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2월06일 제 144호 한겨레21

안기부 살아야 정권 산다?

(사진/안기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안기부의 사기진작이 필요했을 것이다. 96년 10월 국회 정정보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권영해 안기부장과 간부들.)

안기부법 개정과 관련해 풀리지 않는 두 가지 궁금증이 있다. 안기부는 왜 ‘공작정치’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사권의 확대에 집착하는가? 그러면 ‘문민정부’를 자처하는 정부 여당은 또 왜 이러는가?

지난 94년 만난 안기부의 한 정치담당 요원의 한숨소리가 기억난다. “옛 날에는 모든 문제를 공작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었는데….” 공작적 인 관점? 사건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만들어나간다는 느낌 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표현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공포의 전율 속에 빠지게 만드는 얘기다. 두려움의 대상은 그만큼 힘을 얻는다. 사회·정치적인 위력이 막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과거의 안기부가 그랬다. 93년 12월7일 안기부법이 개정되 기 전까지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6일 이후로 안기부 요원들의 한숨소리 는 잦아들고 있다. 3년 남짓 옛 안기부의 ‘위세’를 다소 누그러뜨렸던 수사권의 제약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공요원 속속 복귀… “대선용” 의심

어느 정도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얘기다. 조직이 최대로 역동적이기 위해서는 사람과 정보, 그리고 돈이라는 ‘3요 소’가 최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여권의 한 관계자가 들려준 얘기가 있다. “지난 93년 법개정이후 안기부에서 밀려났던 대공 관계자들이 속속 되돌아오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한겨레> 1월 23일자 1면 머릿기사도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해주고 있다. 기사는 “군 사독재시절 정치사찰과 공작 등을 맡았던 ‘정치과’가 지난 93년 없어졌 다가 95년 다시 생긴 것을 비롯해 개혁조처에 따라 축소되거나 사라졌던 일부 조직이 되살아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사는 또 “ 안기부는 또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참여해 정책결정 과정에 여 전히 간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매주 화요일 청와대 또는 서울시내 호텔 등지에서 열리는 관계기관대책회의에는 청와대, 총리실, 관계부처 고위 관계자와 안기부 고위 간부가 참여한다”고 보도했다. 물론 안기부쪽은 부인하고 있다.

결국 수사권의 확대는 안기부 조직의 확대를 가능케 해주는 명분이 되는 셈이다. 소요 예산도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이는 또 조직의 위상을 대내 외적으로 확인시켜 줄 굵직한 사건들의 목도를 예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위세’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는 얘기 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3년 동안 위축되어 있던 회사(안기부) 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에는 정치권의 분위기를 보자. 이와 관련해서는 야권의 반응을 살펴 보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이른바 ‘안기부통’ 의원들은 한결같이 ‘대선용’이라고 못박는다. 이들은 “여권이 정권재 창출을 위해 보이지 않는 조직으로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안 기부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한다. 따라서 두 가지 목적으로 여권이 안기 부법을 과거로 회기시키려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는 안기부를 효율적 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안기부의 사기진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뭔가 ‘선물’을 주지 않으면 안기부가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서는 그동안 개혁에 반발한 옛 안기부 관계자가 야당을 위해 일을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자칫 정권의 위기도 가능하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사건을 준비한다?

두번째는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비하자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작정치’에 대한 우려다. 특히 선거 때마다 ‘색깔시비’에 시 달려 왔던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쪽의 반응은 매우 날카롭다. 고무·찬양 죄와 불고지죄의 덫이 또다시 야권 곳곳에 놓여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안기부 출신 한 야당 의원은 “사용하던 하지 않던 다양한 ‘사 건’은 대통령 선거 전에 충분히 준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국의 분위기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을 갖춰놓을 것이라는 얘기 다. 충분한 정보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망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을 우울 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정부 여당과 안기부의 필사적인 법개정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상과 같은 발언들을 종합해 볼 때 전체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는 파 악할 수 있다. 과거의 ‘위세’를 되찾기 위한 안기부와 대선이라는 중대 한 정치일정을 앞에 둔 여권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로 야권은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기부법 재개정과 관련해서는 여야가 한판 전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이 또다시 국민들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 이다.

김용성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06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