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메아리치는 민중의 노래

(사진/민중가요가 파업깃발을 흔들며 되살아나고 있다. 민중노래패 `꽃다지'는 집회현장을 누비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되어 우리 나가자/ 승리 의 그날까지”(파업가).

“민주노조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으세/ …/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철의 노동자).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 아 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 투쟁뿐이다”(단결투쟁가).

민심의 분노가 들끓는 거리에 노래가 있다. 분노로 가득 찬 노래는 꽉 막 혀 답답했던 가슴을 터뜨린다. 노래와 함께 거리에 선 이들은 어느새 ‘ 동지’가 된다.

민중가요가 되살아나고 있다. 개량과 시대변화라는 밑으로부터의 허물어 짐으로 민중가요를 입에 올리는 것이 어느덧 어색하게 돼버린 세대들이 붉은 머리 띠를 하고서 그 노래를 온몸으로 부르고 있다. 총파업의 열기 속에 터져나오는 노래, 민중가요는 그저 결의를 다지는 도구로서가 아니 라 분노를 결집시키고 싸움의 방향성까지 제시하는 주역이다. 최근 중산 층 넥타이 부대가 파업과 집회 현장에 등장하면서 70~80년대의 훌라송이 다시 들려오기도 한다(“넥타이는 동참하라, 훌라 훌라”).


분노의 거리에서 부르는 시대의 노래

민중가요라는 진보적 노래문화가 독자적 영역을 갖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였다. 75년 긴급조치로 박정희 군사정권의 탄압이 극에 달하자 낭만적이기까지 했던 학생운동은 용기와 결단을 요구받았고 그 결의를 다 지게 하는 노래들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전 대중가요로 발표된 김민기 의 노래가 재해석돼 불리기 시작했는데 ‘아침이슬 ‘친구’ 등이 그런 노래였다. 70년대 이 땅의 젊은이들은 ‘아침이슬’ 노래 하나에 어깨를 걸고 정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갔다. 그뒤 80년대를 맞기까지 ‘우리 승 리하리라’ ‘흔들리지 않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정의가 ’ ‘해방가’ 등이 운동권의 노래였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은 ‘임을 위한 행진곡’ ‘그날이 오면’ 등을 낳았고 , 이후 대학마다 노래패가 만들어졌으며 행진곡 풍 위주의 단순한 리듬에 서 발전해 서정가요 등 작품성 높은 노래가 끊임없이 발표됐다. ‘그날이 오면’ ‘이 산하에’ ‘벗이여 해방이 온다’ 등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 를 끌었다. 이어 87년 노동자대투쟁은 ‘노동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파업가’로 시작된 노동가요는 ‘단결투쟁가’ ‘노동조 합가’ ‘진짜 노동자’ 등 87년 현장투쟁의 경험을 담은 노래들을 봇물 처럼 쏟아냈다. 지금 집회, 시위 현장에서 불려지는 노동가요 대부분이 이때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노래는 계속됐으나 “시대가 변했다”는 분위 기와 함께 민중가요 수용층이 급격히 줄어든 게 사실이다. 대중들은 부담 스런 노래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일반 대중가요와는 거리가 멀었던 대학생 들도 다양성을 내세우며 대중가요가 대학가 깊숙이 들어왔다. 사안의 찬 반을 떠나 이전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87년 대투쟁의 경험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이들도 민중가요보다는 신세대 노래가 더 환영받 는 시대에 적응해 갔다. 민중가요가 설 자리도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았다. 몇몇 노래패들의 고군분투가 외롭게 보이기도 했고 민중가요 내부에도 대 중가요 장르로의 진출을 놓고 몇 가지 입장이 갈려지기도 했다.


