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총파업에 꽃핀 ‘정치문화’

(사진/"넥타이가 열 받으면 정권이 바뀐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검은 넥타이를 착용하는 등 적극적인 저항으로 총파업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26일 정부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이후 우리 사회는 격변을 겪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중산층 인파들로 인해 87년 6 월항쟁과 비교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이번 파업과정에선 오랜 침묵을 깬 넥타이 부대의 부활 몸짓, 일반 통신인들의 활약 등 자기 목소리를 당 당하게 내는 이들이 늘어났다. 물론 이런 현상은 명예퇴직, 정리해고의 여파로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절박한 심정이 중요한 원인이었겠지 만 피드백 작용처럼 이번 경험을 계기로 시민들이 ‘정치에의 참여’를 또한번 배워가면서 새로운 ‘정치문화’의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넥타이 부대의 정치적 목소리

최근 얼마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분노 ’ ‘이반’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사회과학적 단어로는 ‘참여’라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노동자, 시민들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세련 된 항의표시, 유연한 대응, 집단활동을 통해 이권을 획득하는 등 정치를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간의 경쟁 또는 협력을 통해 사회를 변화 시키고 형성하는 행위’라고 개념규정할 때 이들은 말 그대로의 ‘정치’ 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노동운동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사무직 노동자들이 총파업 대오에 합류했다. 일부 화이트칼라는 직장을 뛰쳐나와 거리로 나 섰고 항의표시로 검은 넥타이를 착용했다. 화이트와 블루를 막론하고 노 조에 참여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이번 파업과정은 한마디로 일사불란했다. 정권뿐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총파업에 놀라는 분위기였 다.

전국사무노동조합연맹 권재철(36) 부위원장은 “그간 노동운동이 노동조 합 운동, 노동운동가들의 운동 같은 성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 만 고용불안 시대에 돌입하면서 조합원들이 노조로 뭉치고 있다”면서 “ 지난 87년 6월항쟁이 국민적 공분에 의한 미조직 시민들의 의거였다면 이 번 싸움은 조직의 일원으로 대오에 참가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격을 강 하게 띤다”고 말했다.

참여라는 측면에선 통신분야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미 대안매체로 자리를 잡은 통신공간에선 날치기 직후 진보통신단체연대모임(대표 장여 경)이 민주주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리본을 게재하자고 제안하면서 9 0여개 동호회가 참가했다. 그리고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3대 PC통 신망의 게시판에는 시시각각 전국의 ‘투쟁속보’가 실시간대로 올라왔다 . 인터넷 통신망엔 ‘한국의 총파업’(General Strike in South Korea)이 란 제목의 자료방이 개설돼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시선도 모았다. 노동 계와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생중계 방식’의 온라인 시국대토론회도 열 렸다. ‘정보연대SING’ 이혁(24)씨는 “단절되고 제약이 많은 현실과 달 리 통신공간은 개개인의 의견을 쉽게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 민주주 의를 가능하게 만들고 그 파급력도 크다”면서 “이번을 계기로 통신인들 사이에 텔레데모크라시(통신을 통한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널리 퍼져 앞으로 통신인들의 정치, 사회 참여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참여’가 있었다. 상당수의 대중가수들이 집회 장 무대에 기꺼이 나섰다. 대중가수와 민중가수의 구분도 희미해지면서 집회장을 찾지 않던 가수들도 자신의 콘서트장에서 파업과 관련한 이야기 를 관객과 나눴다. 연예인이라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선 입을 꽉 다물었던 예전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변화다.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총파업이 노동법, 안기부법 무효화에 그치지 않고 이를 중심으로 민중 중심의 실질 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에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통신인·대중문화인 등 활약 두드러져

실제로 한국사회의 ‘정치문화’가 달라지고 있는 걸까?

한국의 전통적 정치문화는 국가의 사회에 대한 권위주의적, 가부장적 지 배와 이에 대한 사회적 도전의 미약함으로 특징지어져 왔다. 그러나 산업 화로 인한 계급의 성장, 교육의 확산으로 인한 시민의식의 형성 등 점진 적인 정치문화의 변모가 한국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의 전통을 약화시켜 왔고 이번 파업정국은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문화’라는 게 뭔가?

‘정치문화’ 개념은 56년 정치학자 알몬드가 처음 주창한 것으로 그는 정치문화를 ‘한 정치공동체의 성원들이 정치에 대해서 갖는 정향의 배분 형태’라는 전제에서 그 유형을 미분화형, 복종형, 참여형 등 3가지로 분 류했다.

