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한보 커넥션’ 청와대로 튀는가

한보그룹의 대형부도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한보철강 부도를 ‘현 정권의 최대 의혹사건’으로 규정하고 여권에 대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야권은 권력의 핵심부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 하고 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한보사태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책 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필요하다면 대통령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 ”고 김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발사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 대통령 의 차남인 현철씨에 대한 의혹을 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대통령도 조사를…

이에 대해 여권은 ‘무책임한 정치선동’이라고 반박하면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현철씨는 <중앙일보>와의 회견에서 “나 는 한점의 의혹도 없이 당당하다”고 자신의 무관함을 주장했다. 김 대통 령은 ‘성역없는 수사’를 천명함으로써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정치권 은 대대적인 사정의 강풍 속으로 휘말릴지도 모른다. 여야는 1월27일 총 무회담을 갖고 한보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국정조사권 발동에 합의함으로 써 한보사태는 또하나의 정치적 현안으로 등장한 셈이다.

야권의 공세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총공세의 양상을 띠고 있으 며 김 대통령과 청와대를 겨냥할 만큼 직설적이고 격렬하다. 안택수 자민 련 대변인은 1월24일 “한보에 대한 천문학적 대출에 민주계의 젊은 부통 령이 개입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면서 현철씨의 개입의혹을 제기했다. 김대중 총재가 김 대통령의 연루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정면공격에 나선 것 은 김 대통령 취임 뒤 처음으로서 한보사건의 엄청난 폭발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총재의 김 대통령 거론은 ‘필요하다면’이라는 가정법의 형식을 취한 우회적 공격이었지만 여권은 발끈했다. 여권의 핵심부를 건 드렸기 때문이었다. 김철 신한국당 대변인은 “야당이 계속 한보문제를 인민재판과 같은 방식으로 이용할 경우 야당도 포함된 정치권 전체가 아 수라장이 될 것임을 경고해둔다”고 반격에 나섰다. 김 대변인의 이같은 경고성 성명은 한보사건에 야권인사들도 관련됐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검 찰의 수사진행상황에 따라 정치권 전체가 미증유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야권의 이같은 초강경 태세는 한보사건의 배후에 막강한 권력의 실세가 존재하고 있다는 심증에서 비롯된다. 6공정권 때도 수서비리사건으로 회 장인 정태수씨가 구속되는 등 문제의 재벌로 낙인찍혔던 한보그룹이 권력 의 비호없이 어떻게 금융기관으로부터 6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자금을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야당은 특히 6공 때 몰락의 위기에 몰렸던 한보그룹이 김영삼 정권출범이후 오히려 승승장구한 배경 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야권은 정태수 총회장이 김 정권 출범에 모종의 기여를 한 대가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금융특혜 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관측한다. 금융기관들이 대출의 위험을 잘 알고 있으면서 무모할 정도로 한보에 대해 거액의 자금제공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권력층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야권은 한보의 배후세력으로서 ‘여권의 4인방’을 지목한다. 한보를 뒤 에서 봐주는 핵심인사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의 고위인사 2명이 제일은행 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대출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 신한 국당의 민주계 실세인 C, K씨 등도 금융계에 대출압력을 가한 뒤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겼다는 것이 야권의 주장이다. 야권은 또 정씨의 3남인 보 근씨와 김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야권의 배후설은 현재 구체적인 증거제시 없이 경제계와 정치권에서 나도는 풍문 들을 종합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금융관계자들이 “고위층의 압 력으로 한보에 대한 대출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잇따라 증언하고 있어 ‘얼굴없는’배후세력의 실체는 확인된 셈이다. 실제로 한보그룹의 관계자들과 민주계 인사들은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잦은 접촉을 갖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보그룹은 민주산악회 출신 일부 인사들에게 취업자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민주계 인사들의 활동비를 어느 정도 지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 입지 한층 좁아진다

야권 일각에서는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급성장한 한보가 현 정권의 실세인 민주계의 거물들과 상호공생관계를 구축하면서 거액의 특혜금융을 제공받아온 것으로 추정한다. 야권 인사들은 특히 청와대의 실세와 여권 의 실력자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정도의 배후인물은 김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검찰의 수사진행 상황을 지켜봐 야 하겠지만 김 대통령의 임기말에 터져나온 한보그룹의 부도사건은 현 정부의 도덕성에 먹칠을 함으로써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의 날치 기 처리로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은 김 대통령의 입지를 한층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장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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