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복고풍에 활력이 넘친다

(사진/한국 초유의 슈퍼그룹 `지니'는 보수적인 록을 들려준다.)

신현준/ 대중음악 평론가

오늘의 텍스트 : 지니(Geenie)의 , 걸(Girl)의 <>, 이한철의 <되는 건 되는 거야!>.

공통점은 모두 2집 앨범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의 스타일은 모두 다르 다. 그렇지만 또하나의 희미한 공통된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다. 그것은 ‘복고’라는 메시지다.

솔로 활동으로 상당한 인기를 축적해놓은 신성우, 015B에서 기타를 연주 했던 장호일이 주축이 된 한국 초유의 슈퍼그룹 지니는 70년대 말 - 80년 대 초의 음악 스타일을 담았다. 인트로로 삽입된 <이건 또 뭐야>의 리듬 패턴은 1980년을 시끄럽게 장식한 <펑키 타운>을 연상시키고, 이어지는 타이틀 곡 <바른 생활>과 <보통 여자>는 펑크와 메탈을 섞어놓은 듯한 업 템포의 곡이다. 이어 록 발라드 <재회>가 안전핀처럼 사이에 꽂혀 있더니 , 70년대 말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낵(The Knack)의 <마이 섀로나>(My S harona)가 원곡에 충실하게 커버되고 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지니는 자신들의 성장기에 들었던 음악들을 회고하고 있다. 기타와 드럼 의 음색과 주법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이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고 정겹다.

이들을 복고라고 규정하는 것에 항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른 생활> 같은 곡들은 90년대에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른바 ‘뉴 펑크 팝’ 스타 일 아닌가. 그렇지만 뉴 펑크가 펑크를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정착시켰다 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결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표현하지 않는 이들의 록 음악은 보수적이다.


미디어 미학의 원형을 좇아서

1년 전 걸(Girl)이 ‘낡아빠진’ 스타일의 <아스피린>이라는 곡을 발표했 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신선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록 밴드들이 빠르 고, 거칠고, 무겁고, 시끄러운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을 때 걸은 정반대의 스타일을 들고 나왔고 그래서 히트가요 차트에서도 파란을 일으켰다. 이 번 앨범에서도 그들은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 는 전형적인 50년대의 로커빌리(rockabilly) 스타일의 곡이 다. 또한 <추억… 꿈>은 ‘아메리칸 록’이라고 통칭되는 70년대 스타일 의 곡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 ‘이미지로 승부하는 틴 아이돌 밴드’, ‘또하나의 신기한 구경거리’라고 비판하는 것은 일면적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들에 게는 스타일의 일관성이라는 밴드로서 소중한 미덕이 있고, 그것을 ‘요 즘 세태’의 이야기로 얽어내는 재능이 있다. 그래서 ‘왜 이번에도 똑같 이’이라는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왜 하필이면 지금’이라는 질문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들은 작년부터 불어닥친 “촌스러운 것이 아름답다”는 미디어 미학(우 리 사회에 이것보다 강력한 미학이 있을까?)의 록 음악적 버전으로 이해 하면 그만일까. 그런데 로큰롤의 12마디 코러스와 색소폰의 울어젖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새 춤추거나 거리를 쏘다니는 청소년 무리들은 잘 보 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는 50년대의 클리블랜드는 아니니까….

(사진/대학가요제에서 로큰롤 넘버로 대상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젊은 뮤지션 이한철은 복고와 첨단의 유기적인 결합을 시도했다.)

대학가요제에서 50년대 풍의 로큰롤 넘버로 그랑프리를 차지했던 사실에 서 알 수 있듯, 이한철은 오래된 음악을 멸시하지 않는 젊은 뮤지션이다( 이는 결코 흔치 않다). 또한- 서울에서 자라난 이의 편견이겠지만- 경상 도 억양이 섞인 그의 발음은 ‘촌스럽게’ 들린다(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 상적인 곡 <아야>에는 경상도 사투리의 짤막한 삽입구가 있다).

하지만 그는 ‘오래된 스타일을 촌스럽게 부르는 것’으로 머물지는 않기 로 작정한 모양이다. 또한 데뷔 앨범의 정갈하고 안정된 편곡과도 거리를 두고자 한 듯하다. 한마디로 말해, 멜로디와 화성은 촌스럽고 관습적인 반면, 리듬과 음색은 첨단적이고 복잡하다. 리듬 파트를 전자 테크놀로지 에 위탁한 것은 경제적 이유를 넘어서 음악적 효과를 노린 것이다. 타이 틀 곡 <안 되는 건 안 돼>는 디스코 리듬이 슬쩍 섞여 있고, <러시 아워> 에서는 펑키한 리듬이 넘실거리고, 펑크 넘버인 은 중반부 이후 레게 리듬으로 장난을 쳐놓았다. <안 되는 건 안 돼>의 두 개의 댄스 리 믹스 버전을 통해 본격적인 장난의 손길을 맞기도 한다.

그의 시도가 충분히 성공적인지, 즉 복고와 첨단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었 는지에 대한 판단은 청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양자가 공존하고 있는 상태 는 흥미롭다. 적어도 나처럼 ‘나이든’ 사람은 이 음반을 들으면서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촌놈처럼’(사투리로) 자신있게 노래불 렀던 초창기 로큰롤 뮤지션들의 커다란 입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음악의 역사는 “악기를 남용했던 역사”라든가 “화성은 단순해진 반면 리듬은 복잡해진 역사”라는 어떤 학자이자 평론가의 말이다.


촌스런 멜로리에 첨단 음색 선보여

90년대 중반의 팝 음악계는 세계적인 복고풍 유행과 ‘음악 민족주의’ 현상을 낳고 있다. ‘무국적 신세대’라는 또하나의 세계적 현상을 생각 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이 현상들에 직면하여 좋았던 옛 시절을 회고하면 서 향수에 젖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보수적일 뿐이라고 단정하는 양 자택일 이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근본적 단절과 혁신이라는 길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어려 운’ 길 말고도 오래된 스타일을 낮설게 재배치하는 길은 늘 열려 있다. 즉 복고는 현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단 그 방법이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제공할 때이다. 그럴 때만 복 고는 복고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사족’ 오늘 들은 뮤지션들은 많은 곡에서 ‘세태 풍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식상하게 된다. 세태 풍자가 하나의 세태가 되어버린, 즉 세태 풍자마저도 풍자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일까….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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