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대통령 소신 어디갔나

(사진/`좋던 시절'. 93년 12월 안기부법 개정안이 합의된 뒤 이만섭 국회의장이 정치특위를 방문해 여야간사들과 손을 잡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안기부법 개혁’은 김영삼 대통령의 소신이었다. 물론 공작정치와 인권 유린을 중단시키는 그런 개혁이었다.

야당 시절은 물론이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도 “안기부법은 대폭 개정 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대통령 취임 바로 전인 93년 2월23일 미국 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반정부 경력이 있는 대통령 으로 군부출신 대통령과는 달리 어떻게 통치할 방침이냐”는 질문에 “아 직도 남아 있는 권위주의 정권의 잔재를 일소하고 정치사찰을 근절하겠다 ”며 “우선적인 목표는 안기부 개혁”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그리고 대통령에 취임한 3월에는 안기부의 위상 및 기능과 관련해 “내가 공작정치의 최대 희생자였다”고 강조하면서 “정보기관에 의한 공작정치 를 반드시 없애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짐했다.

93년 6월15일 이기택 당시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도 “북한의 핵 개발 등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보안법은 고치지 않겠지만 안기부법은 미 국·독일 정보기관의 활동수준 범위에서 개정할 생각”이라며 “과거 정 권이 안기부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나 다시는 그런 일이 결코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93년 12월7일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와 제10조에 규정된 죄에 대한 안기부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부족하나마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자랑했다. 안기부법 개정을 문민시 대에 걸맞는 제도개혁의 핵심이라고까지 했다.

법이 공포된 뒤 94년 1월 김덕 당시 안기부장으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안기부는 지속적인 자기혁신과 정보역량 확충으로 국 가안보와 국익수호의 소임을 완수하는 선진 정보기관으로 도약해야 한다 ”고 밝혔다. 그리고 94년 3월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여야 정치 관계법심의특별위원회 위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는 “여러분이 혁명적 인 일을 해냈으며 개혁중에 개혁인 정치개혁을 이뤄낸 것은 보람있는 일 ”이라고 극찬했다. .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논리가 그 ‘혁명적인 일’ 을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새벽 날치기로 안기부법은 부활한 것이다. 물 론 김 대통령은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있다. 노동관계법 개정에서 대 해서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경제활력을 회복하려 했다”며 정당성을 밝혔지만 자신의 손으로 뜯어고쳤고 개혁의 성과물로 치부해온 약점 때문 인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강삼재 사무총장과 이홍구 대표 등이 총대를 메고 뛰었을 뿐이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총파업투쟁으로 몰아치는 국민의 분노를 달래기 위 해.“노동법이든 안기부법이든, 무엇이든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도 좋다 .”1월21일 영수회담에서였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기에는 아직 길이 멀어 보인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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