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언론의 ‘반 인권’적 자유

안정임/ 순신대 교수·신문방송학

미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가 최근 ‘사기와 침입죄’란 명목으로 5 백5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법원명령을 받았다. 사건의 진상 은 이러하다. A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프라임타임 라이브>의 두 PD가 대형 슈퍼마켓의 식품 위생상태를 취재하기 위해 육류 담당자와 점원으로 위장취업을 했다. 취업기간 이들은 슈퍼마켓쪽이 유효기간이 지난 육류와 쥐가 파먹은 치즈를 재포장해 판매하거나, 부패한 식품, 청소하지 않은 고기 절단기 등을 사용하는 장면을 촬영했고, 이것을 자신들의 TV 프로그 램을 통해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고발당한 슈퍼마켓쪽이 A BC를 사기와 침입죄로 고소했고 법원이 이 사실을 인정, ABC에 패소판결 을 내린 것이다.


위장취재 과연 옳은가

이 사건의 판결은 우리에게 다소 의외의 느낌을 전달해준다. 위장취업까 지는 아니더라도 기자의 신분을 감춘 취재방식은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심 심치 않게 사용되어온 방법이고, 그럼에도 그것이 문제가 된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취재방식은 다소 달랐지만 유효 기간이 지난 식품판매가 고발된 적이 있었다. 또한 뉴스 보도나 시사 고 발 프로그램이나 뉴스 보도를 통해 기자임을 밝히지 않은 채 전화를 이용 한 녹음취재나 취재 대상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카메라 사용 등을 쉽게 목격해왔다. 취재 대상자의 허가를 받고 얼굴 장면을 흐리거나 음성을 변 조하는 경우와는 달리 소형카메라를 숨긴 채 현장에 접근, 하반신만을 보 여주거나, 목 아래부분만 비추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 망원렌즈로 잡은 불법의 현장 등은 모두 ‘몰래 카메라’ 식의 취재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다.

‘몰래 카메라’가 코미디의 소재로까지 사용되는 판에 불법과 비리를 파 헤치기 위한 ‘정의로운’ 목적으로 언론이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쯤이 야 문제될 게 무엇이냐는 반응도 있을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사회 곳 곳의 썩고 문드러진 부분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일망타진해 버렸으면 좋겠 다는 과격 반응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그런 ‘정의로운’ 카메라가 궁극 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넓은 시선으로 보자면 결국 은 좀더 좋은 사회, 좀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언론의 날카로운 감시도 필 요하고 그런 언론에 대한 자유도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목 적을 위해 인권이 간섭받고 위장과 속임이 허용된다면 그건 앞뒤가 뒤바 뀐 일이다.

언론의 자유와 인권보장의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오랜 논의의 대상이었다. 이 중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둘 간의 충돌과 갈등,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첨예한 관심은 늘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칫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무게 중 심이 형평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에 대한 인식도 희미할 뿐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 인 문제로 진지하게 제기된 적도 거의 없다. 오히려 우리 언론이 인권 문 제에 관해서만큼은 지나치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 다. 권력에 대해서는 한 조각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면서 사회 주변부의 비리 감시에는 전가의 보도를 유감없이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정도는 감내해야 할 사소한 문제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더욱이 그런 언론의 태도에 대해 전혀 문제삼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는 걱정의 도를 더해준다.


‘미라지 사건’이 던지는 교훈

미국 ABC 방송사의 사례는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한 언론도 처벌을 받 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국의 경우를 무조건 대입시 킬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례는 이 밖에도 적지 않다. 유명 한 ‘미라지 사건’은 미국의 신문사 <시카고 선 타임즈> 기자들이 시 공 무원들의 뇌물수수 혐의를 취재하기 위해 ‘미라지’라는 위장 술집을 차 려놓고 밀실에서의 뇌물수수 현장을 몰래 카메라로 포착, 대대적인 비리 소탕작전의 단서를 제공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시카고 시민들은 커다 란 충격을 받았고 수많은 공무원들이 해고되는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그러나 이 뉴스는 사회적 기여도에도 불구하고 취재 방식의 위장성이 문제되어 그해 최고의 언론에게 주는 <퓰리처상>의 수상후보에 서 밀려났다. 자칫하면 위장 취재방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언론에게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직접 눈으로, 귀로 확인할 수 없 는 권력의 행보를 감시하고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유무형적 악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그 기대에 부응한다는 명목으 로 우리의 삶을 다시 파괴한다면, 글쎄, 그건 과연 허용되어도 좋은 것일 까?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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