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함!

(사진/안기부는 수사권이 없는 동안에도 `불고지죄' 사건에 개입해왔다. 95년 11월 허인회씨 간첩조작사건에 항의하는 재야단체의 시위.)

 신한국(35·회사원)씨는 97년 3월 어느 금요일 저녁 신촌의 한 호프집 에서 열린 대학 동기모임에 갔다. 요즘 후배들이 동아리라고 부르는, 80 년대 대학의 한 사회과학 서클 출신 동기모임이었다. 그동안 주위의 강권 과 핀잔에도 “혼자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라며 오히려 결혼한 동기들 을 비웃던 한 친구가 난데없이 늦장가를 드는 통에 피로연을 겸해 모이기 로 한 것이다.


충분히 있을 법한 허구

문제의 친구가`‘호된 대가’를 치르고 신혼여행을 떠나자 화제는 세상얘 기로 돌았다. 자연스레 불경기와 감원, 뒤숭숭한 회사 분위기가 얘깃거리 로 떠올랐다. 신씨도 자기 회사에서 얼마 전에 ‘정리해고’된 선배·동 료들을 떠올리며 한두 마디 거들었다. “이건 확실히 천민자본주의야.” “기업가들 돕는 게 이 정부의 속성 아냐.” “대선자금의 대가일지도 모 르지.” 이윽고 얼굴이 불콰해질 무렵 과격한 한마디가 저절로 튀어나왔 다. “확 뒤집어졌으면 좋겠어.”

새벽 1시가 조금 넘자 동기들은 하나둘 흩어졌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 서 신씨는 모처럼 위안을 느꼈다. 말이 좋아 입사동기지 모두가 경쟁상대 인 회사 안에서 속마음을 터놓을 상대는 흔치 않았다. 그런 마당에 이날 모처럼 동기들을 만나 그동안 쌓인 얘기를 먼지 털듯 툭툭 털고 나니 속 이 다 후련했다. “역시 대학동기들 밖에 없어.” 그는 오랜만에 기분좋 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월요일 새벽 4시께 어렴풋한 초인종 소리를 듣고 신 씨는 잠이 깼다. 인터폰을 통해 아파트 관리원이라고 밝힌 남자는 “누군 가 이 집 차를 치고 지나가서 알려주러 왔다”고 했다. 문을 열자 4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짜고짜 “같이 가자”고 했다. 한 남자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적힌 체포영장을 그의 코 밑에 들이밀 었다.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니 무슨 소리냐”고 항의했지만 그는 남자 들에게 떠밀려 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채 동이 트지 않은 새벽길을 30분 쯤 달려 그는 어느 거대한 건물 앞에서 그 남자들과 함께 내렸다. 어느 방에 갇히고 나자 그의 머리 속은 불안과 초조로 헝클어졌다. “여기가 어딜까.” “나는 왜 끌려오게 된 걸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뚜렷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위가 조용하고, 조명이 그리 밝지 않은 방에서 한 10분을 기다렸다. 이 윽고 두 남자가 들어섰다. “왜 나를 끌고 온 거요?” 대답은 길지 않았 다. “왜 왔는지 모르겠어? 잘 생각해봐.” 의자에 앉힌 뒤 그들은 다그 쳤다. “빨리 말하는 게 신상에 좋아. 어서어서 끝내자구.” 때론 호통도 치고, 때론 가족들을 들먹이며 회유도 했다. 월요일 밤을 꼬박 새우면서 신씨는 대학 때 한 선배가 들려준 ‘안기부 경험담’을 떠올렸다.

화요일 저녁이 되자 그는 졸려서 미칠 것 같았다. “빨리 끝내자.” “뭘 말하라는 거냐.” 그제서야 그들은 신씨 앞에 사진 한장을 내밀었다. 예 전 대학시절 서클룸에서 몇번 본 적이 있는 선배의 사진이었다. “그 친 구가 다 얘기했으니 빨리 불어. ○○○회에 가입했잖아.” 어이가 없었다 . “나는 그런 모임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본 적도 없다.” 깜빡 졸면 다 시 깨워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과정이 밤새 계속됐다.

다음날 오전 그는 영장실질심사라는 것을 받으러 법원에 나왔다. 구속영 장이 정식으로 청구된 것이다. 검찰은 집에서 찾아낸 몇권의 이념서적을 증거물로 제출했다. 판사 앞에서 신씨는 영문도 모른 채 자다가 끌려가고 , 이틀 동안 밤샘조사를 받은 일 등을 소상히 말했다. “○○○회에 가입 한 적이 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는 “그런 단체는 들어본 적도 없다 ”고 답했다. “최근 ○○모임에서 차라리 굶더라도 실직걱정 없는 북한 사람들이 낫겠다는 등의 발언을 했느냐”는 ‘엄청난’ 질문이 이어졌다.


찬양·고무혐의, 언제든지 누구든지…

(사진/"공포의 사회가 오고 있다." 서울의 한 전철 안에서 대학생들이 `안기부법 개정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그제서야 그날 술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 자리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심사는 10분 만에 끝났다. 신씨는 내심 안도하며 유치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날 오후 그는 구속됐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 발부 사유였다. 그때부터 기소되기까지 20일 동안 그는 거듭되는 밤샘조사에서 ○○○회의 가입사 실을 자백하라는 집요한 추궁에 시달렸다.

