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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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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심을 똑바로 읽으라." 김수환 추기경과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등 종교계 대표들은 등돌린 민심을 여과없이 전달, 김심을 바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노동계의 총파업에 따라 악화일로를 치닫던 정국위기는 1월21일의 청와대 영수회담을 기점으로 정치적 협상 국면쪽으로 급선회하는 듯했으나 합의 점을 찾지 못함으로써 당분간 혼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담에 서 김 대통령은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도 국 회에서 재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야당의 두 김 총재는 전면 무효화를 주장하면서 맞섰다. 총파업 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던 이날 영수회담은 여야 대화의 숨통은 텄으나 여 야 지도자의 현저한 시각차이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끝났다. 하지만 이날 의 청와대 영수회담은 총파업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둘러싸고 표출 됐던 여권 내부의 강온파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통 령이 온건파의 노선에 따라 시국수습책을 모색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강경파 “김심 바뀐다”김추기경 면담 반대
실제로 청와대 영수회담이 개최되기까지 여권의 기류는 강경론과 온건론 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지난 연말의 국회날치기 이후 여권 내부에서는 강온론이 혼재하면서 정국혼미가 심화됐다. 1월7일 의 김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16일의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 기자회견, 17 일 김 대통령의 김수환 추기경 면담 등 여권의 수뇌부는 숨가쁘게 움직였 다. 그 과정에서 정면돌파를 주장하는 강경론이 여권의 주도권을 장악했 으며 온건수습론은 간헐적으로 표출됐을 뿐 힘을 얻지 못했다. 김 대통령 도 강경파의 정면돌파론에 함몰돼 있었다.
그러나 총파업에 대한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 속에서 날치기에 항의하는 대학교수, 종교인, 문인 등 여론주도층의 노동법 및 안기부법 개정 철회 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전국적으로 번지면서 김 대통령은 서서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의 온건론 선회는 17일의 김수환 추 기경 면담을 계기로 표면화됐다. 김 대통령이 김 추기경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함축하는 의미는 지대했다. 청와대의 강경파들은 김 추기경과의 면담이 성사될 경우 김 대통령이 강경론을 수정할 것을 우려하면서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김 추기경은 이미 새해 들어 김 대통령과 만나 시국수습방안을 논의하고 싶다는 뜻을 청와대쪽에 전달했으나 강경 론을 주도하는 이원종 정무수석 등 매파의 반대로 무산됐었다. 그때까지 만 해도 김 대통령은 총파업이 시간이 지나면 자동소멸될 것이라는 낙관 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통령을 야당시절부터 보좌했던 이 수석은 이석채 경제수석, 문종수 민정수석 등과 함께 김 대통령을 강 경대응쪽으로 몰고갔다.
그러나 김광일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들은 시시각각으로 심각해 지는 민심이반 현상에 충격을 받고 김 대통령의 노선을 수정하기 위해 분 주히 뛰기 시작했다. 13대 국회 때 부산에서 당선된 경력이 있는 김 실장 은 자신의 친지들을 통해 부산지역의 흉흉한 민심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 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파업과 시위,시국선언 등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전 해들었다. 김 실장은 특히 김 대통령의 오만한 국정운영을 직설적으로 공 격한 신문의 칼럼들을 복사해 김 대통령에 직접 전했다. 김 대통령도 야 당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을 통해 민심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은 마침내 17일 오전 김광일 실장을 통해 김 추기경과의 오찬회동을 제의했다. 김 실장은 이미 15일 명동성당 의 장덕필 주임신부를 청와대로 불러 농성중인 민주노총 지도부의 입장을 전달받는 등 명동성당쪽과 막후 대화창구를 유지하고 있었다.
종교계“등돌린 민심을 보라” 이구동성
김 실장의 전화를 받은 김 추기경은 점심 때 선약이 있다면서 오후 4시에 청와대를 방문하겠다고 답했다. 이원종 수석을 비롯한 매파들은 윤여준 공보수석이 이날 오전 김 추기경과의 청와대 면담을 공식발표하기 얼마 전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 대통령이 철저한 보안을 지시했기 때문 이었다. 윤 수석의 발표소식을 들은 이 수석은 경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매파의 기세가 꺾이는 순간이었다.
