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한국 노동자, 세계 총자본과 싸웠다

(사진/선진국 노동운동계는 한국의 총파업을 주로 `결사의 자유'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 공공부문 노조원들의 대규모 시위.)

“한국의 총파업이 뜨거운 만큼 전세계 노동계도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노동법 날치기 처리에 뒤이어 터져나온 ‘한국총파업’ 에 세계 노동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노동자의 힘’으로 정치권에 날 치기 노동법 재개정을 강제한 이번 한국총파업은 내부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의 부활을 막고, 총파업이 비로소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이번 한국총파업이 세계에 던진 의미는 국내적 의미에 비 해 결코 작지 않다.


인터넷 웹사이트 지지서명 봇물

한국총파업은 우선 최근 국제노동운동계에서 보기 힘든 광범위한 국제연 대를 이끌었다. 이번 한국총파업과 관련한 지지 움직임은 국내에 자주 소 개된 국제자유노련(ICFTU)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노동조합자문 위원회(TUAC)의 활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노련과 함께 전세계 3 대 노동단체인 세계노동조합연맹(WFTU)과 세계기독노동자연맹(WCL)도 각 각 성명과 산하단체의 항의시위 등을 통해 한국 노동자에 강한 연대의식 을 표시해왔다. 또 지난 1월10일에는 필리핀·홍콩·뉴질랜드 등 세계 13 개국에서 한국총파업을 지지하는 동시 항의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국제연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노동운동계에 큰 의미를 던진다고 각국 노동계는 평가하고 있다. 아시아모니터리서치센터(AMRC)의 한 관계자는 “특히 홍콩의 경우 친중국계와 반중국계로 나뉘어 반목하던 노동계가 지 난 1월10일 시위를 공동조직하면서 서로간의 이해를 넓혔다”고 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한국총파업보도 홈페이지(http://kpd.kr.org/st rike)에 만들어진 지지서명란에도 외국인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 이 홈 페이지를 주관하고 있는 ‘정보연대SING’에 따르면, 총파업 이후 지난 1 월24일까지의 서명자 1천5백여명 중 4분의 1이 외국인이다. 한국 웹사이 트로서는 가히 기록적인 수치다. 서명자들 중에는 개인도 많지만, 남아프 리카노동조합총동맹(COSATU) 등 외국 노동단체들의 지지선언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왜 선진국과 제3세계를 망라한 전세계 노동계가 한국총파업에 이렇게 높 은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또 역으로 한국총파업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한국 노동운동이 한국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 양면성’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계의 세계 노동운동사에 서의 위치는 한국 자본주의가 세계 자본주의시장에서 갖는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난해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문을 막 두드리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재벌 중심의 경제운영 등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성격도 이 ‘규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민주노총 등 ‘ 실체적 노조’가 법외노조로 존재하는 상황이 한국 자본주의의 ‘제3세계 성’이라면, 96~97년 총파업이 ‘시민권’을 획득한 것은 바로 한국 자본 주의의 성숙, 다시 말해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함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 이다. 따라서 제3세계 노동운동계든, 선진국 노동운동계든 이번 한국총파 업을 ‘자신의 일’로 여길 여지는 충분하다. 그만큼 이번 한국총파업은 세계 노동계에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운동계에서 이번 한국총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살펴보자. 선진국 주류 노동운동계의 관심은 지난 1월11일 한국을 방문해 지지의사를 표명했던 ICFTU와 OECD 산하 TUAC의 활동으로 대표된 다. 지난 1월23일 OCED 이사회에서 ‘한국의 개정노동법 재개정’ 권고를 이끌어낸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한국 자본주의도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니까 적어도 최소한의 노동권인 결사의 자유만은 지키라”는 것이 다. ICFTU와 TUAC 등이 한국노동계를 지지방문해 정부와 자본쪽에 강조한 것도 이 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노동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리해고제’나 ‘변형근로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논리에 대해 서는 강도 높은 문제제기를 않고 있는 실정이다.


