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맛 기행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서산 게꾹찌 백반

충남 서산은 서해안 태안반도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새지다. 도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엎드리면 코 닿는 곳에 산다’는 옛말이 아직은 실감나 는 이곳 사람들이 점심 때 집으로 가지 않고, ‘조선밥’ 먹으러 가자며 우르르 몰려가는 집이 있다.

얼마 전까지 군청 앞 광장이라 부르던 서산시청 앞 광장(로터리) 골목 안 의 ‘진국집’이다. 처음에는 40~50대의 공무원들이 주로 찾던 곳이었다 지만, 지금은 젊은 직장인들과 주부들의 계모임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 져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처럼 이름난 서산의 조선밥은 다름 아닌 서산의 고유음식 ‘게꾹찌’백반이다. 정확한 이름은 ‘겟국 찌개백반’이다. 서 산반도 내에서도 당진과 해미 정도만 벗어나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 다는 순수한 서산지방의 토속음식이다.

서해안의 황금어장이었던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거느린 서산은 예로부터 굴과 꽃게의 명산지다. 그래서 봄 가을 꽃게철이면 서산의 장터골목에는 싱싱한 꽃게가 수북수북 쌓였고, 이것을 한 바구니씩 사다가 게장을 담가 두고두고 먹었다.

가을에 담근 게장은 겨울까지 먹는데, 그동안 항아리 속의 게는 차츰 줄 어들어 지금쯤은 흥건하게 장국물이 고이고, 알뜰한 서산 여인들은 이것 을 그냥 따라 버리지 않고 찌개를 끓여 먹었다. 바로 게장 국물인 겟국을 넣고 끓였다고 해서 겟국찌개이고, 이 말을 줄여 서산말로 게꾹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게꾹찌는 끓이는 방법이 특이하다. 건더기를 아무 거나 넣지 않고, 반드시 김장을 하고 뒷설거지한 것이어야 한다. 배추를 다듬으며 벗겨낸 겉껍데기 우거지이거나, 포기를 이루지 못하고 납작하게 퍼진 시 래기 배추를 굵은 막소금을 훌훌 뿌려 못 생긴 항아리에 가득 절여놓았다 가 대충 헹구어 쑥쑥 썰어 넣는다. 양념도 별로 하지 않고 굵은 고춧가루 만 한 수저쯤 얹는다. 맛도 씁쓸하고 짠맛이 첫인상이다. 다만 절이는 과 정에서 결이 삭고 마치 백김치나 동치미처럼 약간 익은 상태여서 막김치 찌개 같은 인상도 있다. 그러나 겟국을 몇 차례 졸여 붓는 동안 가득 담 가놓은 꽃게에서 우러난 각종 아미노산과 핵산이 들어 있어서인지, 뒷맛 은 개운하고 입에 착 붙는 묘한 데가 있다.

서산 진국집의 게꾹찌는 다소는 개량된 것이다. 요즘은 배추 겉껍데기 우 거지와 시래기 배추가 오히려 구하기 어려워, 아예 통배추를 통째로 절여 놓았다가 우거지처럼 헹구어 넣는다. 그래서 배추가 한결 부드럽고 보기 에도 거친 맛이 덜하다. 옛날 같으면 부잣집 게꾹찌쯤 되는 격이다.

상 한가운데 게꾹찌 뚝배기와 된장 뚝배기, 달걀찜 뚝배기, 김치찌개 뚝 배기 등 따뜻한 뚝배기만 3~4개 오르고, 직접 담근 어리굴젓과 파래무침, 생굴을 넣은 무채 무침, 생선구이 그리고 국 대신 구수한 숭늉이 따라나 온다. 옛날 서산지방 서민들의 밥상이 이와 같았다는 것이다. 서산의 고 유음식들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독 ‘게꾹찌 백반’만이 이 처럼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서산사람들의 이야기 중 가장 큰 관심사는 게꾹찌의 뛰어난 소화력이다. 그래서 상차림은 거의가 채소류와 짠 반찬이지만 먹고난 뒤 속이 편안하 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먹는 식사가 쾌변과 숙변을 유도해내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어 몸이 가볍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산 도 지방도시이기는 하지만 식생활의 변화에서 오는 폐해를 가끔 이곳을 찾으며 조율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서도 주말에 진국집(0455-665-7091)을 가끔씩 찾아가면, 강남에서 유 행하고 있는 내과클리닉을 찾아가 비싼 돈을 내고 억지로 대장을 훑어내 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까 싶다.


백제의 미소 만나는 나들이길

서산은 서울에서는 멀게 느껴지는 고장이다. 하지만 오가는 길의 흐름과 볼거리들을 잘 엮으면 크게 막힘없이, 지루함을 잊으며 하룻길로 다녀올 수 있는 나들이길이다. 그중 막힘을 피하며 국보도 한점 감상하고, 온천 욕까지 곁들이는 일거삼득의 방법이 바로 운산에서-마애삼존불-덕산온천- 예산-천안IC의 코스다.

들어갈 때는 정석대로 아산만에서 당진-서산길로 가고, 돌아나올 때 이 길을 택하면 서산 가야산의 신선한 풍광을 보며 충청내륙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격이 되어 더욱 보람된다. 마애삼존불은 국보84호로, ‘영원한 백 제의 미소’란 별칭이 붙어있기도 하다.

김순경/ 여행칼럼니스트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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