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이 부부의 ‘작은세상’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명절에 생각하는‘아버지’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없다면, 사실 시아버지라는 존재는 굉장히 어려운 분이다. 나만 해도 시어머니와는 수다도 잘 떨고 남편 흉 도 보고 해서, 사실 이제는 그렇게 어려운 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 작했지만, 시아버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려웠다. 내가 인사를 드리면 고 개만 끄덕이셨고, 어쩌다 내게 말을 거실 때면 “사돈은 편안하시냐?”가 전부셨다. 그때 나 또한 “예”하면 그만이었으니,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 이에 대화랄 것도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시아버님께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약간 약주를 드셨는지 그날 따라 다소 고양된 목소리셨다. 아버님은 “니 올해는 내려오지 말그 래이, 알겠나?”하시는 게 아닌가? 사실 남편이 설날을 전후로 해서 취재 여행을 가게 되어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시댁에 내려가야 되나 말아야 되 나 은근히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그 내색을 할 수는 없어서 “ 왜 그러시는지요?”하고 여쭤보게 되었다.

“너그 남동생도 외국 나가고 네 친정 아버지 어머니가 안 적적하겠나?”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님 말씀은 내가 맏자식이니 올해는 친정에서 설을 보내라고 하시며 친정 아버지, 어머니께 잘 해드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사실 요즈음 친정 아버지께서 건강이 별로 좋질 못하셔서 그렇지 않아도 우울해하던 참이었다. 나의 아버지 또한 60, 70, 80년대 그리고 현재까지 정신없이 일만 하시며 살아오신 이 땅의 대부분의 아버지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시아버님의 말씀이 고마워서 목이 메었고, 또 한편으로 친 정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자랑 비슷하게 여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맏며느리인 동생은 마치 언니처럼 내게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언니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설을 보낸다니 다행스럽긴 하지만 내가 맏동서여서 말하는 건데 언 니 동서한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게 어때? 언니가 즐거워하는 동안 언니 동서는 언니 시부모님을 원망할지도 몰라”하는 것이었다. 나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동생의 말에 공감을 했다. 나야 시댁에서 아무리 일 을 한다고 하더라도 단 며칠 손님처럼 왔다 가는 것이지만, 훨씬 자주 시 댁의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동서의 입장이 되고 보면 자신의 신세한탄을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할지 모른다. 여자들끼리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은 많은 경우, 바로 이런 여성들끼리만 어떤 특정한 일을 맡도록 구조 화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떤 여성은 그것에 따르고 또다른 여성은 그것 에서 벗어나 있을 때, 한쪽이 또다른 쪽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감정 때 문이 아닐까.

그리고 드는 또다른 생각 하나. 나의 시아버님이 어쩌면 당신이 적적하시 지만 자식에게 그렇게 말씀하시기 어려우니까 나의 친정 부모님에 대해서 느끼는 동병상련을 말씀하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것 또한 상대편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상대편의 입 장에서 생각하는 것, 나아가 상대편에 대해 배려하는 것, 또한 바로 여기 서 시작되며 그것은 시간이 좀 걸린다 하더라도 서로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 또한 단순히 두 사람의 관계로 끝난다기보다는 무수한 관계로 서로 얽혀 있는 것,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 가는 공간이자 그 과정이다. 동서와 시아버님께 더 자주 전화를 드려야겠 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변재란/ 영화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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