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총파업을 증언한다

(사진/"분노하는 민중의 목소리를 생생히 내보낸다." `총파업 승리를 위한 공동영상제작단'이 집회현장에 마련한 `명동 민주방송국' 화면을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들.)

집회현장에선 노래만 있는 게 아니다. 방송, 통신, 만화 등 있을 건 다 있다.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중심으로 한 이들 문화매체는 대개 문 화운동단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집회현장에 뛰어들었다.

명동 상업은행 앞에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멀티비전을 통한 텔레비전 방송이 쉬지 않고 나간다. 전국 각지의 파업현장과 집회장면이 왜곡, 축소 없이 그대로 비춰진다. 길을 가다 멈춰선 시민들의 눈길이 진 지하다 못해 매섭기까지 하다. 이름하여 ‘명동 민주방송국’이다. 이 독 립방송국을 꾸려나가는 독립기자들(?)은 대략 30여명이다. 노동자뉴스제 작단, 보임, 서울영상집단, 푸른영상, 독립영화협의회 등 5개의 대표적 영상문화운동단체들이 지난 1월10일 모여 조직을 만들었다. ‘총파업 승 리를 위한 공동영상제작단’(공영단). 그리고 단원들은 비디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거리로 거리로 뛰쳐나갔다. 분노한 민심을 카메라렌즈에 담 는 이들은 연일 계속되는 집회·파업 상황의 신속보도와 함께 시민 인터 뷰도 엮어 ‘민(民)의 목소리’를 내보낸다. 최루탄이 렌즈를 뿌옇게 막 아설 때도 있지만 이들은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명동성당 안에 있는 파업 집행부의 현황을 촬영하기 위해 교대로 밤샘을 하며 이 시대를 찍고 있다.

명동에는 또 ‘주범 YS와 날치기 오적은 누구인가’를 묻는 여론조사판이 설치돼 있다.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이름 아래 스티커를 붙여 의견을 밝히 고 있는데 김영삼 대통령과 이홍구 대표의 이름판엔 스티커가 두겹세겹으 로 다닥다닥 붙어 더이상 스티커를 들이밀 공간도 남아 있지 않다.

1월18일 아침부턴 서울 도심 곳곳에 만화 소자보가 나붙었다. ‘우리 만 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대표 박재동)은 현상황을 빗댄 촌철살인의 시 사만화를 만들어

민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차분으로 6만장이 제작된 이 만화는 전국 각지로 발송되고 있으며 앞으로 상황에 맞춰 새로운 작품들이 계속 등장 할 예정이다.

또 1월17일부터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문학인들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을 중심으로 벽시와 문학 팸플릿을 펴낼 것을 구상중이다. 여 기에 ‘노동미술위원회’는 선전물, 전단, 광고 도안을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팀의 활약은 가장 광범위하다. ‘진보를 위한 통신연 합’ 등 10여개의 통신단체들은 12월26일 날치기 직후 통신인다운 신속함 으로 컴퓨터 통신에 안기부법과 노동악법을 규탄하는 글들을 올리기 시작 했다. 이어 토론방을 개설하고 연일 일어나는 상황을 수시로 통신공간에 올리고 있다. 얼굴없는 이들의 작업장은 컴퓨터가 있는 곳이어서 다른 문 화패들과는 달리 굳이 명동으로 집결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향린교회에 사무실을 설치한 범대위쪽에서 성명서나 파업·집회 상황 등을 영문으로 인터넷에 올려 국제여론 조성에도 애쓰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독일의 노동·시민단체에서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외국언론의 인터뷰 요청, 일 본 노동단체로부터의 격려 팩스가 범대위에 쏟아지고 있다(천리안, 나우 누리 Go bgdw:범국민 대책위원회 영문약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기획부장으로 범대위 문화활동을 주관하고 있는 최 준(32)씨는 “문화운동은 사람들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오랫동안 잔상을 남겨 준다는 점에서 지난한 이 싸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문화패들이 있음으로 현장에선 승리의 감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고 말했다.

오늘 명동으로 나가보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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