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한겨레21 오귀환 편집장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험악한 세상을 원하는 자들이여

한겨레21 편집장 오귀환

한 예술가가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안 그렇겠지만… 사실 나는 안기부법 개정이 피부로 다 가옵니다. 요즘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메모도 신경쓰고 작품도 위축되는 것 같습니다.”전에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아보 았다는 그는 거기 가면 (고문 등 때문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게 되 고 최후의 자존심마저 무너진다면서 “… 가서는 절대로 안 돼요”라고 덧붙인다.

한 소설가가 말한다.

“꿈을 꿨는데, 안기부 사람이 잡아가는 꿈을 꿨어요. 이젠 꿈까지 그런 걸 꾸네요.”그는 장정일씨를 소설 내용 때문에 사법처리를 한다고 하는 세상인데, 안기부가 다시 엄청난 수사권을 가지고 재등장한다니 솔직히 겁이 난다고 했다.

부메랑이란 게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사냥도구로 초생달이랄 까 ㄱ자처럼 생긴 이 물체는 공중으로 날리면 다시 던진 사람쪽으로 되돌 아온다. 이 특성 때문에 부메랑이란 이름은 현대의 여러 사회현상을 설명 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안기부법을 개악하는 데 찬성한 뒤 지금까지도 재개정을 반대하는 신한국 당 소속 의원들을 보면 부메랑 생각이 난다. 특히 민주계라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더 그렇다. 사실 야당인 국민회의가 개악된 안기부법의 정치 적 악용 가능성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을 대다수 민주계 출신 인사들은 잘 이해할 수밖에 없다. 3당합당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회의와 마찬가지로 야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들 스스로 그런 악용의 피해를 입거나 위협 을 느껴왔다고 할 수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1997년 1월 현재 그들이 여당소속이라는 점일 뿐이다. 그런데… 보자. 민주계는 물론, 앞으로 신 한국당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당장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진다면 야 당이 된다.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 그와 달리 안기부는 정권의 명운 과 달리 독립적인 성격이 강하다. 한번 법을 만들어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면 그것을 되돌리기는 참으로 힘들다. 신한국당 소속 인사들은 개악된 안기부법 조항이 바로 자신들에게 언제든지 부메랑의 비수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이 순간에도 당신들의 모든 말과 행위 는 안기부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눈 앞의 작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다수 시민은 물론 민주주의의 뿌리조 차 위태롭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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