역시 매끄럽지 못했을 뿐 아니라, 탄피까지 버리고 달아났다. 마치 범 행이 홍보에 더 큰 목적을 둔 것 같다. 이에 대해선 “북한의 경고를 확 실히 알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라는 경찰의 해석이 있긴 하다. 그러나 여 기엔 “오히려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북한 공작원의 짓임을 알리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는 반론이 따라붙는다 .
의문점 하나하나 되짚어봐야
이씨 피격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한보사태 와중에서 터진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사건으로 불기 시작한 이른바 ‘북풍 ’의 한자락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정부는 이 사건을 ‘북한 침투공작원에 의한 암살기도 사건’으로 규정하고 긴장을 조성했다. 안기 부와 경찰을 비롯한 공안당국의 판단은 지금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은행 입금표에서 채취한 지문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내국인 지문과 대 조한 결과 같은 모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발표는 그런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판단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 거는 아직 없다. 사건을 예단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나타난 의문점들을 하 나하나 되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유효하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