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총파업정국, 협상이냐 충돌이냐

(사진/마주 앉은 여야 영수. 사과도 백지화 선언도 없었지만 대화 실마리를 마련하고 사실상 총파업 지도부에 대한 영장집행 유보라는 결과가 있었다.)

총파업 정국의 긴장상태가 청와대 영수회담에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 인다. 정치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1일 열렸던 청와대 영수회담이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기 때문이다. 야당은 김영삼 대통령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의 국회날치기 처리를 원천무효화하거나 국민 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한 여당이 제안한 재개정 협상에 참 여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민련 결렬선언 여야협상 걸림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도 회담결과에 실망을 표시하면서 날치기법 무 효화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의 실마리 는 마련됐으나 본격적인 협상국면으로의 전환은 여당이 날치기 처리의 잘 못을 시인하지 않는 한 어렵게 된 셈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의 재개정을 위한 문호를 개방 함으로써 여야가 정치협상을 통해 총파업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 측면은 부인하기 힘들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회담이 끝난 뒤 “완전합의는 이루지 못했으나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결렬’을 선언함으로써 당분간 여야협상의 가능성은 적은 편이지만 자민련의 반발이 핵심현안보다는 여 권의 자민련 흔들기에서 비롯된 감정적 적대감에서 비롯된 성격이 강한 만큼 막후 대화를 통해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김영삼 대통령의 애매한 태도와 두 야당 총재의 엇갈리는 영수회담 평가 는 당분간 정치권이 내부 의견조정을 할 수 있는 탐색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 대통령은 ‘날치기 처리’에 대한 야권의 비난 에 대해서는 비켜가면서 공을 국회로 넘기기에 주력한 듯한 인상을 남겼 다. 반면 두 야당 총재는 ‘날치기 처리’의 무효를 강력하게 주장함으로 써 김 대통령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여권은 야당이 김 대통령의 완 전항복을 강요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은 김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확실히 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이는 여야의 향후 협상이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사실 이번 영수회담은 출발부터 여야가 상당한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야 당의 요구와 여당의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회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 동계의 총파업과 학술·사회단체, 종교계의 격렬한 저항이 정치권의 대화 를 강요했다고 할 수 있다. 야당으로서는 자신들이 만든 ‘작품’이 아닌 만큼 자신들의 의도대로만 영수회담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영수회담을 만들어준 비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얘 기다. 여기에 야권의 고민이 있다.

김대통령, 야권 공동책임전술 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권은 오히려 홀가분하다. 모든 문제를 국회로 되돌 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일단 국회안으로 수렴할 경우 신한국당뿐만 아니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모두 ‘공동책임’을 질 수밖에 없어진다. 김 대통령은 뒤로 빠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어찌 보면 야권이 짐 을 모두 떠안게 되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야권으로서도 두루뭉 실한 김 대통령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볼 수 있 다.

이는 이날 영수회담에서 ‘3김’의 대화록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와 관 련한 대화록을 청와대쪽과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쪽 관계자들의 전 언을 통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 대통령: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법 개정을 통해 새출발을 해 서 우리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려고 했으나 파업사태 등으로 수조원에 달하 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등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 이다. 그럼으로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노동법이든 안 기부법이든 무엇이든간에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도 좋다. 국회에서 여야가 논의하면 잘 될 것으로 생각한다.

▲두 김 총재: 김 대통령이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맡기는 것은 찬성 이지만 통과된 법이 무효인 만큼 재심의해야 한다.

▲김 대통령: 지금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공포된 것을 무효화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나로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두 김 총재: 여당 의원들에게만 통보하고 야당 의원에게는 통보하지 않 은 것은 합법적인 절차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무효다.

▲김 대통령: 그러면 무효인지 여부도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보라.

▲이 대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처리인 만큼 무효가 아니다.

▲김 대통령: …. 무효는 아니지만 대화는 해야 한다.

▲두 김 총재: (오찬 뒤 이 대표를 만나) 김 대통령에게 절차상의 잘못을 시인하면 재심의에 야당이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해달라.

야당의 두 총재는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김 대통령이 잘못을 시인하지 않 는 한 국회협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야권으로서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대여투쟁을 한수위 높일 것인지, 아니면 협상국면으 로 전환할 수 있는 정치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 이다.

현재까지는 두 당 사이에 확실한 의견일치를 보지 않았지만 강경분위기가 앞서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자민련 김 총재가 강경하다. 이와 관련한 대 화록도 재미있다.

김 총재는 먼저 김 대통령에게 여권의 ‘자민련 흔들기’를 강력하게 항 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각규 강원도 지사와 황학수, 유종수, 이재창 의 원 탈당을 여권이 주도했다는 항의다. 이에 대해 김 대통령은 여권이 야 당 의원을 빼내기 한 적이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김 총재 를 무마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김 총재는 “오늘 탈당 안 한다고 한 사 람이 내일 당장 도망가는 일이 벌어지는데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인가?”라고 강한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김 총 재는 앞으로 야당 의원 빼내가기에 대한 재발방지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 졌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김 총재의 이러한 요구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대화 분위기가 곧바로 자민련이 영수회담 결렬을 선언하게 만든 것으로 정치권은 분석하고 있다. 국민회의 김 총재가 “완전한 합의는 없 었지만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이다. 국민회의로서는 안기부법을 포함한 모든 ‘날치기 처리 법안’을 모두 국회에서 다시 협상할 수 있다는 점과 노동계 파업 지도부에 대한 영장집행 보류 등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로 볼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은 ‘야권 흔들기’에 대한 김 대통령의 재발방지를 따내지 않고서는 항상 여권에 의한 ‘자민련의 공중분해 공포’에 벗어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야권의 대여협상 이전에 야권 내부의 의견조정이 더욱 어려운 국 면이 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협상결과 내놔야 할 야권도 큰 부담

야권의 부담은 또 대여 강공책을 사용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인 협 상결과를 끌어내야 한다는 데 있다. 자칫 ‘3김의 정치력 부재론’까지 여론이 확산될 경우 연말의 대통령선거에 미칠 악영향은 자못 지대할 것 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여권보다 야권이 더욱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권도 노동계의 반 발이 총파업으로 이어지면서 종교계와 사회단체, 지식인 집단의 항의로 확산될 경우 정국불안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번 총파업과 심각한 민심이반이 김 대통령의 독선 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 에 김 대통령은 시국수습의 실패에 대한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떠안게 된 다는 점에서 그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용성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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