검찰에 넘겨지고 나서도 그는 똑같은 신문을 여러 번 받았다. 물론 그는 부인했다. 하지 않은 일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신씨는 변호사 의 도움을 받아가며 보석을 통해 가까스로 풀려났다. 고무 찬양과 이적표 현물 소지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는 재판날짜를 기다리며 조심조 심 회사를 다닌다. 이번 일로 회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그 는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한국씨의 경우는 물론 허구다. 그러나 있을 법한, 충분한 개연성이 있 는 허구다. 안기부는 지난 연말 날치기 처리된 안기부법 개정으로 다시 반국가단체(북한)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을 되찾았다. 그리고 안기부는 새해 들어 본격적으로 수사권을 마음껏 발휘할 태세다. 안기부는 찬양·고무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그 대상이 누구든지, 어느 때든지 잡아들여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94년 7월 현행법 시행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이다.

“안기부의 수사권을 확대·강화하는 쪽으로 안기부법을 개정하는 것은 안기부에 의한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를 해 제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될 폐해는 불을 보듯 분명하다”( 96.12.6 대한변협 성명서). 학계·법조계 등 지식인 사회의 저항은 그런 우려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폐해’의 최대 피해자는 간첩보다 반정 부 성향의 정치인·지식인·노동자·학생 등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안기부의 지난날 행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과거 유신시대의 중앙정보부나 전두환·노태우시절의 안기부를 들춰낼 필요도 없다. 현 정부·여당이 “ 과거 안기부에 의한 공작정치의 폐해와 인권유린 등을 근절시켜야 한다” 며 93년 안기부법을 고친 뒤, 다시 말해 고무·찬양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을 폐지한 뒤 안기부가 저지른 인권침해 사례를 되돌아보는 것만으 로도 지식인 사회의 우려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박충렬(37·월간 <말> 기획실장)씨는 95년 11월15일 새벽 집에서 안기부 에 붙들려 갔다. “새벽 2시께 무작정 안기부로 끌려가 `89년 평양에 가 서 공작금을 받고 돌아와 암약해온 ‘간첩’이라고 자백하도록 끊임없이 강요당했습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회합·통신혐의( 제8조)가 적용됐다. 안기부는 영장에서 “지난 90년일자 미상경 북한에서 남파된 신원불상 공작원에게 포섭된 뒤 이미 약정된 통신조직을 통해 내 용불상의 지령을 수신하고 그 실천결과를 북한 공작조직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22일 동안 “폭행과 기합, 잠 안 재우기 같은 고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박씨의 자백을 강요했다. 변호인의 접견도 막았다. 안기부는 12월 생포된 무장 공작원 김동식의 입을 빌려 “박씨에게 (북한에서) 가 져온 무전기 4대를 전달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을 넘겨 받은 서울 지검도 구속기간 30일 동안 계속된 수사에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 국 검찰은 회합·통신 부분을 드러내고 고무·찬양(제7조)과 이적표현물 소지죄를 적용해 박씨를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서울지법 형사9단독 류원 석 판사)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허인회(34·국민회의 당무위원)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95년 11 월 어느날 경찰에 연행됐다. 안기부가 넘겨준 “간첩 김동식과 두 차례나 만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불고지 혐의가 그에게 들씌워졌다. “대공 분실에서 꼬박 사흘 동안 잠을 안 재우며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그는 자백하지 않았지만 결국 구속됐다. 꼭 1년 뒤인 지난해 11월8일 “허씨의 알리바이가 입증된 반면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릴 때까지 그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돌 이킬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분신 기도

지난해 12월5일 후배의 자취방에 머물다 안기부 직원들에게 조사받은 뒤 분신한 김형찬(25·경희대 제적생)씨도 대표적인 피해자다. 후배에 대한 사전영장을 제시한 안기부원들은 김씨를 4시간 동안 조사하며 “머리카락 을 움켜쥐고 얼굴을 조사실 방바닥에 밀어붙인 뒤 발로 짓밟고 걷어차며 왼쪽 눈부위를 주먹으로 여러 차례 구타했다.” 신원조사 결과 김씨의 병 역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자 ‘그동안 북한을 다녀온 것 아니냐’‘북한에 서 간첩교육은 어떻게 받았냐’고 다그치던 그들은 김씨가 끝내 입을 다 물자 “넌 경기경찰청 대공분실로 가면 죽는다”며 경찰에 넘겼다. 김씨 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엉겁결에” 분신을 기도했다.

이 사례들은 한결같이 문민정부 들어서, 안기부의 수사권이 제한된 뒤인 94년 7월 이후에 발생했다. 다시 말해 고무·찬양과 불고지죄에 대한 수 사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저질러진 일들이다. 수사권이 없는 사건에 개 입하거나, 일단 아무 혐의나 씌워 구속한 뒤 자신들이 짜놓은 각본에 맞 는 자백을 강요하는 권한남용을 일삼은 점도 이 사건들의 특징이다. 이제 안기부는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어떤 사건이든 ‘합법적으로’ 수사할 수 있게 됐다. ‘날치기 안기부법’이 폐기되거나 재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다. 따라서 신한국씨의 경우가 완전한 허구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강희철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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