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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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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목판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유네스코 공인을 둘러싸고 중국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목판인쇄술을 발명한 나라는 한국인가 중국인가.
인류 지식문명에 혁명적 발달을 가져온 인쇄술 발명국의 ‘영예’를 놓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과학사학자, 서지학자, 고고학자들이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의 ‘문명전쟁’을 벌일 조짐이다.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한국의 관련 학계가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통일신라 시대에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본임을 국제학술회의 등을 통 해 ‘공인’받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인쇄술 발명국으로 자부해온 중국 이 한국에 대해 즉각 ‘성전(聖戰)을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의 문화적 자존심에 한국의 일격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 판지싱 연구원 등 관련 학자들은 중국 국가 문물국(우리나라의 문화재관리국)과 베이징시문물국의 지원 아래 지난해 12월 26일 긴급 모임을 갖고 “선조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한국으로부터 )지킬” 특별대책반을 구성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에서 만든 것임 을 입증하기 위한 전면적인 연구에 착수했다(중국 <법제일보> 1월10일자) . 중국은 종이 화약 나침반과 함께 인쇄술을 중국의 4대 발명으로 자랑해 온 만큼 이 명예를 결코 한국에 넘기지 않기 위해 범국가적인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인 한국에 목판인 쇄 발명까지 넘겨줄 경우 동양문화의 지주로 자부해온 중국은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주장이 국제적으로 인정될 경우 우리가 자랑 해온 위대한 과학발명품인 목판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 것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올 하반기 서 울에서 열릴 예정인 한국과 독일 유네스코 공동주최 학술대회인 ‘동서 인쇄문화 비교 심포지엄’에 중국과 일본 학자들도 참가할 것으로 보여 우리 학계의 철저한 준비가 요구되고 있다.
이처럼 한·중 두 나라 관련 학계가 ‘정면대결’로 나선 것은 청주대 문 헌정보학과 김성수 교수가 94년 12월 서지학회 발간 <서지학연구> 제10집 에 발표한 논문 ‘한국 목판인쇄의 기원 연대에 관한 연구’에서 무구정 광대다라니경이 당시 신라가 자체 인쇄한 세계 최고 목판본임을 유네스코 가 인정하는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세계적으로 공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물론 목판인쇄술 자체를 중국의 발 명으로 당연시해온 중국 학계는 한국 학계의 이런 주장을 심각한 ‘도발 ’로 간주한 것이다. <법제일보>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가문물국 장원빈 국장은 “학술 토론은 환영한다. 그러나 역사는 왜곡을 용납하지 않는다 ”말로 한국의 주장을 역사 왜곡으로까지 몰고 있다. 단단히 벼르고 있다 는 증거다.
신라의 무주제자 수용 여부 놓고 논란

(사진/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 2층에서 여러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이 불경은 문서머리 부분이 부식되어 없어진 형태였다.)
중국은 그동안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 라니경’을 중국 것으로 단정해 왔다. 중국 낙양에서 인쇄된 것을 신라가 수입해 갔다는 주장이다. 중국학계는 그 근거로, 첫째 무구정광대다라니 경은 중국이 704년 최초로 한역한 것이며, 둘째 당나라 측천무후(624~705 ) 재위시에 만들어진 글씨체인 무주제자(武周制字)가 사용된 점, 셋째 당 시 신라가 종이제작기술이 없었다는 점(중국은 한국의 닥나무 종이 생산 기원을 755년 이후로 잡고 있다), 넷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외 신라 자체 인쇄설을 주장할 확정적 기록이나 사료가 없다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또 가장 오래된 목판본은 1906년 중국 신강에서 발견된 ‘묘법연화경’이 라는 주장도 덧붙이고 있다.
중국은 이런 기존의 주장과 함께 ‘특별대책반’의 추가 연구활동을 통해 인쇄술 발명을 둘러싼 한국 주장을 일거에 ‘괴멸’시키겠다는 의지를 불 태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 학계는 물론 중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박성래 교수(과학사)는 “중국 주장의 핵심적 근거는 무주 제자가 사용됐다는 것과 종이 문제인데, 이것만으로 중국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무주제자가 측천무후 때만 사용된 것이라 해서 신 라가 사용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최근 연 구에서 당시 신라가 측천무후시대의 역법을 받아들여 사용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주제자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한편 김성수 교수는 고구려 담징이 일본에 종이를 전하는 등 이미 6세기 이전에 한반도에서 닥나무 종이가 생산되고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들이 있 다며 당시 신라에 종이제작기술이 없었다는 중국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교수는 특히 불국사 창건연대인 서기 751년께(<삼국유사>근거)를 무구 정광대다라니경의의 인쇄연대로 보는 통설보다 앞선 706년에서 722년 사 이를 최초 인쇄연대로 본다. 김 교수에 따르면 704년 중국에서 최초로 번 역된 이 불경이 706년 창건된 신라 황복사 3층석탑에 ‘납탑공양’(納塔 供養: 탑 속에 불경을 넣어 소원을 비는 것)되었다는 사실(史實)이 있음( 발굴된 사리장엄구 뚜껑 안쪽에 기록이 있다)을 볼 때 인쇄 연대의 상한 을 706년으로, 무주제자의 사용이 완전 중지된 722년을 하한 연대로 보아 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 최초로 번역된 지 2년 만에 신라 사찰에 납탑공양된 점, 불경 77부 또는 99부를 1부씩 탑속에 넣어 무병장수를 부처님께 기원하도 록 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내용에 따라 석가탑 이외에도 여러 사찰 탑 에 불경이 공양되었을 가능성이 큰 점 등을 볼 때 당시 신라의 목판인쇄 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결론이다.
김 교수는“중국으로선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현존 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임은 엄연한 사실이며, 당시 불교를 국교로 삼은 통일신라가 중국에서 수입한 불경의 대대적인 보급을 위해 목판인쇄 를 창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척박한 풍토 개선해야 문화유산 보존
그러나 지금의 학문적 현실은 한국에 유리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중국 학계의 연구는 서양 학계에 비교적 신속하게 알려져 학문적으로 인정되는 반면 우리 학계의 연구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외에는 대부분 중국 주장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문화유산의 해라 지만 문화재관리국 등 정부의 전통과학기술문화 보존 선양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성래 교수는 “우리 주장의 근거 들을 외국어로 번역해 알리는 것이 시급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척 박한 문화풍토가 선조들의 위대한 발명품조차 다른 나라에 빼앗길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김성수 교수는 “우리도 정부차원에서 전문연구팀을 구성해 다라니경을 비롯 석가탑 일괄유물에 대한 연구와 시 대증명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올해 서울의 유네스코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문제가 본격 논의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중국 학자들이 먼저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 다. 7~8세기 고대 동아시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인쇄문화를 꽃피운 중 국과 한국 두 나라의 ‘문명전쟁’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