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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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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0일의 검찰 인사는 올해 대선을 치를 일선 지검장들의 배치를 마쳐놓기 위한 이른바 ‘대선체제형 인사’로 평가된다. 그런 가운데 서 울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 등 검찰의 핵심 요직에 모두 부 산·경남(PK) 출신 인사들이 임명돼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들 3대 요직에 임명된 검찰간부들은 어떤 사람일까.
안강민 서울지검장 김대중 총재 기소 경력
우선 서울지검장으로 임명된 안강민(왼쪽 사진) 전 대검 중수부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6·25로 경기중학교가 부산에 피난와 있을 때 입학해 경기고를 나왔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이 부산·경남으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호탕한 성격에 대인관계가 좋아 정치인·언론인·안기부 간부에서 운동권 출신 에 이르기까지 교제폭도 넓다. 보기와 달리 세심하고, 때로는 소심 하기도 하다고 가까운 사람들은 말한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요즘에도 평 균해볼 때 하루에 폭탄주 서너잔은 거뜬히 마시는, 거의 기인에 가까운 주당이다.
원래는 특수부 검사를 오래 했는데 89년 공안정국을 앞두고 서울지검 공 안1부장이 되면서 ‘공안통’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마침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이 검찰에 송치돼 오자 서울지검 공안1부는 수사를 벌인 끝에 김 대중 총재를 불고지 혐의로 기소했다. 이로 인해 당시 김기춘 검찰총장, 이건개 대검 공안부장(현 자민련 국회의원), 이상형 수사검사(현 대검 공 안2과장)와 함께 ‘공안4인방’으로 꼽혔다.
자신은 자꾸 공안통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좋지 않았던지 93년 대학동기인 김두희 총장이 법무장관이 되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대검 공 안부장만 빼달라는 ‘인사청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공안부장이 됐다.
지난 95년 가을 인사에서 안 검사장은 마침내 중수부장이 됐다. 그리고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이 터졌다. 안 검사장으로서는 노 대통 령 시절 노씨의 최대 정적인 김대중 총재를 기소했고, 김영삼 대통령 시 절에는 노씨를 구속한 검사가 됐다.
96년 초 검찰 간부들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안 검사장은 김영삼 대통령 에게 “사건을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다른 참석자들이 전했다. 수사하면서 안 검사장이 행사했던 ‘소신’의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 아직 정확히 평가하기 힘들다. 또 이 사건은 대선 자금 문제 등 아직 풀리지 않은 뇌관을 놔두고 있다.
검찰 안에서 이번 인사가 ‘안강민을 위한 인사’라고 말해지기도 하는 만큼 안 검사장으로서는 검찰 안에 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서울지검장 을 맡으면 검찰총장이 되는 선두고지를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이전에 도 그랬듯이 대통령이 바뀌면 먼저 정권에서 어떤 경력을 쌓았느냐가 별 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면 김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정권이 재창출되는 것이 안 검사장에게 유리하다. 또 검찰 안팎에서는 이 런 조건을 우선적으로 놓고서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할 것이다. 그가 대선에서 진정으로 중립을 지킬지, 어떨지는 그의 검사 경력 전체를 압도 할 것이다. 그로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과격한 소신 최병국 대검 중수부장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된 최병국(오른쪽 사진) 전 대검 공안부장은 울산에서 태어나 부 산고를 나왔다. 검사시절 내내 거의 공안부를 떠나지 않은 전형적인 공안 통임에도 이번에 중수부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중수부장 임명은 이번 인 사가 ‘`PK인사’라는 비난을 받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 됐다 .
사법고시 동기 중에 중수부과장, 서울지검 특수부장 등을 거친 강신욱 전 주지검장이 경력으로 보면 중수부장에 적격이다. 검찰 안에서는 강 지검 장이 배제된 이유로 그가 경북고를 나온 대구·경북(TK)이라는 점을 꼽는 다. 또 더러는 강 지검장이 강직하고 꼬장꼬장한 성격이어서 대선을 앞둔 중요한 국면에 중수부장에 앉히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 다. 최 검사장은 ‘차선’으로 임명됐다는 것이다. 최 검사장 본인도 이 번 인사결과가 발표된 1월20일 오전11시께에야 비로소 대검차장으로부터 “너 중수부장 간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 말을 듣고서도 ‘중수부장과 함께 차장방으로 올라오라’는 말인 줄 알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 안에서 그를 고분고분하고 상냥하게 윗사람 말 잘 듣는 스타 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성격이 불 같고 마음에 맞지 않는 소리는 도 저히 자기 입으로 못하는 쪽에 가깝다.
그는 평검사였던 81년 부산미문화원 사건으로 문부식씨를 구속해 결심공 판 때 사형을 구형했다. 그랬더니 재판 끝나고 법정에서 마주쳤을 때 문 씨가 “새날이 오면 당신에게 사형이 구형될 것이다”고 말했고 최 검사 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런 날 오면 권총 가지고 당신 쏴죽이고 나는 자살할 것이다”라며 바로 받아쳤다는 섬뜩한(?)일화가 남아 있다. 지난해 여름 한총련 사태가 터진 뒤 서울지검에서 3백여명에 달하는 연행 자 전원을 입건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때 대검 공안부장인 최 검사장에게 기자들이 몰려가자 그는 다소 목소리를 높였다.
“공안검사라는 것이 평소에는 좌익사범 엄단한다고 으름장 놓지만 막상 이런 사태가 터졌을 때는 법과 상식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3백여명을 한 꺼번에 입건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만약 검찰이 그런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쓰는 것이 언론의 도리 아닌가.” 청와대에서 한총련 관계자들에 대한 엄단방침을 계속 밝히고 있었던 때임을 감안하면 대검 공안부장으로 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님은 틀림없다.
이런 그를 중수부장에 임명한 배경에 대해 다른 한 검찰 간부는 “성격이 만만치 않지만 한번 결정된 일에는 말없이 따르는 스타일이어서 윗사람들 에게는 덜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또다른 이들은 대 선 국면에서는 공안부가 바쁘지 중수부는 바쁠 일이 없기 때문에 최 검사 장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주선회 대검 공안부장 자기 목소리 낼까?
마지막으로 주선회(왼쪽 사진) 대검 공안부장(전 대검 감찰부장)은 특별한 개성이나 전공분야가 있다기보다 원만하고 무난한 성격이 ‘장점’으로 작용한 것 으로 분석되고 있다. 마산상고를 나와 부산·경남으로 분류되지만 검찰 안의 인맥으로 보면 고대 인맥에 가깝다. 공안부장에 임명되기 전부터 고 대 법대 선배인 김기수 검찰총장에게 매우 가까운 참모 구실을 해왔다. 사시 10회인 그는 동기들이 선후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약이 돋보이지 않은 가운데 김영삼 정부 출범 뒤 선두주자 대열에 올라 공안과 특수분야 를 두루 거쳤다. 뚜렷한 ‘실적’도 ‘실책’도 없다는 것이 대체로 소신 이나 입장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 다.
대검 공안부장직은 서울지검장이나 중수부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게가 낮은 자리지만 선거국면에서는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 는 각종 공안사건들이 예상되는 만큼 대검 공안부장으로서 그의 행보와 처신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을 앞둔 선거사범 수사 등 에서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낼지 관심거리다.
임범 기자/ 한겨레 사회1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