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한국 총파업, 동남아 수출?

(사진/인도네시아 정부는 파업을 주도한 노동단체에 강경대응으로 맞서 점점 긴장이 증폭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신발공장 노동자들.)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모델인 한국에서 최근 벌어지는 대규모 파업사태는 아시아의 다른 개발도상국에도 영향을 줄 것인가. 동아시아지역 전문가들 을 비롯해 외신들은 지난해 12월26일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불붙은 한국 의 대규모 파업을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한국의 이번 파업사태는 경제적 구조와 문화적 성향이 비슷한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동아시아 언론들 깊은 관심 표명

독일 은 한국에서 총파업의 물결이 드높아지던 지난 1월7일 “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이 경기침체와 파업으로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해 있 다”며 “지난해 갑작스런 경기하락세를 보인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한국 과 같은 노사갈등으로 치달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렇게 한국의 파업사태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 는 것은 한국이 아시아 개도국 가운데 ‘가장 발달한 경제적 모델’로 그 시험대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들 나라는 △최근 몇 년간 7% 이상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역동적인 사회라는 점 △정부주도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경제를 단기간에 발전 시킨 점 △다른 개도국에 비해 교육열이 높아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노동 력이 많이 있는 점 등에서 한국과 정치·경제적 바탕을 같이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동아시아 경제의 침체현상은 이 지역이 제2의 한국 파업사태 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동아시아지역 언론들은 한국의 일련의 노동분규에 대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높은 관심을 보였다. 타이·말레이시아· 필리핀·홍콩 등의 방송과 신문들은 지난해 12월26일 노동법의 기습적 통 과 이후 한국 노동계 움직임과 정부의 대응을 연일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 로 보도했다. 이 지역 언론들은 공통적으로 신한국당이 노동관계법을 비 밀리에 변칙 처리한 것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보도 했다. 타이의 <방콕포스트>는 지난해 12월29일 ‘노동자들, 노예법에 도 전’이라는 제하의 서울발 장문의 기사에서 “새 노동관계법이 노동자들 을 노예로 전락시킬 것”이며 “이런 법안을 처리한 국회의원들은 정치인 이 아닌 도둑들”이라고 발언한 노조지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홍 콩의 <명보>도 지난 1월13일자 사설에서 “한국의 이번 파업사태가 홍콩 에 유익한 교훈을 주었다”며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기업과 노동자가 노력하되 노동자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진단 했다.

동아시아 경제는 최근 경제주춤현상을 넘어 경제침체로 접어들고 있어 이 지역에서의 대규모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95 년 미국 스탠퍼드대 폴 크루그먼 교수(경제학)가 제기한 ‘아시아경제 한 계론’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등 외신들 에 따르면 아시아의 우등생을 자랑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그동안 두 자리 수 성장을 유지했으나 지난해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 3/4 분기에는 겨우 3.2%에 그쳤으며 특히 제조업 성장률은 마이너스 3.4%를 기록해 10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보였다. 홍콩 역시 같은 기간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며 타이도 95년 수출성장률이 23.6%에 달했다가 지난해에는 겨우 제자리걸음을 했다. 말레이시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나라는 지 난 95년 22.9%의 성장률을 보였던 공산품 수출이 지난해에는 5.8%로 줄어 들었다.

동아시아 경제가 지난해 이렇게 하강곡선을 보이면서 이 지역에서 어느 해보다 노사분규가 많이 발생했다는 점도 대규모 파업의 ‘가능성’을 높 여주는 부분이다. 그것은 두 자리수의 높은 임금상승률과 다른 개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을 받은 이들 국가의 노동자들이, 최근 경기침 체로 인한 어려움을 회사쪽이 임금삭감을 통해 해결하려 하자 이를 받아 들이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타이 노사분규, 96년에만 1천75건

대표적인 나라는 아세안의 선두주자 타이다. 타이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해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지난 91년 4백95건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1천 75건이다. 타이에 진출한 일본 모터사이클 제조업체인 ‘스즈키-타이’에 서는 지난해 대규모 파업으로 3개월 이상 공장이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 했다. 현재 타이 국내기업과 현지 진출 외국기업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노동쟁의라고 현지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6천만명이 노조에 가입한 인도도 지난해 12월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파업 사태가 발생했다. 인도 국영보험회사 노조원 20만명은 정부의 민영화 방 침과 외국기업의 진출에 대한 항의로 전면파업에 돌입했으며 은행들도 이 에 동참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체신·통신 노조원 2백만명이 보너스 지급문제로 파업에 참여해 인도정국을 뒤흔들었다.

수하르토 정권이 장기간 집권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수도 자카르타와 자바에서는 ‘인도네시아노동자투쟁센터’라는 노동단체의 주도로 파업이 일어나 1만5천명의 노조원들이 격렬한 거리시 위를 벌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파업을 주도한 노동단체의 지도자들에게 국가전복죄를 적용하는 등 강경대응으로 맞서 점점 노·정간 긴장이 증폭 되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지난해 11월 필리핀 항공사 등 대형업체들이 파업에 돌입해 11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껄끄럽게 만들기도 했 다.

은 지난 1월9일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동 안 독재정권의 철권통치로 노사갈등이 표면화하지 않았지만 최근 몇년 동 안 7%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국민들의 정치적 민주화 요구로 한국처럼 노사갈등이 드세어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어느 지역보다 분규 대형화될 수도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게다가 아직까지 이 지역 국가와 기업들이 노사갈등 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어 앞으로 파업 등 노동자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스먼 방콕 주재 국제노동기구(ILO) 부회장 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노조활동과 임금이 억제돼야만 국가와 경제가 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태도는 노동자들의 과격한 대응만 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동아시아 경제가 앞으로 경제회복을 하면 다행이겠지만 장기간 침체에 빠질 경우 이 지역의 노사 분규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보다도 대형화·과격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우 기자/ 한겨레 국제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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