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하는 경제 |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
|---|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그동안 많은 논란을 거듭하였던 새로운 공정거래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기존의 공정거래법보다 개선·보완된 내 용을 담고 있음에 틀림없으나, 그럼에도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계열회사에 대한 재벌기업의 채무보증 허용문제다. 우리 나라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일명 공정거래법)’은 이른 바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계열회사의 채무 를 보증할 경우 그 한도(채무보증한도)를 정하고 있다. 채무보증에 대한 제한은 대기업에의 편중여신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방지하고 부실기업의 퇴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채무보증한도는 이번 공정거래 법의 개정으로 자기자본의 200%에서 100%로 낮추어졌다.
경영진 독단에 의한 보증은 곤란
당초 공정거래위원회는 채무보증 자체를 향후 5년에 걸친 유예기간을 거 친 뒤 2001년에 완전히 해소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추진했다 . 이에 대해 재벌기업들은 여신과 관련하여 금융기관들의 채무보증 요구 가 있는 한 채무보증의 금지는 기업활동에 커다란 장애를 가져온다고 주 장하고, 채무보증의 금지 또는 축소에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피력한 바 있 다.
결국 자기자본의 100%로 채무보증한도를 낮추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 다. 그렇다면 채무보증은 과연 자유로운 기업활동의 촉진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경제력집중을 조장하는 것이니 금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채무에 대한 보증은 이를 제공하고자 하는 사람 또는 기업의 자유로운 의 사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 금지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회사와 같 이 소유주인 주주와 채무보증여부를 결정하는 경영진이 따로 있는 경우, 그와 같은 결정은 경영진에 의해 독자적으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회 사의 경영과 상관이 없는 채무보증에 대해 주주들이 경영진에게 그 결정 권을 위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친정동생의 은행대출을 위해서 아 내가 남편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집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남편의 동 의를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은 아니지만 중견 상장기업인 고려시멘트의 경우를 보면, 채무보 증에 따른 문제점이 쉽게 드러난다. 고려시멘트는 덕산그룹에 채무보증을 섰다가 95년 2월 덕산그룹의 부도로 인하여 연쇄부도를 냈는데, 고려시멘 트의 주주들이 주가폭락으로 인해 커다란 피해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채무에 대한 보증은 한 기업의 흥망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으 로, 경영진에 의해 마음대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한 것이다. 따라서 재벌기 업의 채무보증은 원칙적으로 회사의 공동 소유주인 주주 전원의 동의가 없는 경우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국회를 통과 한 공정거래법이 당초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보다 못하다는 비난도 나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수천명 혹은 수만명이 될지도 모르는 주주 전원에게 채무보증 계획을 알리고 이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다는 것 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주의 동의 없는 채무보증의 금지는 주주의 권익을 보호할지는 모르지만 기업활동에 지장을 줄 수도 있으며, 따라서 이것이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주주권익 보호할 제도 마련해야
이 시점에서 몇가지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정부 및 국회는 채무보증한도를 단순히 축소하기보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또다른 대안의 개발에 노력했 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채무보증은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얻는 등의 허용요건을 정할 수는 없었을까? 기업의 합병시 합병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합병에 반대하는 소액주주의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수하도록 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매수청구권제도를 채무 보증에도 적용할 수는 없을까? 또 채무보증의 제한은 재벌기업뿐만 아니 라 모든 기업에게 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앞으로 있을 공정거래법 또는 이와 관련된 법의 개정 시에는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짐으로써, 법과 제도가 좀더 선진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