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자민련이 신한국당 곶감이냐

(사진/"변절자를 처단하라". 이구동성으로 탈당자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지만 대선 전에 5~6명의 탈당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소리가 나와 긴장이 감돈다.)

지난 1월22일 열린 영수회담은 알려진 것 이상으로 험악한 분위기였던 것 으로 전해졌다. 논쟁의 주역은 주로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 다.

“야당 파괴공작을 그만두세요. 지금도 여러 의원들을 쑤셔대는데 왜 이 런 일 합니까. 잘 하는 일이 아니지 않아요”(김 총재).

“본인들이 알아서 한 일 아닙니까. 아니, 김 총재와 30년 동지라는 사람 (최각규 강원지사)을 무슨 수로 공작합니까. 중앙정보부였다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지만…”(김 대통령).

‘야당파괴 중지’ 언질 없어 회담결렬 선언

이날 대좌에서 김 총재는 “나도 30년 여당 하다 이제 겨우 5년 야당한 사람인데 산전수전 다 겪은 대통령이 그럴 수 있느냐”고 거세게 항의하 면서 차에 손도 대지 않았을 정도로 격앙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재로 서는 ‘야당파괴공작 중지’에 대한 아무런 언질도 받아내지 못한 이날 회담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실제로 영수회담 이후 자민련의 대여 강경자세에 대해서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만큼 자민련의 위기의식이 심각하다는 얘 기도 된다. 일부 의원들도 “여당쪽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민련 의원 5~6명이 나가기로 했고 그중 몇몇은 오늘내일 한다더라’는 말을 듣는다 ”면서 “마타도어만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당사자나 주변의 부인에도 그럴싸한 이유와 함께 탈당 대상자들의 이름이 공공연히 거명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충청권의 구천서, 김범명 의원 등의 경우, 공천 시점에서 뒤늦게 여당을 탈당했다는 ‘당성 부족’과 함 께 신한국당 실세들과의 인연이 탈당 가능성의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이 ‘탈당 1순위’로 꼽고 있는 허남훈 정책위 의장에 대해 서는 당 3역이 참가하게 돼 있는 야당의 반독재투쟁공동위에 계속 나갈 경우 나중에 모양이 우습게 될 것을 우려해 여권이 ‘외유를 종용했다’ 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 허 의장은 1월11일 건강진단 등을 이유로 출 국한 뒤 당 지도부의 거듭된 조기귀국 요청에도 귀국을 늦춘 것으로 전해 졌다. 오산·화성의 박신원 의원은 정치적 대부였던 이병희 의원의 사망 이후 ‘흔들릴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꼽히고 있으며, 안양 만안의 권수 창 의원도 여전히 여권의 관심대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구·경북(TK)권 인사들의 동요설도 만만치 않은 근거를 지니고 있다. 몇달째 당사에 나오지 않고 있는 박준규 최고고문이나 1월6일 열흘 예정 으로 출국한 뒤 귀국을 늦추고 있는 김복동 수석부총재에 대해서는 “총 재의 양해를 얻었다”거나 “디스크 진단을 위한 것”이라는 게 공식적인 해명이지만 당무 소외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유력하다. 이 밖에 92년 대선 당시 대구시장으로 ‘우리가 남이가’의 주역 중 하나였 던 이의익 의원이나 경북지역의 유일한 자민련 의원인 김종학 의원 등도 여권이 자민련의 대구·경북 기반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

여권성향 인사 탈당 1순위

당 관계자들은 만에 하나 이들 의원들이 탈당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하더라 도 노동법 파문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신한국당 정서 때문에라도 당장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관계자들도 대 선 이전에 탈당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오는 3월 초 인천서구와 수원장안 보궐선거를 전후해 여권이 과반수 유지 차원에서 다시 세불리기에 나설 것이며, 국민회의와의 후보단일화가 가시화되는 시 점에서 친여권 성향의 의원들이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는 것이 다.

한 관계자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최각규 지사 등의 탈당 이후 당운영 체제의 개선 등 당 차원의 아무런 대책이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라고 털어놓았다. 여권의 ‘자민련 흔들기’가 어차피 정권과의 역관계라는 큰 틀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김종필 총재-김용환 총장으로만 이어지는 현재의 당운영체제가 의원들의 소외감을 부추겨 당 에서 떠나게 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현호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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