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정명훈의 또다른 시작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아시아를 지휘한다.

한국, 일본, 중국,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시 아 8개국에서 선발된 오케스트라 주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아시아 필하모 닉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가 일본(1.24~26)과 한국(1.29~30, 예술의 전 당)에서 열리면서 정명훈씨가 그 지휘를 맡게 된 것이다.

아시아 필의 창단은 지난 95년 말부터 구체화됐다. 일본 도쿄시는 국내 ‘예술의 전당’격인 종합문화센터 ‘도쿄 국제포럼’을 지으면서 개관 연주회 지휘를 정씨에게 부탁했다. 오래 전부터 아시아인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를 구상하고 있던 그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 케스트라의 창단을 제안했고 이 제안은 정씨가 상임지휘와 음악감독을 맡 기로 하면서 즉각 합의됐다. 아시아 필은 그래서 상설 오케스트라가 아닌 연주회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다.

아시아 각국에 의뢰해 꾸려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현재 1백3명(일본 68 명, 한국 15명, 기타 나머지 국가들)으로 한국에선 KBS교향악단, 서울시 향, 코리안 심포니, 부천 시향 등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참여했다. 오는 1월19일 일본에서의 리허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연과정에 돌입하는 아 시아 필은 이번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5번(29일), 브람스 교향곡 1번, 차 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30일) 등을 연주한다. 아시아 각국의 민족음 악 개발에도 주력할 예정인 아시아 필은 이를 위해 일본 공연에선 일본 작곡가 토드 다케미츠의 <새는 별 모양의 뜰에 내린다>도 연주한다. 바이 올린 협연자로는 일본 공연에선 가와구보 다마키(16), 한국 공연에선 리 비아 손(20) 등의 신예가 함께 한다. 리비아 손은 12살 때 런던 예후디 메뉴인 국제콩쿠르 1위로 입상,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연주자 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적극 추천한 유망주다.

아시아 필은 창단연주 이후 한국, 일본,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의 단원들 을 40:40:20의 비율로 조정하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권의 단원들은 아시아 필의 책임자가 각 나라를 방문 해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며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 출신의 단원들도 영입할 계획이다. 98년부턴 한국과 일본뿐 아니 라 매해 1월과 8월 아시아 각국을 순회하는 정기연주회를 계획하고 있으 며 월드컵 등 전세계적 행사에도 아시아를 대표해 참가할 예정이다. 그리 고 이들의 공연은 창단 연주부터 실황음반이 발매된다. 연주의 수준이 향 상된 이후에는 세계 순회공연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시아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전세계를 지배한 제국주의 이데올로 기의 분쟁으로 아시아 각국이 서로에게 안겨주었던 아픔의 역사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아시아 필은 이런 상처를 꿰매 진정한 아 시아의 화합을 이뤄낼 책무를 안고 있다.

역사적 공연을 앞둔 정명훈씨는 “한 나라의 문화척도는 그 나라의 오케 스트라 수준으로 평가된다”면서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아시아 필을 통 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오케스트라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각국에서 선발된 최고의 연주자들로 구성돼 크게 염려하지는 않으나 호흡을 맞추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며 이번 연주의 완성도에 대해서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줬 다. 아시아 최고 음악인들이 나누는 음악의 하모니를 그가 어떻게 풀어낼 지 자못 기대된다. 한국에 아시아를 지휘할 그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문의: 02-518-7343)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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