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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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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보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당진제철소 설비를 둘러보는 정보근 회장.)
“부도공시 내라고 해.” 1월23일 오후 5시30분께 은행감독원의 임세근 신용감독국장은 단호한 어조로 이런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직후 보람은행 등으로 돌아온 50여억원의 한보철강 어음이 부도처리됐 다는 공시가 금융결제원으로부터 날아들었다. 각 신문사는 이런 막판 상 황에 놀라면서, 막 돌리려던 윤전기를 세웠다. 하루종일 반전을 거듭하던 한보철강의 운명은 이렇게 결정났다.
극적이었던 최후의 날
한보철강 최후의 날은 참으로 극적이었다. 한보철강이 요청한 3천억원의 추가여신을 누가 떠맡을까를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던 제일 산업 조흥 외환 등 4개 은행장들은 1월23일 낮 2시간 동안 서울시내 모처에서 회동했다. 여기서는 한보철강을 은행관리하기로 결정했다.
그 직전까지 처리방안은 법정관리와 은행관리 가운데 하나로 좁혀져 있었 다. 법정관리는 여신규모가 비교적 작은 조흥은행과 외환은행의 주장이었 고, 은행관리는 제일은행과 산업은행이 선호했다. 어느 경우든 정태수 총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법정관리는 정씨 일가의 주식을 소각하기 때문에 정씨 일가와 한보철강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다. 은행관리의 경우에도 한보의 경영권 전 반을 행사할 수 있는 임의관리 방식을 적용함과 동시에 정씨가 갖고 있는 주식 3백60만주를 담보로 받기로 했다. 나아가 은행들은 정씨로부터 이들 주식의 임의처분 동의각서를 받아내기로 결정했다. 다만 은행관리일 경우 먼 훗날 정씨와 한보철강의 재회여지를 1%쯤은 남겨놓기로 한 점이 달랐 다.
이렇게 하면 한보 건은 ‘비교적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 왔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문제는 이 각서에서 시작됐다. 은행장 회의가 끝나자마자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정씨로부 터 처분동의 각서를 받아내기 위해 직원을 한보그룹에 파견했다. 정씨가 이미 주식을 은행에 담보로 내놓는다는 데는 동의했기 때문에 각서 서명 도 쉽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씨는 자리를 피한 채 각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도리어 한보쪽 사람이 오후 3시30분께 제일은행을 찾아가 폭탄선언을 했 다. “주식을 내놓되 담보로는 안 된다. 단지 은행창고에 맡겨놓겠다”라 고. 제일은행은 주식을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오후 4시에 열린 45개 채 권금융기관 대표자회의는 3분 만에 일없이 끝났다. 이런 과정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은행감독원과 재경원 및 청와대에 보고됐다. 더이상 방법 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설마하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한보의 최후는 이처럼 극적이었지만, 그 과정은 훨씬 이전부터 은근히 진 행돼 왔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조금씩, 그러나 뚜렷한 조짐이 드 러나기 시작했다. 96년 9월 제일 산업 조흥 외환 등 4개 은행은 한보철강 의 설비도입 자금을 약 2천5백억원씩 융자했다. 한보는 그러나 이에 그치 지 않고 이들 4개 은행에 운영자금 1천억원씩을 추가로 요구했다. 외환은 행과 산업은행은 이를 거절했다. 한보가 이때 운영자금을 요청한 것은 자 금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4개 은행에 요청한 운영자금 대출상담이 진행 될 때인 11월에도 한보는 한일은행과 서울은행으로 돌아온 약 3백억원의 어음을 막을 자금이 없어 이들 은행의 긴급 일시대출로 위기를 모면했다.
12월 초에는 조흥은행으로부터 1천억원의 운영자금을 지원받아 한때 숨통 이 트이는 듯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이 운영자금 지원을 거부해, 치명타를 입었다. 12월30일에는 제일·동화·충청은행으로 돌아온 2백여억원어치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 은행들은 즉시 1차부도 통지를 냈다. 그러나 한 보가 다음날 새벽에 어디선가 자금을 가져오자 이를 취소했다.
정 회장 ‘서서 죽음’을 택하다
이 사건은 새해에 일어날 부도행진의 서곡이었다. 새해 들어서부터 한보 의 자금난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 금융가에 퍼졌다. 그러자 종합금융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만기가 된 자금을 곧바로 교환으 로 돌렸다. 특히 1월8일에는 공사대금 1천억원을 비롯해 모두 1천3백억원 의 자금결제가 예정돼 있었다. 한보는 이를 스스로 결제할 능력이 없었다 . 제일 산업 조흥 외환 등 4개 은행장들은 모임을 갖고 긴급 구제금융을 해 주었다. 한보는 위기를 일시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뒤에도 날마다 거액의 자금이 몰 려들었다. 게다가 한보는 당진제철소의 5월 완공 때까지 최소한 7천억원 의 자금이 더 필요했다. 당장 돌아오는 어음도 막지 못하는데 이 많은 돈 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한보는 할 수 없이 기존의 채권은행들에게 다 시 부탁해야 했다. 7천억원 가운데 4천억원은 부동산이나 땅을 팔아서 마 련할 터이니 나머지 3천억원을 더 대달라는 것이었다.
