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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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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1월17일 열린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대토론회'. 과천의 재벌정책 주무부서들조차 청와대 기류를 모르겠다며 불만이다.)
“못찾겠다, 꾀꼬리”.
어렸을 적 술래잡기를 할 때 즐겨 부르던 노랫말이다. 지금 정부의 재벌 정책이 이 노랫말대로다. “정부 재벌정책의 방향을 못잡겠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과천의 재벌정책 주무부서들조차 청와대의 재벌정책 기류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파악하지 못해 당혹해 하는 눈치다. 정책의 대상자인 재벌들도 마찬가지 불평을 털 어놓고 있다. 전형적인 ‘정책의 실종’이자 ‘갈팡질팡’이다.
3년만에 막내린 신한국 재벌정책
한승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지난 1월15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에 게 행한 ‘97년도 경제정책 방향’ 보고에서 “업종전문화 제도는 현행 지정기한이 만료되는 금년 1월중 기업자율에 일임하는 방향에서 개편방향 을 검토하겠다”며 이 제도를 도입한 지 3년 반 만에 백지화 선언을 했다 .
현 정부는 지난 93년 7월 발표한 경제운영 청사진 ‘신경제 5개년 계획’ 을 통해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나친 다각화, 독립경영체제의 미흡 등이 경쟁력 약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앞으로 정부는 공정거래법에서 정하는 30대 기업집단을 업종전문화를 대상으로 하여 주력업종에 속한 주 력기업에 대하여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여신관리, 기술개발자금 및 공업 입지 등에서 우대조치를 강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 정책 은 상공자원부 장관이던 김철수 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이 박재윤 당시 대통령경제수석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에게 강력히 제언해 관 철시킨, YS정부의 대표적인 산업정책이자 재벌정책이었다.
정부는 그해 말 후속조처로 △15개 업종 중 농수산업, 금융보험업, 기타 서비스업을 제외한 12개 업종을 대상으로 하며 △자산총액 기준 상위 10 대 기업집단은 3개까지, 11대 이하는 2개까지 주력업종을 선정하며 △주 력업종 및 기업은 3년마다 지정한다는 내용의 주력업종 선정기준을 발표 했다. 또한 주력기업에 대한 구체적 지원방안으로 △여신한도관리 대상에 서의 제외 △공장용 토지취득시 자구노력의무 면제 △7년간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의 예외 인정 △은행법상 동일인 대출한도 규제(자기자본의 15%) 및 동일인 채무보증한도(자기자본의 30%) 규제 예외 △공유수면 매 립사업을 통한 공장용지 조달 규제 완화 등을 발표했다. 업계는 이같은 정책에 대해 ‘신규규제’라면서 강력히 반발했으나, 결국 서슬이 시퍼렇 던 정부의 방침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뒤 30대 기업집단은 각각 2∼6개의 주력업종 및 기업을 선정했고(10대 그룹의 반발로 3개였던 전문기업 상한선은 6개로 확대됨), 정부는 약속했 던 각종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대기업들이 선호한 부문은 반도 체(삼성 현대 LG), 철강(한보 삼미 기아), 석유화학(삼성 현대 선경 쌍용 한화 금호), 자동차(현대 대우 기아 쌍용) 등이었다.
일본 재계가 놀란 한국 재벌의 엄청난 투자
업종전문화 시책은 지난 94∼95년 도래한 반도체 특수 및 엔고로 인해 대 단한 성과를 거두는 듯 비쳤다. 이 과정에서 삼성·현대·LG는 반도체부 문에 천문학적 투자를 거듭했고, 한보는 5조원대의 거금을 차입해 제철소 를 세웠으며, 쌍용 기아 등 후발 자동차 메이커들은 생산라인 확장에 기 업의 사활을 걸었다. 석유화학 특수강 등 여타부문의 투자열기도 대단했 다. 일본 재계가 “도대체 한국 기업들은 어디서 돈이 생겨 저렇게 무지 막지한 투자를 할 수 있는가”라고 경악할 정도로 투자경쟁은 엄청났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반도체가 과잉 투자·생산의 결과 가격 대폭락을 시작했고, 4월부터는 미국의 일본 두들기기가 멈추면서 하루아침에 엔고 가 엔저로 급반전했다. 단군 이래 최대호황이라던 경기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2백30억 달러를 기록했다. ‘신경제’의 추락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불황에 본격 진입한 지난해 초부터 시 작된 철강·자동차·건설부문의 자금난은 연말연시를 거치면서 극에 달해 , 일각에서 부도설과 인수합병설이 나도는 등 올 들어 연초부터 재계에는 위기감이 급팽창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자금난은 업종전문화 정책을 최 대한 활용해 실력 이상의 과잉투자를 행한 한보, 쌍용, 삼미 등 일부 그 룹에서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5%대 저성장까지 각오 한 안정정책을 선택한 만큼 앞으로 대량도산과 실업사태가 불가피할 것이 라는 게 재계의 지배적 전망이다.
한 부총리가 연초에 경제운영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현 정부의 간판 산업정책이자 재벌정책이던 업종전문화 시책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불황의 필연적 귀결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업종전문화란 애당 초 재계에 대해 급속히 잃어가던 통제력을 되찾기 위해 상공부가 짜낸 신 종규제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폄하하며 당연한 조처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동법 개정과정에 재계의 입김이 얼마나 컸던가를 목격한 학계 등에서는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용 ‘총알’을 생각해 정 부·여당이 재벌정책을 후퇴시키는 게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 고 있다. 이들의 비판은 업종전문화가 정부주도로 진행되고 장치산업에 치중되는 등 추진과정에 많은 문제점를 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말의 △전두환-노태우 재판에서의 재계총수 사면 △공정거 래법 개정안 대폭 후퇴 △재계이익에 경사된 노동법 개정 △연초부터 청 와대 경제수석실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는 ‘은행 주인 찾아주기’를 포함 한 금융개혁 논의 △삼성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에 대한 정부의 조세감 면 허용 시사 △산업구조조정 추진 등 최근 일련의 움직임들이 업종전문 화 백지화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중인 재벌정책의 전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 이들은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경우 지난해 말부터 신한국당에서 대선전략 차원에서 정부쪽에 집요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는 금융실명제 및 토지실명 제 완화요구까지도 결국 수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재벌정책 시행착오 책임은 국민 몫
요컨대 업종전문화 백지화는 3공식 관료주도 경제운영의 시대적 한계, 업 종전문화 대상을 21세기형 선도사업(Leading Industry)이 아닌 20세기형 장치산업으로 설정함으로써 과잉 중복투자의 화를 자초한 재계의 경영능 력 부재 등의 필연적 귀착점이다. 아울러 현 정부의 감상적 재벌정책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점은 이같은 시행착오에 따른 천문학적 ‘수업비’를 궁극적으 로 짊어질 이들은 애꿎은 국민들이라는 사실이다.
박태견/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