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사법연수원생 총파업 관련 모금

사법연수원 27기생들(98년 판,검사 임용 및 변호사 자격 취득 예정자)이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처리에서 비롯된 총파업 정국에서 집단적인 의 사표시를 해 법조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7기생들은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한 시민단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2%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다”는 의견을 내놔 세간 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예비법조인들은 노동법 등의 날치기 처리에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노동계의 파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성금을 모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가재환 사법연수원장은 “아무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외부에서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하는 것 같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했으나 그 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조인은 거의 없다.

1백80여명이 1인당 3만원씩 갹출

물론 이들의 움직임은 사건의 전말을 법원, 검찰 등 ‘법조 선배’들에게 ‘해명’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법조계를 이끌어갈 예비법조인들이라는 점과 과거와는 달리 사법부 자체의 문제가 아닌 민감 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집단적인 의사표시를 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모임에 참가한 연수생이 1백80명으로 전체 연수생 절반을 넘는 데다 지방에 내려가 있는 연수생을 제외하면 서울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연수생이 참여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선배 법조인들을 뜨끔하게 했을 법 한 `‘사건’이었다.

지난해 말 노동법과 안기부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컴퓨터 통신 하이텔에 개설된 `‘사법연수원 열린마당’을 중심으로 연수생들 사이에 활발한 토 론이 벌어져 날치기 처리가 부당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들은 지난 1월11일 동기생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70~80명이 모여 성금을 걷기로 결정해 한 사람당 3만원씩 모두 5백40여만원을 모았다. 이들은 애초 총파 업에 대한 지지성명을 내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자신들이 공무원 신분인 점을 감안해 `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 대책위’(범대위·공동대표 김상곤 한신대 교수)에 대한 지원이나 총파업 의 정당성을 알리는 공청회 개최 등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일 단 모금을 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의 조심스런 움직임은 연수원쪽에 감지돼 지난 1월23일과 24 일 서울지법과 서울지검에 근무하는 판·검사 시보 80여명을 불러 연수원 장이 직접 면담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연수원장은 연수생들의 집단행동 이 국가공무원법에 위반돼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며 자제를 당부한 것으 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도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법처리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임용을 앞둔 공무원 신분의 연수생들을 압박했다.

파문이 커지자 연수생들은 가재환 사법연수원장과 김원치 서울지검 1차장 검사를 만나 유감의 뜻을 전하고 모은 돈을 재야단체 등에 전달하지 않고 모두 되돌려주겠다고 밝혀 파문은 일단락됐다.

연수원생들은 “연수원쪽이 모금활동의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는 데다 검 찰이 담당검사를 정해 조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 등 모금에 주도적인 구실을 한 연수원생들에게 불이익이 따를 가능성이 있어 이런 결정을 내 렸다”고 밝혔다.

“날치기의 위법성 알리려 했다”

그러나 연수원생들이 모금철회와 사죄의 뜻을 밝혔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 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파문이 불거진 24일 연수원생 대표는 서울지검 기자실로 찾아와 “노동법 등의 날치기 처리가 의회주의와 법치주의를 유린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해 `법률을 공 부하고 장차 법조인으로서 법률을 해석·집행할 사법연수원생으로서 연수 생들의 견해를 어떠한 형식으로든 발표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의식으 로 자연발생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여왔다”며 노동법 등의 날치기 처리가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는 `‘문제가 있는’ 법률임을 분명히 밝혔다.

연수원생들은 또 “모금운동의 주체가 노동법학회나 일부 운동권 출신은 절대 아니다”며 이번 모금운동이 사법연수원생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바 탕으로 한 자연발생적인 행동이었음을 강조했다.

아무튼 예비법조인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은 많은 선배 법조인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있는 외침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종규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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