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당신도 ‘간첩’이 될 수 있다”

(사진/안기부는 깐수 교수 사건을 `법개정'의 계기로 제시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간첩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는 게 대다수 법조인들의 견해다.)

노동 관계법과 함께 새벽 날치기 됐지만, 노동법에 묻혀 여론의 집중포화 에서 벗어났던 국가안전기획부법. 총파업투쟁에 밀린 노동관계법과 함께 재개정될 운명에 처해 있다. 안기부법 무효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장주의 무시하는 법률

정부 여당과 안기부는 상황논리를 내세워 날치기를 합리화했다. “깐수 교수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정간첩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 음이 확인되었으나, 제7조, 제10조의 범죄에 대한 수사권 제한으로 검거 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한총련 사건의 경우에서는 그 배후에 대한 수사 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는 게 대다수 법조인들의 견해이다. 먼 저 국가보안법 7조와 10조의 죄에 대한 수사권 박탈로 간첩을 잡는 데 중 대한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날치기 전 안기부법만으로도 간 첩 잡기에 너무도 충분한 권한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3조1항에는 형법 상 내란·외환죄, 군형법상 반란죄·암호부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에 대해 수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또 국가보안법 가운데 3조(반국가단체 구성), 4조(간첩), 6조(잠입탈출), 8조(회합 통신) 등 7 조와 10조를 제외한 다른 죄는 모두 안기부가 수사할 수 있도록 보장돼 있다.

김형태 변호사는 “오히려 집중된 권력의 남용 위험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는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인권유린 시비를 일으켜 박탈됐던 수사권까지 회복한 것은 위험한 행위” 라고 비판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최영도)은 지난해 11월 ‘안기부법 개 정대응 임시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국가안전기획부법에 대한 검토의견 서’를 작성했다. 이 검토서는 제7, 제10조에 대한 부활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제7, 제10조에 대한 수사권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는 논리는 간첩을 잡 기 위해 간첩이라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자가 있으면 그를 국가보안법 제7조를 적용해 우선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시키고, 안기부에서 20일간 혹 독한 수사를 통해 간첩임을 자백받고 증거를 수집하여야만 간첩을 잡기가 수월한데 현행법 아래서는 그런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날치기 안기부법은 국가보안법상의 다른 중대한 죄를 수사하기 위해 비교적 경미한 7조, 10조를 적용, 별건 구속한 뒤 그 구속상태에서 또다 른 범죄(간첩혐의 등)를 수사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상의 영장주의를 무시하는 법률이라는 것이다. 간첩을 잡는 효과적인 측면만 보고 민주주의의 핵심인 인권보장에 역행하는 반시대적이고 반인권적인 법률이라는 지적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더욱이 날치기 이전 안기부법만으로도 안기부가 제7조 위반자를 직접 수사하지 않고 간첩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있도록 보장돼 있다고 평가한다. 안기부법 3조1항5호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 규정’에 따라 안기부는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상황을 보고받도록 돼 있어 필요한 정보나 수사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간첩 등 반국가 활동사범이나 그 추종분자 등 정보사범에 대해 수사기관이 내사나 수사에 착수할 때, 또 검찰이나 군검찰이 송치할 때는 즉각 안기부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기밀이 매우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상태에서 안기부가 이‘3 조1항 5호’의 권한을 이용해 정부의 정책수립과 집행을 감시, 감독하며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등 다른 국가기관의 업무에 개입, 간섭할 수 있게 되어 문제”라는 게 민변 등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조항부터 전면 폐기해야

또‘대공’과 ‘대정부 전복’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과거 군사독재에 비판적인 일체의 활동을 공산주의적, 좌경적이라고 매도 처벌해 왔던 관 행을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리고 조직과 소재지, 활동내 용 등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정보기관인 안기부가 수사권을 가지는 것 자 체가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게 법조인들의 일치된 평가다. 일반공무원이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지명을 받아야 하는데 “안기부 직원은 검사장의 지명없이 안기부장의 지명에 의 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안기부법 제16조)고 돼 있어 수사권 남용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실제 안기부의 구성이나 직원 숫자는 모두 비밀이기 때문에 어떤 직원이, 어느 정도 사법경찰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조차 전혀 파악할 수 없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기획국 권기혁 부장은 “조직의 구성과 운영 자체가 완전히 비밀로 돼 있어 외부에서 접근과 통제가 어려운 이런 기관 이 현재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할 수도 있는 광범위한 수사권을 가 지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93년 개정안을 통해 직권남 용죄와 정치관여죄를 만들어 놓았지만 정치과를 만들어 개입하는 등 있는 법조차 무시하며 활동해온 안기부에 그나마 박탈됐던 수사권을 부활시킨 것은 안기부의 전횡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결국 수사권을 부활시키는 게 아니라 광범위한 직무범위와 수사권 남용, 정보기능의 독점, 조직의 비대화와 비공개를 보장하는 등 폐해가 엄청 난 문제조항의 전면적 폐지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안기부법 재개정은 7조와 10조에 대한 수사권 부활이 아니라, 정상적인 치안기관이 아닌 정보기관에 주어진 수사권 자체를 없애, 산업정보를 수 집하는 등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형태로 안기부로 거듭나게 하는 게 순리 ”라는 박기호 신부(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총무)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 가 있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