방방곡곡에서 건강한 문화 전파자로

그런데 지금 이 민중가요를 이끌어왔던 많은 노래패들이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며 기꺼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들 노래패들에 대해 우열을 가리거나 분류하는 것은 이 시기의 숙제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거리, 현장 공연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꽃다지’다. 5명의 가수와 6명의 연 주팀으로 이뤄진 ‘꽃다지’는 지난 12월26일 날치기 이후 연일 단위사업 장과 집회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89년 ‘노동자노래단’과 노래패 ‘예 울림’이 합쳐져 만들어진 ‘꽃다지’(02-845-3580~1)는 이미 창단 때부 터 노동현장이나 대학가를 찾아다니며 조직된 대중을 중심으로 한 공연활 동을 해왔다. 20대 후반인 이들은 현재 하루에 4~5개의 사업장과 집회장 을 찾아다닌다. 안산, 울산, 성남, 인천, 수원, 대전,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오랜 기간 호 흡을 맞춰오며 노조행사엔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들은 무대에 올 라서면 오른 주먹을 굳게 쥐고 <동지가>와 <총파업 투쟁가>로 청중들 앞 으로 성큼 다가간다. 또 꽃다지 출신인 서기상(29)씨는 꽃다지 멤버들과 별도로 혼자 현장을 돌아다니며 무대에 오른다. 출연의뢰가 쏟아져 부득 이 꽃다지를 2팀으로 나눈 셈이다. 서씨는 “투쟁대오 속에 함께 있으면 서 스스로의 울분도 사르고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는 심정으로 노 래를 부른다”고 말했다.

꽃다지가 투쟁의지를 북돋우며 강하게 다가간다면 서정적으로 우리 가슴 속을 헤집으며 내적 의지를 더욱 탄탄히 다지게 만드는 팀은 ‘노래를 찾 는 사람들’( 02-226-5923)이다. 노동조합, 학생회 등 조직대중들로부터 검증된 건강한 노래를 일반인에게 보급해온 노찾사는 대중문화권 안에 이 미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노찾사도 역시 하루 4~5군데를 돌아다니는 강 행군을 계속하고 있는데 팀의 성격상 단위사업장보다는 서울 집회장을 주 로 찾아다닌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동물의 왕국> 등이 요즘 이들의 주요 레퍼토리다.

이들 노패래 외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최도은(30·여)씨가 그다 . 당당한 체구에 풍부한 성량과 박력 넘치는 노래로 그는 무대를 휘어잡 으며 전국 어디든 간다. 숙대 성악과 84학번인 그는 졸업 뒤 인천지역 노 래패 ‘노래선언’에 가입해 지금까지 활동해오며 노동현장에선 널리 이 름을 떨쳤다. 그는 “어린시절 건설 일용노동자였던 아버지를 집으로 오 는 길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남루한 옷차림과 톱, 망치가 담긴 연장도구를 든 모습이 남들에게 부끄러워 피하려 했던 것이 지금도 가슴 아프다”면 서 “지금의 활동은 노동자들에 대한 원죄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노 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다 빼앗기고 있는 것에 대해 함께 분노를 느끼 고 열정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12월26일 종묘집회 이후부터 하 루도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현장을 쫓아다닌다.

이외에도 거리에 나선 가수들은 많다. 노래패로는 ‘노래선언’이 있고 록그룹으로는 ‘천지인’‘메이데이’, 솔로가수로는 안치환, 이정열 등 이 노동자들과 대오를 함께 하고 있다.

춤과 풍물로 다가가는 팀도 있다. ‘춤세상’‘터울림’ ‘살판’ 등은 집회장에 또다른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춤세상’의 권혜경(26·여) 씨는 “대중적인 노래와 달리 춤공연에 낯설어 하는 분들도 있지만 노동 자들과 함께 참여한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공연을 통해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더이상 만족할 게 없다”고 말했다.


민주의 미래 여는 데 당당히 나선다

(사진/민중가요는 대중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총파업 승리를 위한 문화제에서 청중들이 공연자와 하나되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편 집회장에서 진행사회를 통해 집회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도 있다. 이름처럼 광기어린 사회로 유명한 최광기(29·여)씨는 직설적이고 당찬 말투와 청중들을 울리고 웃기는 말솜씨로 ‘민중 사회자’로 불린다. 지 난 90년부터 서울 상계동에서 40~50대 아주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어머니학교’를 운영하는 그는 95년 민주노총 창립 축하공연의 사회를 맡으면서 ‘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최근 그는 쏟아지는 사회 요청에 울산 등 지방출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1월26일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지 만 집회장에 가면 그의 모습을 언제든 접할 수 있다.