김 추기경은 약 1시간30분간 진행된 이날 청와대 회동에서 김 대통령에게 “현시국은 노동자들의 파업수준이 아니다. 화이트칼라들의 파업동조나 참여 등에서 보듯 중산층조차 김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아무리 야당이 국회를 원천봉쇄했다고 하더라도 노동법 개정절차는 문제가 있다. 민주노 총과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국민을 충분히 설득했어야 했다. 김 대통령 이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이번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조 언을 했던 것으로 여권 관계자들은 전한다. 김 추기경은 김 대통령과 관 련된 시중의 온갖 험담까지 여과없이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이 장덕필 명동성당 주임신부와 민주노총 간부들과의 면담결과를 토대로 구 상한 중재안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민주노총은 김 추기경 의 청와대 방문이후 이홍구 대표가 제안한 TV토론을 수용하는가 하면 총 파업 중단과 매주 수요일 파업을 결정하는 등 한발 뒤로 물러섰다.
김 추기경의 생생한 민심동향 설명에 대해 김 대통령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김 추기경에게 노동법 개정의 불가 피성을 역설하는 등 구체적인 민심수습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명동성당으 로 돌아온 김 추기경은 영장이 발부된 민주노총의 권영길 위원장과 TV토 론을 가질 수 없다는 신한국당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청와대 회동결과에 대한 실망감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그러나 김 추기경으로부 터 적나라한 민심의 실상에 대해 전해들은 김 대통령은 크게 흔들리고 있 었다.
김 대통령은 다음날인 18일 오후 박종순 예장통합총회회장 겸 한국기독교 협의회(KNCC) 대표회장, 최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등 개신교 지도자 들과 함께 만나 시국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20일 오전에는 불교 조계 종 총무원장인 송월주 스님과 만나 대화를 가졌다. 3인은 김 추기경과 마 찬가지로 심각한 시국상황에 대해 얘기하면서 개정된 노동법의 재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통령은 마침내 20일 오전 이원종 정무수석을 통해 정동채 국민회의 총재비서실장과 이동복 자민련 총재비서실장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대 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김종필 총재 및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와 오찬간담회를 갖고자 한다”는 영수회담 수용 입장을 전달했다. 청와대 영수회담의 개최는 극한대결양상으로 전개되던 총파업 정국의 극적인 돌 파구가 마련됐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강경과 온건론 사이를 오락 가락하던 김 대통령은 물리력을 사용한 파업정국의 강압적인 해결을 완전 히 포기하고 정치적 해결이라는 온건수습쪽으로 돌아선 셈이다. 이원종 수석과 같은 매파들에게는 참담한 후퇴였다.
지지도 60% 넘는다 민심까지 왜곡
이 수석을 중심으로 한 매파들은 지난 연말 국회에서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의 격돌이 발생했을 때 “밀어붙여도 어느 정도의 반발은 있겠지만 연말을 넘기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김 대통령에 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파들은 여론조사 결과 김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60%를 넘는다고 실상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 졌다. 이 수석은 신한국당의 수뇌부와 사전협의없이 최각규 강원도 지사, 황학수, 유종수 의원의 기습적인 자민련 탈당을 유도하기도 했다. 당시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는 안기부법 개정안 처리는 묵인하고 노동관계법도 복수노조 허용을 철회하면 역시 처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해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 지사를 비롯한 3인의 탈당으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던 자민련과의 막후 대화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격분한 자 민련은 정권타도 투쟁을 선언하고 국민회의와의 공조체체 복원으로 선회 했다. 신한국당쪽에서는 “도대체 청와대가 정치감각이 있는 것이냐”며 이 수석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같은 대치정국 속에서 신한국당은 26일 새 벽 날치기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새벽 특사로 과테말라를 방문중이던 김윤환 고문을 제 외한 1백54명의 신한국당 의원 전원이 이탈자 없이 날치기에 참여했다는 보고에 매우 흡족해하면서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엄청난 자신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의 두 김씨를 제압하는 것은 물론이고 골치아픈 신 한국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지명문제도 이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자만감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과신은 곧 재앙을 불러왔다. 자신만만한 가운데 7일 가진 연두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국민 적 분노가 폭발했다. 여권이 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불과 10%만이 회 견결과에 만족했을 뿐 90% 가까운 국민들이 극도의 실망감을 표시한 것으 로 나타났다. 총파업 시위도 양상이 돌변했다. 노동쟁의가 발생할 때마다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화이트칼라들이 시위대열에 가세해 ‘김영삼 퇴진’구호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여권의 핵심도 충격 속에 서 동요하는 빛이 역력했다. 김 대통령은 9일 주례당무보고를 하러 청와 대로 들어온 이홍구 대표가 대화를 통한 수습안을 건의하자 이를 수용했 다. 이 대표, 이수성 총리, 권영해 안기부장, 김광일 대통령 비서실장, 이원종 정무수석 등 권력의 핵심 5인은 일요일인 12일 삼청동 총리공관에 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대화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참석자들은 전날 종로 종묘에서 열렸던 민주노총의 항의집회에 이른바 ‘ 넥타이 부대’로 불리는 화이트칼라층의 대거 참여와 시민들의 동조적 분 위기에 대한 충격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서 이 수석과 권 부장은 강경론을 주장했으나 이 총리, 이 대표, 김 실장의 온건론에 밀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은 이같은 결과를 김 대통령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았다. 협상국면으로 가는 듯했다.
