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최경희씨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숲속의 쉼터 “침탈금지”

(사진/도심의 아파트 한쪽에 숨겨진 숲은 고향의 정취를 내뿜는 비밀의 땅이다. 숨쉬는 자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숲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옹달샘, 물자작나무, 묵박달, 그리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들….

숲이며 물이 온전했던 시절, 동네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지금은 일부러 깊은 곳까지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풍경이 됐지만 그땐 그랬다. 한데 놀랍게도 그런 자연이 회색빛 아파트단지 근처에 숨어 있다 .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동쪽 숲속이 그런 비밀의 땅이다.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린다. 아침마다 산책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나무 사이를 달리며 논다. 여름엔 매미를 잡고, 가 을엔 잠자리를 쫓는다. 사람들에게 숲은 서울이 아닌 고향을 떠올리게 한 다.

“생태학자들에게 조사를 의뢰했더니 서울에서는 거의 사라진 8등급 녹지 (녹지는 10등급이 가장 좋고, 물은 1급수가 가장 좋다. )를 포함하고 있 대요. 수령 20년이 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룬다는 얘기죠. 동식물의 종류 도 많고요. 게다가 숲속엔 자연적으로 생긴 습지가 2곳이나 있다는 거예 요. 서울의 마지막 습지라나요. 우리는 그런 자연을 잃고 싶지 않답니다. ”

최경희(60·사진 뒷줄 맨 오른쪽)씨의 하소연은 숲에 대한 주민들의 마음 을 읽게 한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은 그런 조심스러움과 따뜻함. 그래서 밖으로 내뿜는 의지는 단호하다. “숲을 꼭 지킬겁니다. 사람들은 그런 싸움을 환경운동이라고 하대요.”

최씨의 숲 지키기 싸움은 벌써 5개월 가까이 된다. 상대는 강동구청. 구 청이 교통난 해소를 내세우며 지난해 9월 숲을 관통하는 도로를 뚫겠다고 발표한 이후 벌어진 싸움이다. 최씨에겐 아파트 주민들이 든든한 아군이 다. 이영애(43)씨, 이윤지(36)씨 등 주부 20여명이 그와 뜻을 같이 한다. “대부분 여자들이지만 결의는 뜨거워요. 우리의 권리를 지킨다는 생각으 로 당당하게 행동하죠.”.

문제는 교통난이었다. 당시 강동구청은 거여동길의 교통체증을 이유로 숲 을 가로질러 너비 15m, 길이 1천2백여m의 도로를 내겠다고 밝혔다. 주민 들에게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구청이 예고한 도로는 옹달샘 2곳을 중 심으로 오리나무와 물자작나무 등, 이미 서울에서는 사라져 버린 나무들 이 빼곡히 들어찬 6만여평의 숲을 뚫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구청의 계획이 알려지자 즉각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구청 공무 원을 불러 설명회를 열기도 했고, 지역 국회의원과 시·구의원들을 찾아 다니며 숲의 중요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시립대 이경재(환경생태학) 교수를 초빙해 숲의 생태학적 가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의뢰한 것도 이 때다. 분석결과는 주민들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옹달샘에서 나오는 물은 1급수에 해당합니다. 옹달샘 부근 습지를 중심 으로 조성된 6만여평의 녹지 가운데 34% 가량은 8등급으로 절대적인 보존 가치가 있습니다. 숲에는 19종의 나무를 비롯해, 도심에서 볼 수 없는 개 구리와 각종 새들이 서식하고 있어요. 학생들을 위한 자연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청은 완강했다. 주민들의 요구를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로 보는 듯도 했다. “구청에서 우리가 소음과 진동 등 1차적인 주거환경만을 문 제삼아 공사를 반대하는 것처럼 몰아붙일 때는 참 서운했어요. 도로건설 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죠.”

싸움 속에서 주민들의 숲에 대한 사랑은 깊어갔다. 특히 올해로 환갑을 맞은 최씨는 “숲이 손주같기도 하고 어머니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늘 그막에 미국생활을 마치고 지난 93년 이곳으로 이주한 최씨는 처음 숲을 봤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기억한다. “처음 이곳을 본 순간 `가슴이 떨렸 어요. 삭막한 서울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을까. 탄성이 절로 나 왔죠.”

최씨는 이후 매일 숲을 산책하며 숲에 빠져들어갔다. 옹달샘과, 근처에서 자라난 풀과 나무의 관계를 관찰하기도 하고, 새들의 행동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숲이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는 보 금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옹달샘을 중심으로 습지가 살아 숨쉬 고 있어요. 이 습지로부터 방사선 형태로 각종 풀과 나무들이 질서있게 살고 있죠. 나무의 고마움과 옹달샘의 포근함을 새삼 느낍니다.”

최씨는 지금 진화론의 신학적 의미를 저술한 고생물학자이며 신부인 에이 아드 샤르텡의 저서를 번역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에 시달리는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해요. 샤르텡 신부는 이 자연의 신음이 자연파괴로 인 간의 입에서 곧 새어나올 신음의 전주곡이라고 해요.”

강남규 기자/ 한겨레 사회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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