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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경제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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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메가트렌드 아시아’의 저자인 미국의 경제평론가,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한국경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대기업 비대화 현상이 지나쳐 새롭게 변모할 세계경제 속에 서 계속 경쟁력을 지켜나가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경제발전 과정의 새로 운 단계, 즉 진취적 기업정신에 크게 역점을 두면서 분권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와 재벌그룹들이 중소기 업 진흥방안의 실행에 착수한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대기업공화국
정말 우리의 경제력집중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걱정스럽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수적으로 1%인 대기업이 경제의 57%(94년 출하액 기준)를 담당하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대기업 지배체제가 완강하게 버 티고 있는 일본에서도 대기업이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비율은 50%를 밑돈 다. ‘독일판 재벌’인 콘체른의 유산을 안고 있는 독일에서는 이 비율이 30% 정도이다. 세계적인 맘모스 다국적기업이 포진하고 있는 미국경제의 대기업 담당률은 대략 20%이다.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의 5백대 기업은 미국경제의 약 10%를 맡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놀라지 마라. 우리나라 의 10대 재벌은 국내총생산의 약 20%를 도려내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금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산업전선의 제일선에서 뛰고 있다. ‘중소기업 대망’의 물결이 전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대략 70년대 후반부터이다. 이 물결을 선도한 미국경제는 70년대 말에 이 미 대기업의 ‘기업관료제에 의한 경제’로부터 중소기업의 ‘혁신적 창 업가에 의한 경제’로 극적인 변신을 이룩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 리는 이 무렵을 전후해서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는 체제가 굳어졌다. 그 리하여 우리의 중소기업은 정점의 대기업을 떠받치는 삼각형의 밑바닥에 서 기고 있다. 중소기업이 이중적인 산업구조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는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미국의 중소기업 은 날고 있고, 일본의 중소기업은 뛰고 있으며, 우리의 중소기업은 기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날고 뛰고 하는 것은 대기업들이다. 우리는 ‘역사의 꼬리’에 겨우 매달려 가고 있다.
한국경제의 극단적인 경제력집중은 60, 70년대에 이른바 개발독재라는 정 부주도 개발전략으로써 거대기업군을 의도적으로 육성한 데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즉 한국의 재벌은 민간부문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더 정 확하게는 자력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개발독재의 결정적인 구실에 힘 입어 정경유착이라는 값비싼 비용을 치르며 정책적으로 육성된 것이다. 이제 한국의 재벌은 기른 자의 품을 벗어난 호랑이들이다. 그들은 지금 길러준 자와 ‘파워 게임’을 벌이고 있다.
경제력 집중은 국제경쟁에 도움 안 돼
경제력집중이라는 거대한 성채를 쌓아올린 한국의 재벌들은 이제 위장계 열회사의 설영(設營)이나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침식이라는 방식으로 문어 발식 확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재벌들의 주요 명분은 이렇다. “ WTO체제 가동 및 OECD 가입으로 중소기업 영역에도 외국의 경쟁력 있는 ( 중소)기업들이 밀어닥칠 터인데 우리의 연약한 중소기업들은 이들에 맞상 대할 경쟁력이 없으므로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우리의 재벌들이 외국의 중소기업과 대항하여 ‘헤비급 대 플라이급’의 경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중소기업을 정책적으로 육 성하여 경쟁력을 키워주고, 이들로 하여금 외국의 중소기업과 경쟁이 가 능하도록 유도해 주면 안 되는가?
옛말에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하여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 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오늘날의 재벌을 의도적으로 육성한 것은 바로 정부이다. 따라서 재벌의 경제력집중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며, 또한 정부만이 그 권능을 보유하고 있다. 개방체제 아래의 국가경쟁력 강화나 경제회생 등 그 어떤 명분으로도 경제력집중의 심화를 허용해서는 안 된 다. 경제력집중의 완화라는 터전 위에서, 자유·자율·개방과 양립하는 건전한 산업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