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OECD, 개정노동법 부적격 판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정부의 노동법 개정을 내놓고 비판하고 나섰다.OECD가 최소한 중립적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기대했던 한국 정부 는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 꼴이 됐다.

OECD의 고용노동사회문제위원회는 지난 1월22일 한국 개정노동법의 국제 규범 준수 여부를 심사한 끝에 “노동 개혁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인정되나, 특히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권 부분에서는 한국 정부가 애초 에 약속했던 수준을 충분히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OECD라는 국제기구 차원에서 한국 개정노동법이 ‘부적격 판정’을 받았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결사의 자유, 단체협상권 부분은 약속위반

비공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어느 대표가 무슨 발언을 했으 며, 어떤 식으로 개정 한국노동법을 심사했는지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토의 결과는 위원장 디에터 그로센에 의해 다 음날인 1월23일 일단 OECD의 최고기관인 상임이사회에 보고되었고, 이어 OECD 공보처는 도널드 존스턴 사무총장의 이름으로 OECD의 입장을 1쪽짜 리 코뮈니케 형식으로 발표했다. 회원국의 고용노동정책 심사를 담당하는 고용노동사회문제위원회 위원장 그로센은 상임이사회에서 한국 개정노동 법의 ‘어떤 요소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으로 평가 하지만,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권 등 노동자의 기본권 영역은 개혁 자체 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1월25일자 기사에서 OECD의 이번 코뮈니케가 이 기 구의 관례상으로는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OECD의 코뮈니케는 행간을 잘 읽지 않으면 그 의중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문맥이 애매 한 것이 관례인데, 이번 한국노동법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 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르몽드>는 이례적으로 ‘한국의 관례’라는 제하의 사설을 내고 한국 정부의 반노동적 입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사설은 OECD가 회원국의 고용노동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것이 ‘위협’이나 제재는 아니라 할지라도 ‘경고’ 조처를 내리는 첫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또한 경제 세계화를 맞아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 국가라면 시장뿐만 아니라 노동분야에서도 규범을 준수 해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에 자유무역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도 지키라고 훈수했다. 이 신문은 또 6년전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뒤 IL O는 지금껏 한국 정부가 노조의 자유를 존중하도록 강제하는 데 실패했지 만, 이번에 더욱 자유주의적인 OECD가 ILO도 실패한 것을 강제하는 데 성 공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사회문제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김영삼 대통령이 야당지도자 와의 회동에서 개정노동법의 재검토를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 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로센 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노조를 포함 한 모든 당사자들과의 대화를 재개하도록 격려할 것이라며, 문제가 된 결 사의 자유와 단체협상권 보장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OECD 존스 턴 사무총장 역시 회원국들이 한국 정부의 개정노동법 재론 발표를 환영 했으며, 민주노총을 비롯한 모든 관련단체와의 대화를 통한 노동법 재개 정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노동법 재개정 과정 주시할 것

OECD회원국들은 이번 파업과 관련해 체포, 투옥된 노조 관계자들이 석방 될 것이고, 파업 지도부에 발부된 체포영장도 해제될 것이란 한국 정부의 발표도 고무적인 조처로 환영했다. 최고기관인 상임이사회는 마지막으로 고용노동사회문제위원회가 계 속적으로 한국에서의 노동법 재개정 과정을 예의주시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무리지었다.

이제 관심은 향후 한국 정부가 고용노동사회문제위원회의 비판을 어느 정 도 수용할 것인가, 즉 결사와 단체협상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물론 OECD는 조직의 속성상 회원국이 애초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어떤 직접적 제재를 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 단 OECD 수준에서 한국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고, 이곳 언론의 대대 적인 보도와 세계 각국 노동조직의 한국노동자파업 지지표시로 한국문제 가 국제문제화하고 있는 이상 한국 정부가 이전처럼 세계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이번 OECD 토론 에서 큰 구실을 한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는 OECD가 공개적으로 비판 적 입장을 밝힌 데 만족을 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OECD 는 자신의 고유한 규범에 따라 유지되어야 하며, 세계화가 노동자들에게 도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OECD는 한국 정부와 같이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부정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세계화 구 호를 앞세우고 서둘러 OECD에 가입했던 한국 정부로서는 새롭고도 강력한 국제적 ‘감시자’를 만난 셈이 됐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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