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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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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째 수도 베오그라드를 비롯한 대도시를 휩쓸고 있는 세르비아의 반정 부시위는 끝내 철권통치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벼랑으로 밀어 내고 말 것인가. 그 열쇠는 시위대의 타도대상이 되고 있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대응 여하에 여전히 달려 있다. 물론 시위대쪽의 역량 역시 중 요한 관건이다.
지방의회선거에서 야당연합의 승리를 무효화한 결정을 취소하라는 요구에 서 비롯된 밀로셰비치 퇴진운동이 한발 더 나아가 그의 정신적 반려이며 둘도 없는 친구인 밀로셰비치의 부인 미랴나 마르코비치(53)를 포함한 체 제 자체를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폭발성의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시위대의 구호에 등장하는 밀로셰비치의 약칭인 ‘`슬로보’란 이름은 심 지어 이라크 독재자 후세인에 빚댄 혐오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간 간히 터져나오는 그의 아내의 별칭 ‘`미라’에는 더욱 심한 증오와 조롱 이 배어 있다. 시위 초반 자신의 최근 출판된 책의 판매를 위해 ‘국비’ 로 인도여행중이던 그를 두고 한 포스터는 “너는 거기에서 안전하다. 인 도에선 암소를 죽이지 않으니까”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는다.
마르코비치의 공식적인 직함은 유고슬라비아 좌파연합(JUL)의 당수이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JUL은 남편인 밀로셰비치가 당수로 있는 세르비아사회당과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소수당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가 현재의 세르비아 정국을 막후조종하는 실세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세 르비아인은 거의 없다. JUL은 의회 내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각 료직을 포함해 상당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당에는 오히려 남편 당인 세르비아사회당을 탈당하고 입당하려는 자들이 줄을 설 정도다 . 기업가들은 수출입면장을 얻기 위해 JUL의 당관료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다. 마르코비치가 세르비아사회당까지를 실제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 가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다. 시위가 격화되기 이전 그의 주변엔 당연히 권력에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이 점에서 밀로셰비치와 마르코비치의 관계는 자신의 사회당을 자기 부인 의 정당으로 대체 또는 합병하려 한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 엘레나 차우 셰스쿠의 관계와 너무 닮은 꼴이다.
그는 지난 87년 밀로셰비치가 선임자와 동료들을 내치고 세르비아 공산당 제1서기로 올라서 당내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배후조종한 ‘`철의 내조자 ’로 꼽힌다. 마르코비치는 밀로셰비치에게는 ‘줄리엣’이지만, 세르비 아인들에겐 ‘멕베드의 부인’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오그라드 근교의 포자레바치에서 함께 자란 이들 부부는 똑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베오그라드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치던 마르코비치는 출신성분 이 별로 좋지 않은 남편의 출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밀로셰비치가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이 된 뒤 한동안 교수와 저작활동으로 물러앉았던 그는 93년 의회선거에 낙선한 뒤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남편의 후광을 업고 정치적 실세로 등장했다.
한때 밀로셰비치의 측근이었던 스테반 미르코비치 전 유고연방 육군참모 총장은 그를 두고 이렇게 평한다. “밀로셰비치처럼 감정적으로 단호한 인물은 못되지만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밀로셰비치를 조종하고 있다. 2인승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들 부부는 마르코비치가 핸들과 브레 이크를 잡고 있다면, 밀로셰비치는 페달만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마르코비치는 자신이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공산정권 독재자들의 부 인처럼 비쳐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세르비아의 분 위기는 그의 염려를 현실화하고 있다.
류재훈 기자/ 한겨레 국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