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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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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철씨는 한보와 관련해 자신의 개입설이 확대되자 일찌감치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한보철강 부도사태는 이번 부도 자체의 경위는 물론 한보그룹의 성장과 멸망 전과정에 걸쳐 여러 가지 의혹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태수 총회 장의 재산 빼돌리기 및 은닉의혹 외에도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와의 관련설, 연말 대선 등 정치일정과 이번 부도처리간의 함수관계설, 한보철강에 대한 은행들의 변칙·무담보 과잉대출과 관련된 특혜 및 외압 설 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권 4인방 배후엔 김현철”
한보그룹과 총회장 정태수씨는 수서비리 사건을 빚고 노태우 비자금 사건 에도 연루된 바 있는 대표적인 정경유착형 비리기업·기업인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부도사태 이후 한보그룹과 정태수씨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 는 각종 의혹들은 엄청난 폭발잠재력을 안은 채 사회 각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정부와 은행감독원이 특혜대출 비리의혹에 대한 조사에 즉각 착수 하고, 검찰이 이례적으로 일찌감치 수사결정을 내린 것도 이번 사태가 지 닌 폭발력을 감지한 탓으로 여겨진다.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으며,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찰의 수사 그리고 국 회활동을 통해 진상이 밝혀져야 할 의혹들은 다음과 같다.
의혹 1: 김현철씨 또는 신한국당 민주계와의 유착설은 사실인가, 아니면 근거없는 헛소문인가?
한보철강 부도사태 뒤 자민련의 안택수 대변인은 “한보에 대한 천문학적 인 대출에 민주계의 젊은 부통령이 개입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김현 철씨와의 관련설을 제기했다. 국민회의는 유종필 부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청와대 2명, 신한국당 2명 등 여권 4인방이 은행장들에게 압력을 행사 해 특혜대출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의 다른 한 관계자는 “‘여권 4인방’이란 이씨성을 가진 두명의 수석비서관과 신한국당 민주 계의 최·김 두 의원을 가리킨 것”이라며 “이들의 배후에는 김현철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야당의 주장에 대해 신한국당은 “증권정보류의 유치하고 근거없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하고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 했다. 김현철씨 본인도 한 일간신문과의 인터뷰 형식을 빌려 야당의 주장 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고 “계속 그런 식으로 의혹을 제기하면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뿐만 아니라 항간의 일반인들 사이에도 “정태수가 민주계 자금줄이었다더라”, “정태수의 3남인 정보근씨가 그룹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그와 김현철씨와의 특수관계도 작용했다더라”는 등 근거를 알 수 없는 루머가 폭넓게 확산돼 있는 상황이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한 보에 대한 과잉대출을 통한 정치자금 조성의혹을 촉발함으로써, 이런 루 머를 확대재생산하는 기폭제 구실을 하고 있다. 명쾌한 해명이 이루어지 지 않는 한, 이런 루머는 두고두고 신한국당과 민주계에 정치적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의혹 2: 굳이 이 시점에 한보철강을 부도처리한 데는 뭔가 정치적 의도 또는 배후조종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한보철강의 부도처리 과정 자체도 석연치 않다고 많은 국민들은 보고 있 다. 제일은행 등 채권은행들은 1월18일부터 돌아온 한보철강 어음들이 잔 고부족을 일으켜 내부적으로 부도처리를 해놓고도 최종 부도처리가 확정 된 23일까지 5일씩이나 금융결제원에 부도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은행 은 거래기업이 1차부도를 낼 경우 이를 금융결제원에 알려야 하고, 만일 다음날 영업시간 마감까지 부도금액이 입금되지 않으면 이를 최종부도로 간주해 해당기업에 대해 거래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은 행들이 5일씩이나 부도사실을 은폐한 것은 뭔가 배후조종이 있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부도처리 결정 청와대가 했나
또 22일과 23일 연이어 열린 채권은행단 은행장 회의에서 한보철강에 대 한 처리방향이 ‘은행관리 후 제3자인수’에서 ‘부도 후 법정관리 신청 ’으로 급선회한 경위도 많은 부분이 아직 베일에 감싸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은행들은 “은행관리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주식 담보제공 및 포 기각서 제출을 정태수 총회장이 통첩시한 내에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도 처리 뒤 청와대쪽에서 “잘해보 려 했는데 잘 안 됐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등 부도처리의 결정이 청와대 쪽에서 이루어졌다는 정황증거가 포착되고 있다.
좀더 살려두지 않고 왜 지금 부도처리해 버렸느냐는 의문과 관련해서는, “한보가 어차피 자생능력을 상실했다면 정치일정상 지금 손을 터는 것이 현 정권과 한보간 정경유착 시비의 연말 대선쟁점화를 조기에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거나 “지금이 노동법 날치기 처리 의 후유증을 가장 효과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시점이라고 본 데 따른 국 면전환용”이라는 등의 설왕설래가 있다.
