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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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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변한 건 ‘강산’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었다. 87년 6월항 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난 지 꼭 10년 만에 이뤄지고 있는 9 7년 1월 총파업시민항쟁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위상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총단결, 한번 하면 쉬워진다
이번 총파업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 사회적 존재로서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가장 중요한 변화로 지적한다. “87 년 이후 한국의 노조운동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고 건강했지만 그 내용과 쟁점이 사업장 안의 경제적 요구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총파업에서는 지역, 업종, 직종을 뛰어넘어 ‘노동 자는 하나’라는 의식, 즉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 적 실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부산대 김석준 교수(사회학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소장)의 분석이다. 이번 총파업이 ‘사회계급’으 로서 노동자의 첫 사회적 실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 별 노조체계 속에서 경제적인 요구만을 하는 종업원의식을 깨고 제도와 법의 개정까지도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의식, 계급의식으로 성장할 가능 성을 보였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또 “87년 대투쟁은 노조가 만들어지지 않은 무권리상태의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 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계급이나 집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기 보다는 개별화된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차원이었다. 이 점에서 이번 파업 과는 달랐다”고 밝혔다.
인하대 정영태 교수(정치학)도 “사무직, 생산직,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구분없이 총단결로 연대를 과시한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한번 해놓으면 다음에 하기는 무척 쉬워진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총파업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 것은 물론이고, 효과와 자신감까지 얻은 것 이 중요한 성과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정치권력과 전면적으로 맞서 투쟁을 주도했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다른 사회세력과 사회운동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을 보인 셈이다. “6월항쟁에서는 학생 등 중간계급과 군부세력 사이의 팽팽한 교착상태로 인한 힘의 공백을 비집고 노동자들이 일어섰지만, 이번에는 노동자들이 주도권을 확실히 하면서 투쟁의 고삐를 쥐고 정권과 맞섰고, 그 공백에 다양한 계급계층이 범국민대책위(범대위)라는 형태로 참여했다. 순위가 바뀐 것이다.” 상지대 정대화 교수(정치학)의 평가다. “총파업기간 동 안 아무리 보수적인 신문일지라도 이번 싸움이 민주노총과 김영삼 정권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노동계급이 우리사회에 서 일어나는 문제의 정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0년 만에 노동자계급이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위치에 들어섰고, 이는 정치사 회학적으로도 증명된 셈이다”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한국자본주의 성격논쟁 새롭게 일 듯
노동운동과 노동계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늘어남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적 인 변화도 예상된다. 정영태 교수는 시민사회운동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 한다. “92년 이후 학계를 중심으로 민주화나 사회발전의 동력은 노동운 동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이라는 식의 논의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일반 적인 시각을 이뤘다. 노동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나 학문풍토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노동자계급이 가장 핵심적이고 영 향력있는 사회세력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계기였다. 이제 시민운동도 노동운동을 배제하거나 연대하지 않으면 곧 퇴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 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세를 얼마나 확보할지 모르지만 이들이 똘똘 뭉치 면 앞으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정 교수의 지적처럼 학계를 풍미했던 시민사회론의 한계와 변화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 다.
이와 함께 한국자본주의의 성격에 대한 논의도 새롭게 일어날 것으로 예 상된다. 현상적으로 노조조직률도 떨어지고 노조의 현장 장악력도 약화되 는 상황에서 사무전문직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노동자들이 일어날 수 있었 던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조건 때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 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이나 구조개선보다는 노동자에 대한 억압적인 지배나 통제를 통해서 자본축적을 이룰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는 노동자대 중들의 저항과 불만의 요소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