“총자본의 유연화 전략에 파열구”

하지만 선진국 노동운동계가 모두 ‘단결권 인정’ 수준에서 한국총파업 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 노동운동권에서도 진보적인 진 영은 오히려 이번 한국총파업을 ‘총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에 대 한 하나의 파열구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미국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지난 1월13일자 ‘왜 노동자가 세계화의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가’라는 기사는 이런 진보진영의 시각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이 기사에서 한국총파업을 세계화에 따른 고통을 노동에 전가하려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고 있 다. <트리뷴>은 현 세계자본주의가 자본이 점차 국경을 넘어 영향력을 확 대하면서 자본간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트리뷴>은 또 ‘노동권의 억압과 기업 자유의 확대’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는 영 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니즘의 ‘신자유주의노선’이 이 시대를 풍미하는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총파 업이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따라 서 이번 총파업에 대한 해석도 서구 주류 노동운동계의 ‘단결권 중심’ 논리에서 총자본의 공세와 총노동의 대응으로 초점이 달라진다.

사실 선진국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연대는 단순히 한국이 결사의 자유를 못 갖췄다는 문제의식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이들의 연대는 ‘한국 노동자의 문제가 곧 내 문제’라는 기본인식을 이해할 때만 비로 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 흐르는 것이 “세계화의 고통을 노동자에게만 전가하지 말라”는 노동자들의 공통된 항변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선진국 노동운동의 전범인 독일 노동운동이 과연 한국 노 동운동의 미래인가라는 진보진영의 문제제기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독일 브레멘대학 경제학과 홀거 하이데 교수는 지난해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 (소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에서 한 강연에서 ‘독일 노동운동’이 결코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외부에서 볼 때 독일 노동운동은 ‘강력한 산별체제, 노동조합이 기업에 대해 가지는 공동결정권,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률’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자본과의 싸움에서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그는 독일 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의 출발점인 ‘지금과는 다른 좀더 인간적인 사 회’에 대한 지향을 잃은 것을 지적한다. 즉 독일 노동운동이 착취없는 사회의 건설보다는 “생산물 자체는 인정한 채 거기에 대한 분배투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 분배몫이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난한 주변부 여러 나라들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착취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성격은 더욱 명백해진다고 진단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독일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의 국제연대성을 외면한 채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안주해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진보적 노동운동계가 한국의 총파업에 대해 비상한 관심 을 표시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한국의 총파업이 이런 자본의 세계화 이데 올로기에 어떤 균열을 냄으로써 노동의 진보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일 메니페스토>는 지난해 12월28일자 ‘아시 아의 기적은 끝났다’는 기사에서 “한국총파업의 승리는 경제위기에 대 한 사용자와 정부의 대응양식, 이른바 ‘억압과 생산성’의 기계론을 공 식적으로 깨뜨리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제3세계, 자본과의 싸움에 근거틀로 주목

반면 제3세계 노동운동계는 또다른 측면에서 한국의 총파업에 주목한다. 이들은 바로 그들 정부가 노동에 강요하는 ‘개발독재’ 모형의 미래상을 한국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제성 장은 결국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음”을 한국총파업에서 찾고 이것을 자국 자본과의 싸움에 중요한 근거틀로 제시하려 한다.

필리핀대학의 월든 벨로 교수(사회학)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개발독재 모델은 처음엔 높은 성장률을 나타내지만 결국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면서 한국의 총파업을 그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벨로 교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배제한 자본의 성장전략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더이상 자본가와 대 화할 공통의 언어와 이익을 박탈하며, 이런 대화 부재는 결국 투쟁으로 폭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적 성장모델은 ‘지속불가능한 성장모델’이라는 것이다.

<일 메니페스토>가 ‘아시아의 기적은 끝났다’라는 기사에서 “한국 노 동자들의 이번 투쟁의 결과는 비단 남한 노조운동의 미래뿐 아니라, 동아 시아 노동운동 전체를 위해서도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고 한국총파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렇게 세계노동계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한국의 노동운동을 바라 보지만 그 내면에 흐르고 있는 기대는 일치한다. 바로 한국총파업이 갖는 ‘선도성’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의 강수돌 박사는 “이번 한국 총파업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그 규모나 물리적 치열성 때문이 아니다” 고 진단한다. 그는 “이번 한국총파업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전세계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 것” 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세계의 노동자들이 지금 한국 노동자 시민들의 총파업 투쟁을 지켜보고 있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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