의혹 3: 한보의 철강산업 진출과 이에 대한 은행들의 대출과정이 상식적 으로 납득이 되는가?
한보의혹은 한보의 철강산업 진출 및 이 사업에 대한 은행들의 대출과정 이 터무니 없는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한보철강의 부도를 몰고온 당진제철소 부지는 애초 정부가 88년도에 수립한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한보가 88년 9월 이 곳의 매립사업 신청을 내자 정부는 89년6월 경제장관회의에서 공유수면매 립 기본계획을 변경해 매립허가를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건설부 실 무진들은 환경에 대한 영향 등을 들어 반대의견을 냈으나 묵살당한 것으 로 알려졌다.
그동안의 은행대출에도 외압이나 배후조종을 상정하지 않고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숱하다. 자본금이 9백억원에 지나지 않는 한보철강에 무려 2 조7천억원대의 투자사업인 당진제철소 건설사업을 허락한 것 자체가 불가 사의한 일인데다, 나중에 투자규모가 5조7천억원으로 불어났는데도 은행 들이 사업계획의 재검토 없이 사업지원을 계속했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 다. 한보철강에 대한 은행여신(대출+지급보증)은 92년 말까지만 해도 3천 4백억여원에 그쳤다. 그러나 그뒤 은행여신은 94년 말 1조5천5백억여원, 95년 말 2조5천8백억여원, 96년 말 3조5천4백억여원 등으로 크게 늘어났 다. 최근 2년 동안 무려 2조원 가량의 은행돈이 한보철강에 집중된 것이 다.
그 사이 은행감독원은 제일은행 등에 대한 정기검사 과정에서 한보에 대 한 지나친 대출을 자제하도록 지적했고 각 은행의 대출심사 담당자들은 한보에 대한 대출 확대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은행들의 자금지원은 계속됐다. 그 결과 산업은행만 제외하고 제 일 조흥 외환 등 3개 은행의 대출잔액 가운데 현재 7천8백억여원은 담보 조차 확보돼 있지 않다.
특히 한보철강이 극심한 자금난에 빠져 채권은행에 긴급 자금지원 요청을 거듭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 이래 최근까지 이루어진 5천억여원 규모의 추 가대출 과정에 의혹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부실기업에 대한 이같은 무 작정 추가대출은 금융당국이나 청와대의 지시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라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은행은 추가대출을 회 피하려 했으나 고위층의 직간접적인 압력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추가대출 에 가담했다는 이야기도 금융권에 나돌고 있다.
제일은행장 잇단 퇴진에 배경 있나
의혹 4: 제일은행과 산업은행은 뭘 믿고 한보철강에 대한 자금지원에 적 극적이었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과 장기저리 시설자금을 다루는 국책 산업금융기관 인 산업은행은 제 스스로도 한보철강에 대한 자금지원에 열성이었지만, 종합금융회사나 리스회사 등 제2금융권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도 대출 및 리스를 알선하거나 지급보증을 적극 서 주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 보철강에 대한 총 은행여신 3조6천억원 가운데 이들 두 은행의 여신액은 제일은행 1조1천억원과 산업은행 8천억원을 더해 1조9천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이들 두 은행은 또 자금의 성격상 시설자금으로는 대출되 지 않는 신탁자금까지 은행당 2천여억원씩 대출해 주었다. 신탁자금은 여 신한도관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재벌대출 규제장치를 우회하면서 까지 대출이 이루어진 데 따른 의혹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보철강에 대한 17개 종합금융회사의 대출금 7천억원 가운데 상당부분도 이들 두 은행의 보증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산업은행 계 열의 산업리스와 장기신용은행이 2대 주주인 개발리스가 각각 1천억원 규 모의 리스를 한보철강에 제공하는 등 리스회사들도 대부분 한보철강 지원 에 가담했다. 이들 금융기관은 그동안 한보철강이 자금난을 겪을 때마다 금융지원을 회수할 것을 고려했으나, 제일은행과 산업은행의 제지에 따라 회수를 미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제일은행과 산업은행의 한보 대출 선도구실은 이들 은행의 경영진 이 이른바 ‘정태수 커넥션’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가에서는 현 정권 출범 뒤 제 일은행의 박기진·이철수 두 전 제일은행장이 잇따라 비리사건으로 퇴진 한 경위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제일은행 관계자에 따르 면 이들 두 행장은 퇴진 직전 얼마 동안 한보에 대한 대출을 꺼렸다는 공 통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주명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