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희망의 사람들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4백만 필리핀 해외노동자의 벗 ‘가비간’

(사진/휴일에 오갈 곳 없는 홍콩의 `필리핀 가정부'들이 모여드는 홍콩의 센트럴광장. 궁금했던 고향소식도 듣고 답답한 처지를 수다로 풀기도 한다. )

홍콩 중심부 센트럴광장에는 일요일만 되면 색다른 모임이 열린다. 수천 명에 이르는 까무잡잡한 여성들이 광장 곳곳에 모여 ‘수다’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나이도 제각각이다. 이미 50줄에 들어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20살이 갓 됐을까 싶은 젊은 아가씨들도 많다. 약 12만명으로 추산되는 홍콩의 ‘필리핀 가정부’들의 일요일 바 깥나들이 풍경이다.

‘필리핀 가정부’홍콩에만 12만여명

이들은 고국의 동향 출신끼리 모여 ‘고향에 대한 향수’를 나누고, 가정 부 생활의 어려움을 서로에 대한 위로로 달랜다. 고향에서 학교 선생님과 제자 사이였던 이들도 이곳에서는 다만 고국을 떠난 ‘필리핀 가정부’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정부 임금으로 고향의 가족생계를 책임지고 있 다는 점도 대다수 필리핀 가정부들의 공통점이다.

홍콩사람들이 ‘아마’라고 부르는 이들이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는 간단 하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공식적인 휴일이지만, 그렇다고 물 가가 높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이들이 갈 만한 곳은 흔치 않다. 또 센트럴 광장에 오면 필리핀에서 나오는 신문 등 고국 소식을 접할 수도 있지 않 은가.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비단 홍콩뿐만이 아니다. 가정부 등으로 필 리핀 노동자들이 나가 있는 나라가 모두 1백30여개국에 이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연합·한국 등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필리핀 노 동자들은 총 4백만명, 단일 국가의 인력 송출 규모로는 세계 최고다.

필리핀은 이들 4백만 해외송출 노동자들을 ‘바공 바야니(새로운 영웅들) ’라 부른다. 노동자 수출이 현 라모스 정부의 ‘공식’ 정책은 아니지만 , 필리핀 입국비자 도장에까지 새겨져 있는 ‘필리핀 2000’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수출정책’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이들이 조국의 가 족에게 보낸 돈은 공식적으로 60억달러다. 하지만 비공식적 송금까지 더 하면 이들이 벌어들인 금액은 1백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필리핀 경제성 장에 최대 산업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필리핀의 ‘영웅’이 됐다. “글쎄 그들이 영웅일지도 모르죠. 우선 필리핀 경제에서 그들이 차지하 고 있는 몫이 만만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현 노동자 해외송출제도는 남성 노동력이 아닌 여성노동력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필리핀 정부 차 원에서의 지원도 대단히 미약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에서 가 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노동자 중 하나죠. 영웅이라면 아마 ‘상처뿐인 영웅’일 겁니다.”

필리핀 해외송출 노동자를 돕는 비정부기구(NGO) ‘가비간’(KAIBIGAN· 필리핀 해외이주 노동자의 친구들)의 아넬 구스만(41) 사무국장은 해외 송출 노동자에 대한 ‘영웅’ 칭호가 못내 불만인 모양이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환락도시’ 퀘존 에브뉴에 있는 ‘가비 간’ 사무실을 찾은 것은 지난 1월16일. 두 딸아이의 아버지로 필리핀대 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구스만은 그래서인지 유달리 해외로 나간 여성노동자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

1천여명이 외국 감옥에서 시름

(사진/해외로 떠나는 노동자의 벗 `가비간'. 타국에서 상처받지 않도록 권리와 인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지난 95년 3월 싱가포르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가정부 플로르 콘템플라시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동료 필리 핀 가정부를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싱가포르 당국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 았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통령 직속 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살해된 필리 핀 가정부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정도의 극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지적 했습니다. 범인이 건장한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싱가 포르는 콘템플라시온에 대한 사형집행을 했습니다. 필리핀 노동자들에 대 한 ‘적대적 편견’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당시 그의 장례식에 는 수만명 의 군중들이 모였고 한때 싱가포르와는 외교관계 단절상황까지 갔습니다. ”

구스만은 하지만 그뒤로도 필리핀 해외송출 노동자들의 인권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주검으로 가족의 품에 다시 돌아온 이는 콘템플라시온만이 아닙니다. 필리핀 외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천명의 필리핀 노동자가 세계 곳 곳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고, 그중 1백여명은 사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리고 ‘영웅들’ 은 하루에 두명꼴로 필리핀 공항에 주검으로 입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귀국한 샤라 발라바간(18)도 ‘정신적 죽임’을 당 한 사례죠. 그는 당시 자신을 강간한 아랍에미리트연합 고용인을 살해한 뒤 2년여의 복역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구스만은 또 필리핀 여성들의 해외진출문제가 결코 ‘가정부 문제’에 국 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비간의 사무실이 왜 이곳 퀘존 에브뉴에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이곳 이 일본으로 가는 필리핀 접대부의 ‘훈련장’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퀘 존 에브뉴는 마닐라에서 가장 큰 환락가죠. 이곳 클럽에서 벌어지는 쇼는 바로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과 똑같습니다.”

구스만은 70년대 후반부터 일본 유흥업소들이 ‘연예인’을 수입하면서 가난 탈출을 꿈꾸는 수많은 필리핀 소녀들이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매춘부·댄서로 이곳에 돌아와 향락의 터전을 만들 고 있고, 또다른 어린 소녀들은 이곳의 경험을 밑천으로 해 외국의 클럽 으로 떠난다. 해외 여성노동자 진출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 . 가비간이 이 ‘훈련장’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것은 성의 노예로 조 국을 떠나고, 상처를 안고 돌아오는 여성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 되고 싶 었던 탓이다.

