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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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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감독/이민용 출연/최민수 이영애 조성권 히샴 이브라히미.)
김정룡/ 영화평론가
평자들마다 주관이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리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는 외국 영화를 말할 때와 달리 비교적 너그러운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건 눈치를 본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짧은 영화 평 한편에 창작진이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 관객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 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사정을 보건대 그것은 국내 영화자본의 추이, 예컨대 흥행이랄지 투자의욕 또는 이 땅의 빈곤한 영화 제작여건에 무형의 형태로나마 상관하는 것이 사실이다. 평론가들에게도 모종의 책임 감, 연대의식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엇갈린 몇 가지 태도가 나 온다. 단촐하게 도식화하자면 우선 뻔히 알고 있는 처지에 무어 그리 야 박하게 굴 수 있냐는 위로조의 옹호론, 장점은 적극 부각시키되 실책은 둥글게 지적하는 애정어린 객관론, 작품을 오로지 작품으로만 대하는 냉 정한 비평론. 무난하기로야 두번째 입장이 제일이겠으나, 10억원을 훌쩍 넘는 대작이 ‘시장’에서 판판이 깨지는 현실에서, 그런 영화들이 쌓여 한국 영화계 전체에 도미노 효과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그리하여 대기업 만을 비난할 수만도 없게 된 시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확인해야 할 문제 는 다시 원칙이다.
본디 비평의 생명은 해석과 가치 평가·지향에 있다. 한국 영화에 관한 평은 특히 뒤쪽에 더 매달릴 필요가 있다. 그것도 아주 차갑게. 평론가와 제작진 사이가 개와 고양이처럼 될지라도. 오늘, 살림의 비평은 이것이다 . 우리 영화는 최근 들어 비슷한 실수를 가히 체질적으로(!)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샬라>는 드라마의 내적 응집력이 어이없을 정도로 허약하다. 사건은 우연히 발생하고 돌파구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관습적 장치에 의지한 다. 승엽은 호텔에서 처음 향과 마주친다. 경찰서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둘의 만남은 신의 뜻일지언정 여기 관객이 납득할 만한 사랑과 헌신의 동기는 나와 있지 않다. 이후 승엽이 비행사 를 빼내고 자폭하는 장면이나 향이 마라의 귀를 물어 추행의 위기에서 벗 어나는 상황, 사하라 한가운데서 ‘신이 보내준’ 염소에 의해 구출된다 는 설정들은 이제 영화사에선 상투수법이 되어버려 여간해서는 잘 쓰지 않는 위기-탈출 시퀀스이다. 사전 정지작업에서 전문가의 손길로 정련됐 어야 할 대목들이 여과없이 튀어나온 결과는 황량하다. 안타깝다. 사막을 맨발로 통과하는 남녀의 강요된 절박함만큼이나.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 한 예로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사랑>에 나 오는 동양 인 상이 <인샬라>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게 재현되고 있음은 차 라리 놀라운 일이 못된다. 내 의문은 <개같은 날의 오후>의 연애관을 지 닌 감독이 어떻게 마초( Macho)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순애보를 찍을 수 있는가, 이다. 하기야 어제오늘 일인가. 대감독이 민족주의로 분칠한 저급한 액션영화를 시리즈로 만든 경우도 있었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농밀한 영화 언어를 휘두르던 이가 하루아침에 로맨틱 코미디로 방향을 급선회하는 경우도 보았으니…. 각기 하릴없는 사정은 있게 마련이고 다 양한 장르 체험은 나름대로 소중한 면이 있다. 그러나 자기 사상을 견지 하는 감독의 진득한 작업은 이 시대 관객이 한국 영화에서 가장 보고 싶 어하는 덕목이리라.
<인샬라>의 스타일은 성실하다. 감독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이건 그의 뛰어난 장점이다. 하나 유일한 장점이기도 하다. 이 안에 자기철학을 담는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영화의 흥행 여부는 신의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작품성은 신도 아 니고 시스템도 아닌, 인간의 의지와 지혜에 달려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