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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이 부부의 ‘작은 세상’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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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안녕하세요 과일도 잘드시고요/밥도 잘드세요 전는잘놀고 있어요 선생님편지잘받았어요/선생님보고싶어요 새해복많니받으세요 자주유치원 에놀러올거에요/선생님이 제겨울이니까감기조심 하세요.”
바쁜 엄마 틈바구니에서 12월을 정신없이 보내버린 뒤, 이제 방학 끝날 날이 얼마남지 않은 하예린은 어느 날 이렇게 편지를 쓰고는 우표를 달라 고 성화였다. 선생님께서 보낸 편지를 며칠 전에 받고 환호성을 지른 아 이가 혼자서 쓴 편지였다. 맞춤법이니 띄어쓰기가 엉망인 이 아이의 편지 를 읽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하예린은 아빠와 함께 만든 계획표를 마치 우리가 ‘하면 된다’라는 표 어와 함께 하루의 계획표를 붙여놓듯이 집안 벽 어딘가에 붙여놓고는 아 무도 거기에 손도 못 대게 하였다. 바로 그 계획표 안에 아침 11시에 편 지를 쓰도록 되어 있는 아이는 이번 방학에 친구 호정이와 사촌 재관이, 유치원 선생님, 강릉 할머니, 평촌 할머니, 대전에 사는 다래 등을 편지 를 쓸 대상자로 정해놓았다. 그중 호정이와 재관이는 일찌감치 써서 아빠 와 함께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쳤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서서히 게으름을 피워서 아직 반도 다 못 썼는데 이제 거의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호정이와 재관이에게 쓴 편지는 스스로 튤립도 만들어 붙이고,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던 아이는 일단 선생님에게 편지를 쓸 순서가 되자 어쩐지 긴 장하는 눈치다. 선생님 편지를 받고서야 아이는 용기를 냈다. 아이 아빠 도 “하예린 편지 쓰는 것 좀 봐줘”하면서 나에게 아이의 지도를 부탁했 고, 나도 마감이 코앞에 있는 원고를 밀쳐두고 하예린 편지 쓰는 것을 점 검하였다. 사실 아이가 제 또래 아이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을 썼는지 그저 대충보던 어른들은 막상 그 상대가 선생님이 되자 매만 안 들었지 잔뜩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이 순간에 선생님께 과일 드시라는 말이 왜 나오냐?”며 논술지도를 하는가 하면 “아이고, 니은을 써야지 왜 리을을 쓰냐? 빨리 지워. 야야 지우개 여기 있다” 하면서 아 이를 다그쳤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편지를 다 쓴 뒤 정말 지친 표정 을 지으면서 “쓴 김에 할머니께 편지 한통 써라”는 엄마의 말을 보기 좋게 거부했다. 물론 이렇게 아이에게 편지 쓰는 일을 정말 부담스러운 일로 만든 것은 순전히 어른들이었다.
평소에는 아이에게 “입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쓰면 편지가 되는 거야” 하고 말하다가도, 막상 아이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제 수준의 맞춤법으로 써 놓으면 엄마라는 사람은 “으이그, 이게 무슨 편지냐?”는 식의 태도를 취하면서 아이의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아 이들 교육이란 어쩌니저쩌니 하면서도, 자기 아이 문제에 이르면 차분하 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선생님께 쓰는 편지 라고 갑자기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나는 알게 모르게 부모들이 선생님, 학교, 유치원 같은 곳에 대해서 느끼는 부담을 아이들에게도 전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왜 선생님에게는 친구처럼 편지를 쓰지 못 할까? 아이들의 실수를 선생님도 유치원도 학교도 알아야만 제대로 교육 이 될 텐데, 왜 그것을 못 기다리는 것일까? 왜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가 리고 덮으려고만 하는 것일까? 정말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변재란/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