각기 나누어 활동하던 이들이 지난 1월16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오후 6시무렵 명동성당 앞엔 무대가 세워졌다. 주변은 경찰들의 봉 쇄가 시작됐지만 일찍부터 들어온 2천여명의 노조 조합원, 시민들이 명동 성당 오르막 계단을 이미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범대위가 마련한 ‘우리에 게는 민주주의 미래가 있다’는 문화제 행사였다. 경찰봉쇄로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한 가수들과 장비가 많아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가수 이정열, 안치환, 노래패 꽃다지, 노찾사, 록그룹 천지인, 메이데이 등이 차례로 무대 위에 올라왔다. 음향이나 악기, 조명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 았지만 공연자와 청중은 그대로 하나였다.

흰 파카에 청바지를 입은 가수 이정열이 가벼운 몸짓으로 무대 위에서 껑 충껑충 뛰며 “우리가 바꿀 수 있소, 그 바람을 막아줘”(<그 바람 앞에 서면>)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고 록그룹 메이데이는 “나가서 싸워라, 나 가서 싸워”(<학교종이 땡땡땡>) 라며 울부짖었다.

여성들의 쏟아지는 환호 속에 등장한 안치환이 기타와 하모니카로 “내 마음은 언제나 그대들과 하나요/ …/ 희망이란 내일 찾아 우리 모두 당당 하게”(<당당하게>)를 외칠 땐 객석과 무대의 경계는 이미 사라졌다. 그 가 무대 난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를 때 이화의료원 조합원들이 나와 무 대 아래서 마이크를 받쳐주는 정겨운 모습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름다 웠다. 안치환씨는 공연장에 들어오기 위해 명동 먹자골목의 담을 넘는 투 사의 용맹성을 보여주기도 했고 사회자(최광기)의 요청에 약간 머쓱해 하 면서도 ‘노동악법 철폐’ 구호를 목청껏 외치기도 했다. 이어 대미를 장 식한 노래패 ‘꽃다지’는 <동지가> <가자 노동해방> <파업가> 등으로 이 날 공연을 마무리했다. 가수들의 코는 차가운 겨울 밤공기에 빨갛게 익었 고 목소리를 터뜨릴 때마다 뽀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지만 무대에 나선 이 들은 청아했고 이날 공연은 완벽했다.

맨 앞에 앉아 열심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이화의료원 소속의 한 조합원 (28·여·조무사)은 “예전에 그냥 흘려버렸던 노래들이 가슴에 와 닿아 요.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며 상기된 얼굴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장 뒤편으로 명동성당의 성모상이 이들을 보듬어 안듯 두팔을 벌리고 있었다 .

공연이 끝난 뒤 안치환(31)씨는 “80년대 학번이 느끼는 그런 감정들을 함께 느끼고 있다”면서 “87년 거리에서 쏟아졌던 그 함성을 10년이 지 난 지금도 되풀이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나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모습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고 말했다.

이런 연합공연은 오는 1월26일 오후 1시 여의도광장에서 또 한 차례 열린 다. 16일 참가자 외에 강산에, 최도은, 희망새, 노래마을, 아라리오, 패 닉, 윤도현 밴드 등이 등장할 예정이다.


“민중가요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민중가요의 부활에 대해 꽃다지 대표 이은진(31·여)씨는 “민중가요는 있다. 수용하는 사람이 있고 유통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존재할 것이다. 민중가요를 키워온 80년대의 산물인 노래운동단체들이 민중가요 고유의 길이냐, 90년대 대중음악 장르와 같이 가느냐는 논쟁은 계속하겠 지만 이번 파업투쟁 이후에도 민중가요는 또다른 형태로 대중들의 가슴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울했던 시절 세상을 밝게 비춰준 횃불이었던 노래를 우린 어느새 잊어 버리고 있었지만 그 노래는 우리 저변에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그리고 지 금 터져나왔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비춰준 노래여!/ 우리 의 꿈이여!/ 끝내 온 세상에 울려 퍼지리!”(<노래여!우리의 삶이여>).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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