채권은행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미 나간 돈이 너무 많았고 담 보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는데, 돈을 또 꿔달라고 하니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은행들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으나, 입장차이가 확연했다. 조흥은행과 외환은행은 추가지원 참여를 꺼려했다. 한다면 주거래은행이나 장기설비자금 공급기관인 산업은행이 맡아야 한다 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내세운 이유에 불과했다. 사실은 이미 한보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제일은행과 산업은행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만 홀로 부담하 기는 너무 큰 금액이니 나누자는 생각이었다. 이 가운데 제일은행의 입장 이 가장 딱했다. 이미 1조1천억원이 넘는 돈이 나갔는데, 담보는 8천여억 원어치밖에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천억원을 더 대준다고 끝날 일도 아니었다. 3천억원이래 봤자 1∼2달 정도 돌아오는 어음을 막을 수 있을 뿐이다. 그 다음은 대책이 없다. 내놓은 땅마저 팔리지 않는다면 패망하 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은행감독원을 비롯한 금융당국 도 비슷한 결론을 내려놓고 은행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제일은행이 생각해낸 것이 주식담보였다. 정태수 총회장 일가가 갖고 있는 9백만주의 주식 가운데 이미 은행에 담보잡혀 있는 5백40만주 를 뺀 나머지를 담보로 받아내자는 것이었다. 동시에 이들 주식의 처분권 도 받아내기로 했다. 나머지인 3백60만주의 시가는 2백여억원밖에 안 된 다. 이는 오히려 정태수 총회장 일가를 경영권에서 배제하려는 의도였다. 한보가 거부하면 은행관리를 하면서 공장을 완공시킨 다음 제3자에게 넘 기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한보는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미 들어온 냉연설비에 대한 담보가치 평가가 끝나는 1월 말에 대출금의 차액에 해당 되는 만큼만 담보로 내놓겠다고 버텼다. 그리고 주식 임의처분권을 넘겨 달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이에 따라 채권은행단은 은행감독원 재경원 청와대 등과 긴밀히 협의를 하면서 최종적인 처리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2일 오후 4개 은행장회의가 열리고 한보에게는 최후통첩이 전해졌다. “주식과 처분권 을 모두 내놓고 은행관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아니면 ‘파국’이라고 . 파국이란 부도 후 법정관리였다. 그러나 정태수씨에게는 은행관리나 법 정관리나 별 차이가 없었다. 둘다 경영권을 빼앗긴다는 점에서는 마찬가 지였다. 결국 정씨는 (외형적으로)‘서서 죽기’를 택했다.
3∼4개 업체만 법정관리 가능
부도가 난 직후인 오후 7시부터 한보철강의 임원들은 이사회를 열고 은행 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정씨를 찾아가 주식처분 동의서에 서명할 것을 설득했다. 정씨는 결국 서명했고, 각서는 곧바로 제일은행에 전달됐다. 그러나 이미 로켓은 대기권을 벗어난 뒤였다. 그때까지 퇴근하 지 않고 있던 박석태 제일은행 여신담당 상무는 “이미 은행장회의에서 부도처리와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했는데, 내가 뒤늦게 받을 수는 없다” 며 이를 되돌려 보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 한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채권은행단은 한보철강과 그 계열사들을 법정관리로 넘기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한보 계열사 22개사 가운데 3∼4개 업체만 법정관리의 ‘은전’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파 산이 불가피하다. 결국 한보그룹은 공중분해될 운명에 처하게 됐다. 한보 철강은 포항제철의 위탁경영을 거쳐 제3자인수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 인다. 그러나 누가 이를 가져갈 것인가. 현재 포항제철 현대그룹 엘지그 룹 강원산업 등이 인수 후보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현 재로서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쉽게 결정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하나의 문제는 은행들이다. 한보철강에 돈을 댄 은행들 가운데 산업은 행만 충분한 담보를 확보해 놓고 있다. 제일 조흥 외환 등 나머지 은행들 은 담보가 약 2천억원씩 부족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행사를 하지 못해 상당기간 여신이 묶이게 되고, 묶인 여신에 대해 대손충당금도 쌓아 야 한다. 게다가 공장 완공 뒤 정상화까지 금융비용을 더해 대략 1조원 이상을 더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각 은행은 한보철 강 부도로 말미암아 상당기간 경영손실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특히 유 원과 우성에 이어 또다시 대형 부도를 당한 제일은행은 앞날이 지극히 불 투명하다.
아울러 한보 대출과 관련된 은행 임원과 은행장 등에 대한 문책과 사법처 리 회오리도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2월에 열릴 주주총회 때까 지 관련은행의 임원들은 편하게 잠자기 어렵게 됐다.
차기태 기자/ 한겨레 경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