미분화형 정치문화에서는 구성원들이 ‘정치’라는 말 자체도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의 독자적인 역할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구성원들이 정치를 모르고 있음으로 해서 안정이 유지되는 재미있는 현상이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복종형은 구성원들이 정치체계와 정치체계의 산출기능에 대해서는 인식하 고 있지만 정치체계의 투입기능과 정치체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는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구성원들은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국민을 위 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긴 하나 ‘정치’란 그들과는 동떨어진 사람들 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어 그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믿고 있다 . 설사 권력자들에 의한 악정이나 폭정으로 불만이 쌓이더라도 그들의 힘 으로는 폭정을 시정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권력자가 개심하거나 다 른 권력자들이 해결해 주길 바랄 뿐이다. 따라서 이런 정치문화에서는 전 제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정치가 행해지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참여형 정치문화는 구성원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스스로 정치를 주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권리의식 내지 주체의식이 내면 화돼 권리를 침해하려는 권력엘리트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민의를 조작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양보하지 않는다. 가장 발전된 정치문화임은 당연하다. 민주정치가 꽃필 수 있는 토대다.

알몬드가 설정한 이같은 3가지 형태는 한 사회에서 혼재돼 그 결합정도에 따라 독특한 양상을 띤다. 학자에 따라서는 최근까지의 우리 정치문화를 복종형과 참여형의 중간형태인 소극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복종이 망친 나라 참여로 살린다”

소극형 정치문화에서는 구성원들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방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주체로의 인식이 확고하지 못해 권리를 스스로 수호하려 는 의지가 희박하고 그래서 권력자들에게 쉽사리 이용당한다. 제도상 규 정된 권리가 구성원들의 체질 속으로 채 스며들지 못한 데도 그 이유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자들이 구성원들을 정치의 참여자로서 보기 보다는 동원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 권력자들은 ‘정치’를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조작을 일삼는다. 이 는 이승만시대 이후 지금의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위정자들이 어떻게 하 면 국민의 관심을 당면정치로부터 돌리기 위해 온갖 애를 썼는지를 살펴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유구한 전통은 이번 파업정국에도 그대로 이어 져 지난 1월22일 안기부가 큰맘 먹고 준비한 ‘북한판 보트피플’이 조작 실수로 허점을 드러내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한겨레> 1월24일자 참조 )

정치문화에는 이처럼 구성원과 별도로 권력엘리트의 정치문화가 따로 형 성되고 있어 큰 변수로 작용한다. 민중의 정치문화가 이번 파업정국을 계 기로 이상형이라고 할 참여형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권력엘리트의 정치문화가 이에 상응하는 형태로 나아가지 않으면 정 치문화는 또한번 파행을 겪게 되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명동성당의 공권력 투입을 포기하고 거부했던 영수회담을 받 아들인 것은 우리 정치사에선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정 부가 공권력 발휘를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숭실대 정외과 김장권 교수는 “정치적 시각에서 ‘양보’는 약자에겐 자 신감을 줘 굉장한 정치참여로 증폭되는 작용이 있다. 10%의 양보가 100% 의 정치참여 확대 효과로 나타나기에 정권은 여간해선 양보하려 하지 않 았다”면서 “과거 우리 정치문화에는 시니시즘(냉소주의)이 지배적이었 으나 이를 계기로 정치참여를 주저했던 사람들이 왕성하게 정치에 참여하 게 될 것이며 전 사회활동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또 “비록 과시적인 측면이 강하긴 했지만 사정, 정치개혁 등 절차적 민 주주의에 대해선 평가받을 만한 진전을 이뤄낸 김영삼 정부가 자신이 만 든 민주주의 성과에 의해 스스로 발목을 잡힌 격”이라면서 “시민운동적 측면이 강했던 이번 총파업 이후 실질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총파업 주체와 권력 상층부 양자 모두의 숙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 시민들은 이제 겨우 승리의 한 자락만을 얼핏 봤을 뿐 아직 얻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참여’에 의해 이뤄져 왔다면 앞으로의 과정에서도 ‘참여’가 그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에서도 ‘사회’에 의한 ‘국가’통제가 가능할 수 있다. 한국의 권력엘 리트들이 향상된 민중의 정치문화에 함께 발맞춰야 될 시기다. 정치학자 들의 이런 논평에도 거꾸로 가려고 부단히 애쓰는 여당의 대표가 정치학 자 출신이라는 점은 이 나라가 가진 슬픈 아이러니다.


‘정치문화’ 봉쇄하는 낡은 것 버려야

한국의 정치문화가 발전지향성을 띠기 위해선 우선 제거돼야 할 것이 있 다. 안기부법, 통신검열 등이 이런 ‘참여’의 정치문화를 억제하려 하고 있다. 정치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선진국에 파업이 어디 있어” 따 위의 시대착오적인 무식함 때문이다. 민중의 향상된 정치문화를 우격다짐 으로 일시 억제할 수 있을는진 모르나 영원할 순 없는 노릇. 뛰어나지도 않은 빌린 머리로, 편법으로 위기를 빠져나가려는 간교를 부리다 보면 사 태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민중편이라는 것이 선대의 교훈이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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