가비간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81년이다. 해외이주 노동자를 돕는 필리핀 의 첫 민간단체였다. 필리핀 노동자의 해외진출이 지난 74년께부터 시작 된 것을 생각할 때 다소 늦은감마저 든다.

“필리핀의 노동자 해외송출제도는 당시 대통령인 독재자 마르코스가 한 국의 노동자 해외송출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비 간은 모든 해외 진출 노동자를 돕기 위해 연구기관 형식으로 시작됐습니 다. 우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이탈리아 등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필리핀 인들을 돕기 위한 현지 모임구성 노력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 서 해외송출 노동자 지원단체가 늦게 만들어진 것은 이것이 반독재투쟁과 긴밀히 관계가 있다는 필리핀 당국의 시각 탓도 큽니다. 해외에는 이미 해외송출 노동자로 구성된 반독재 민주화 추진단체가 많았으니까요.”

해외취업 여성 사전교육으로 권리침해 막아

(사진/싱가포르 당국이 필리핀 가정부 플로르 콘템플라시온의 사형을 집행하자 필리핀인들이 싱가포르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많은 필리핀인들은 편견이 사형을 선고했다고 믿고 있다.)


구스만은 해외진출 노동자를 돕는 단체가 80년대 중반 들어 스무개 이상 으로 늘면서 각 단체들은 상담·교육·법률적 지원, 재통합 교육, 가족 지원 등 각자의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대응하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9개 단체는 ‘필리핀 해외노동 자 권리 감시’라는 연대망을 만들어 함께 하고 있다. 가비간은 이 연대 틀 가운데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중심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필리핀 노동자 해외진출 성향이 ‘여성화’한 것은 지난 80년대 후반부 터입니다. 그 전만 해도 여성노동자의 해외진출은 전체의 20%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절반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가비간이 여성노동자 문 제를 중시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여 성들이 취업하러 외국에 나가기 전에 그들이 권리를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사전교육을 하는 것을 무척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구스만의 설명이다. 이러한 ‘여성화’는 필리핀 사회에서 외국의 필리핀 노동자의 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언론은 정신적·신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고 가족 곁으로 돌아오는 여성들에 대하여 지면을 크게 할애하고 있다. 여성 취업자의 대부분이 취 업 국가의 노동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가정부’나 ‘연예인’으 로 일하고 있어, 인권침해의 고통은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비간은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7명의 상근자를 중심으로 ‘여성노동자’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구스 만과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바로 옆의 작은 강의실에서는 열정적인 강의 가 계속되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교육받고 있는 10여명 남짓의 여성들이 그들이 가정부로 취업할 말레이시아의 정치·경제·법률 등의 개괄적 내 용과 스스로의 인권보호를 위한 방법을 공부하느라 사뭇 진지하다.

“정부는 취업 전 교육을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5개 민간단체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죠. 가비간은 일주일에 5일씩, 하루 평균 80명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도 완벽한 교육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은 교육비로 50페소(1천5백원)를 내고 이곳에서 6시간의 짧 은 교육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삶의 조건을 ‘맛보기’하는 정도입니다. ”

가비간이 해외취업이 예정된 이들에 대한 교육 못지 않게 중요시하는 것 이 노동자의 해외진출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여 성노동자들도 결국은 해외송출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해외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외국으로 나가기 전, 현지 취업, 귀국 뒤 국내적응등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높은 수속비입니다. ”

구스만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한국이나 일본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중개기 관에 필리핀 국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석달치 월급 정도인 1만7천페소(5 1만원)를 지불해야 한다. 이 중개료는 산업연수생 등 ‘합법적’으로 취 업하는 경우이다. ‘불법 취업’을 하는 이들은 공식비용의 꼭 열배를 치 러야 한국에 갈 수 있다. 그 다음은 현지에 취업해서 겪는 어려움이다. “신체적·정신적인 어려움은 물론이지만, 계약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 는 등 계약위반도 심각합니다. 해외취업 노동자들은 또 고국으로 돌아와 서도 새로운 문제에 부닥칩니다. 필리핀 노동자의 해외취업 기간은 2년에 서 6년 정도입니다. 지난 70~80년대의 한국의 경우와 달리 필리핀은 노동 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직업을 찾기가 어려워 사회 부적응 현상이 심각합 니다.”

마닐라 도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프라이드’ 택시운전사의 상당수 는 한국에서 돌아온 노동자라고 그는 설명한다. 한국에서 돈을 제법 모아 왔지만 직업이 마땅찮아 값이 상대적으로 싼 ‘프라이드’를 사서 택시운 전을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것은 성공한 경우에 속한다.

“국민이 각성해야 비극 막는다” 홍보에 주력

구스만은 이렇게 해외진출 노동자 문제가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계속 늘고 있지만, 단체의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고백한다. 재정문제 탓이다.

“재정의 90%는 자체 사업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노동자 교육을 위해 강 의실을 만들면서 사무실은 한켠으로 밀려나 더욱 좁아졌습니다. 결국 상 근자도 초기 20명에서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가비간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홍보에 대한 투자만은 늦추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각성’이고, 이 때 중요한 것이 홍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87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토요일 11시 AM 774Khz의 홍보·교육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이다.

혹시 토요일 정오에 마닐라에 있게 된다면 라디오를 켜보자. 필리핀 해외 진출 노동자의 희망인 ‘필리핀 해외이주 노동자의 친구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이다.

마닐라=남상민/ 녹색연합 간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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