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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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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거리로 쏟아져 나온 불가리아의 대학생들. 현 정부의 경제실책을 질타하며 조기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동유럽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냉전시대의 공산당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에서 연일 불붙고 있는 반정부시위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두 나라의 반정부 시위는 종식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지난 95년 말 데이 튼평화협정 체결로 평화 정착의 기대가 높아진 발칸반도를 1년 만에 다시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르비아의 민주화 불가리아로 확산
발칸반도는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다민족국가인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 서 보스니아를 무대로 ‘민족청소’라는 야만적인 내전을 치른 곳이다. 그전에는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며 1차대전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미국과 서유럽으로서는 이 발칸반도의 안정을 정착시키지 않는 한 유럽의 평화 나아가 세계의 평화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나라의 시위에 유럽과 미국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 다.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두 나라의 집권당은 모두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몰락한 옛 공산당 세력의 후신이다. 양국의 반정부시위는 외견상으로는 간판만 사회당으로 바꾼 옛 공산당 세력의 퇴진운동인 것이다.
반정부시위가 먼저 시작된 곳은 세르비아다. 지난해 11월 하순부터 두달 째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세르비아의 반정부시위는 올해 들어 불가리아 로 번졌다. 양국의 반정부시위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유럽에 몰아 친 반사회주의 물결의 ‘`도미노 현상’을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반정부시위의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보다 는 다른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세르비아의 반정부시위는 장기독재 정권의 전횡을 응징하기 위한 민주화 시위의 성격이 짙다면, 불가리아는 독재정권은 아니지만 경제 난국을 초래한 책임을 지고 퇴진할 것을 요구 하는 시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서방이 세 르비아 정부에 시의회선거 결과를 무조건 인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함과 동시에 언론자유·사법부 독립·선거법 개정 등 민주화 조처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 세르비아 사태의 본질을 잘 말해준다.
세르비아 사태는 집권 사회당을 이끌고 있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 이 지난해 11월17일 시의회선거에서 야당의 승리를 무효화함으로써 촉발 됐다. 세르비아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정상적인 민주선거의 결 과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3개 야당연합인 ‘자예드노’(다함 께)는 수도 베오그라드를 비롯해 18개 주요 도시 중 14곳에서 승리했으나 ,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부분적 양보조처로 제2의 도시 니스 등 몇개 도시 에서의 야당 승리만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시위대 설득하지 못한 일부 양보
베오그라드의 경우 시위 50여일 만인 지난 1월14일 베오그라드 선거관리 위원회가 야당의 승리를 인정했음에도 밀로셰비치쪽은 항소를 통해 `시간 벌기 전술을 펴고 있다. 밀로셰비치쪽은 또 친정부적인 베오그라드대학 총장을 유임시킴으로써 반정부시위의 주력부대인 학생세력과 타협할 의사 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도 하다.
대세르비아주의를 내세워 보스니아 내전을 지원하는 등 동유럽에 이념이 퇴조하면서 크게 대두한 민족주의에 기대 8년째 독재권력을 휘두르고 있 는 밀로셰비치에게 야당 승리의 전면수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베오그라 드 등 주요도시를 야당의 수중에 내줄 경우 그것은 자연스럽게 밀로셰비 치의 권력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야당 지도자로 베오그라드 시장으 로 내정된 조란 진지치는 밀로셰비치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수단으 로 베오그라드 등 주요도시에 계엄을 선포할 것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 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에 불가리아 시위대는 지난 94년 총선에서 우파정권을 물리치고 재집 권에 성공해 98년 말까지 집권을 보장받고 있는 사회당(BSP)에 총선을 18 개월 앞당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5월 총선이 관철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 벌이겠다는 것이다. 불가리아 사회당은 고율의 인플레와 실업 등 시장경 제 개혁의 부작용과 옛 공산정권 시절에 대한 대중의 향수에 힘입어 합법 적으로 권좌에 다시 올랐으나 민주절차를 무시했다기보다는 경제재건에 실패해 퇴진을 강요당하고 있는 꼴이다.
이에 따라 서방은 세르비아에 대해서는 경제제재 강화 등을 무기로 야당 의 승리를 인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나, 불가리아 정국에 대해 서는 우려를 표명하는 이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가리아의 경제난은 지난해 주식인 빵값이 11배나 오르는 등 3백10%의 인플레를 기록했으며, 월평균 임금은 20달러에 그쳐 유럽의 최빈국인 알 바니아의 50~60달러에도 못미쳤다. 불가리아는 올 들어서도 빵값이 2배로 뛰는 등 `빵 부족사태가 심화되자 16일 미국으로부터 3천5백만달러어치의 밀을 긴급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불가리아의 밀비축량은 26만t에 그쳐 3월 을 넘기기가 힘든 실정이다.
경제실책 조기총선으로 심판 받으라
불가리아 집권당은 이런 경제난에 발목잡힌 듯 반정부세력이 집권당의 조 기총선 대화 제의까지 거부한 채 3월 의회해산, 5월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시위를 계속해도 속수무책이다.
이처럼 발칸반도의 두 나라는 반정부시위의 배경에서 색다른 양상을 보이 고 있다. 세르비아도 보스니아 내전을 지원한 대가로 서방으로부터 경제 제재조처를 받아 경제난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정부시위의 직접 적 요인은 아닌 것이다.
안영진 기자/ 한겨레 국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