그러나 13일 오전 이원종 수석이 김 대통령을 독대하면서 흐름은 다시 반 전됐다. 이 수석은 김 대통령에게 “여기서 밀리면 정권은 끝장입니다. 대통령 후보도 이제 마음대로 낙점할 수 없게 됩니다”라는 요지로 대화 철회와 강경 정면돌파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이 수석은 총파업의 강도 가 현저히 약화되고 있으며 여론도 점차 파업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하 고 있다면서 단호한 대응을 거듭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환 고문 “파국은 피하자” 법 개정 시사

(사진/외유로 `거수기'를 모면한 김윤환 고문. 개정노동법 시행유보를 제안, 온건기류에 힘을 보탰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저녁 신한국당 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신년 만찬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강한 어조로 노동법개정 불가방침을 재천명했다. 이수석의 진언을 수용한 것이다. 여권 기류는 다시 정면돌파론으로 회귀 했다. 기자들에게 노동법 재개정의 용의를 표명하는가 하면 명동성당을 방문해 영장이 발부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과 만나려고 시도한 이 대 표의 행보를 공격하는 목소리도 표면화됐다. 검찰을 비롯한 여권의 보수 집단이 노골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진념 노동부 장관은 신한국당 의 원총회에 참석해 이 대표의 면전에서 직격탄을 퍼부었다. 이 대표가 경솔 하게 행동해 노조의 승리감을 고취시키고 명동성당 농성자에 대한 검거시 기를 놓쳤다는 것이었다.
청와대가 강성으로 되돌아가자 신한국당에서는 영수회담 불가론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으며 검찰도 민주노총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경찰력을 투입하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검찰과 신한국당은 민주노총 이 주도하는 시위장소에 적색 불온유인물이 나돌고 있다면서 불순세력의 파업참여 가능성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여권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사용하던 ‘빨갱이 사냥’을 연상케하는 이념공세였다.
김 대통령이 강경대응으로 재선회하자 여권 내부에서는 잠복해있던 온건 론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우선 김윤환 신한국당 고문은 개정노동법의 시 행유보를 제안했다. 민심의 이반이 심각한 가운데 노동계가 총파업에 돌 입하는 등 극한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를 강행할 경 우 수습할 수 없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회창 고문도 복수 노조의 허용을 포함한 정치적 수습방안을 강조했다. 김덕룡 의원은 정치 권이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 도 개인적 통로를 통해 김 대통령에게 대화를 통한 수습방안을 전달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친 박관용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친위사단’도 뛰 기 시작했다. 대체로 부산의 지역구 출신 의원들인 이들은 부산의 민심이 이미 회복불능일 정도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전했다. 일부 부산출신 의원 들은 지역유권자들로부터 신한국당 탈당 압력을 받을 정도로 여론이 악화 됐다면서 획기적인 수습책 마련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광일 비서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의 비둘기파 인사들도 나름대로 시중여론을 전하면 서 김 대통령의 태도를 바꾸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김 실장은 김 대통령 에게 “지금 민심을 추스리지 않고 강경일변도로 밀고갈 경우 정권은 3월 을 넘기기 힘들지도 모른다”면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위기상황을 전했다.
이들의 설득노력이 김 대통령의 마음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홍구 대표 16일 영수회담 수용 밝혀

(사진/총파업 정국에서 치명적 상처를 입은 이홍구 대표. 1월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영수회담 수용의 가능성을 내보였다.)
이홍구 대표의 16일 기자회견은 김 대통령이 재선회 움직임을 어렴풋하게 시사했다. 청와대와 사전조율을 거쳤던 이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여야 영수회담을 건의할 수도 있다”는 조건부 영수회 담을 제안했다. 이 대표의 이날 회견내용은 노동법 재개정은 있을 수 없 다고 못박고 있으나 저변에는 대화로 총파업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온건론 이 흐르고 있었다. 김 대통령은 다음날 오전 주례당무보고를 위해 청와대 를 찾아온 이 대표에게 “다음주부터 여여대화가 착수되기를 기대한다” 고 회견내용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오후에 김수환 추기 경과 단독으로 만나 시국수습방안을 논의한 뒤 여야 영수회담의 조기개최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정치적 해법을 결심했다. 총파업 사태는 이로써 정치 적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장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