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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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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프로농구의 출범으로 외국인 용병들이 대거 입국했다. 이들은 높이와 속도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만큼 우리 선수와의 경쟁에서 대단히 유리하다.)
‘테니스의 여제(女帝)’ 슈테피 그라프(독일)의 경기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너나나도 양손타법의 백핸드스트로크를 구사하는 최근 세계 테니스계의 주요 흐름에서, 그는 유달리 백(back) 쪽으로 날아 오는 공은 어김없이 슬라이스(Slice)로 받아넘긴다. 그의 강력한 라이벌 인 모니카 셀레스(미국)를 비롯해 세계랭킹 3위인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 오(스페인), ‘무서운 10대 소녀’인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가 양손타 법의 파워넘치는 백핸드를 구사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의 이런 타법은 상 당히 예외적이며 힘이 없어 보인다. 슬라이스 타법은 공에 파워가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크게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백 슬라이 스를 구사하면서도, 강자들을 제치고 세계 여자테니스계의 최강으로 군림 하고 있다.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포핸드스트로크와 예리한 서비스가 이 를 뒷받침했음은 물론이다.
해외진출로 국위 선양·외화수입 확대
(사진/야구선수들의 외국진출은 명암이 뚜렷하다. 메이저 리그 선발투수진으로 발돋움한 박찬호(오른쪽)와 일본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선동열(왼쪽).)
어쨌든 그런 그가 10여년 동안이나 각종 그랜드슬램대회와 주요 오픈대회 를 휩쓸며 상금으로 벌어들인 돈은 무려 약 2천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돈으로 대략 1백60억원,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것뿐 이 아니다. 그가 광고수입으로 벌어들인 돈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탁월한 선수들이 과연 우리나라에도 있다면 어떨까. 요즘 눈덩이처 럼 불어나고 있는 국제수지 적자 해소에 한몫을 할 것이라면 물론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뛰어난 국제경쟁력을 갖춘 우리 스포츠스 타들이 세계무대 곳곳서 빛나는 활약을 보인다면, 경제적으로 볼 때 막대 한 외화수입을 올려 국가경제에 일조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거 시적으로 보면 미미한 것일지라도. 하도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국내 스포 츠의 ‘국제수지’를 한번 점검해보자.
현재 여러 종목에 걸쳐 국내 스포츠 스타들이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 핸드볼, 프로축구 등 일부 종목에 한정돼 있다. 게다가 종목별로 편차가 있겠지만, 이른바 ‘역조현상’이 두드러진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들어오는 용병들만 부쩍 많아지고 있 는 것이다.
우선 축구계를 살펴보자. 과거에는 차범근, 허정무, 김주성, 황선홍 등이 독일 분데스리가나 네덜란드 프로축구리그에서 활약한 것이 두드러진다. 이세연과 함께 60~70년대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던 변호영도 한때 홍콩 세 미프로리그에서 이름을 떨쳤다. 이후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팀 게임 메이커였던 노정윤이 93년 일본 프로축구인 J리그의 히로시마 산프레체팀 에 진출해 현재까지 주전 공격수로 뛰고 있다. 노정윤은 J리그 출범당시 2억원이 넘는 몸값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축구선수로의 일본 프로무 대 진출은 그가 처음이었다.
최근에는 ‘적토마’ 고정운이 노정윤의 뒤를 이었다. 박종환 사단의 대 표주자로 천안 일화가 프로축구 3연패의 금자탑을 쌓는 데 일등공신 구실 을 했던 그는 박 감독이 팀을 떠나자 일본무대를 노크해 결실을 보았다. 그는 J리그 오사카 페레소팀과 계약을 맺기 위해 1월20일 일본으로 떠났 다. 계약금이나 연봉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억~3억원 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천안 일화는 고정운을 일본으로 이적시키면서 8억원의 이적료를 챙겼다.
쏟아지는 용병선수에 달러가 샌다

(사진/축구의 본고장 유럽 무대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일본 J리그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노정윤(왼쪽)과 진출 계약을 맺은 고정윤(오른쪽).)
고정운이 합세하면 일본 J리그에는 두명의 한국 용병이 뛰게 되는 셈이다 . 국민정서상 일본선수들이 한국에 오지 못하는 것과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일본에서는 또 ‘캐논슈터’ 황보관(전 유공)과 92바르 셀로나올림픽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김병수(고려대 출신) 등이 실업무대서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과 달리 현재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는 없다. 서정원이 독일 분데스리가 쾰른팀과 입 단교섭을 벌이고 있으나, 이적료 문제 등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알려 져 있다.
이처럼 국내 축구스타들의 해외진출 성공사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 외국 용병들의 국내 프로축구무대 진출은 해마다 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예 봇물이 터진 듯한 느낌이다. 지난 한해(12월 현재)만, 한국프로축구 연맹에 등록된 외국선수는 무려 38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국내에 뿌리를 내리며 빛을 본 선수로는 천안 일화의 골키퍼 사리체프, 포항의 골잡이 라데, 수원 삼성의 스트라이커 바데아, 부산 대우의 아미르 등 10명선을 약간 넘는다. 특히 올해로 6년째를 한국에서 맞은 사리체프는 월 8천달러 (6백40만원)의 고액연봉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용병들은 보통 월봉 4천~6천달러를 받고 있으며 최고 1만달러에서 최소는 1천달러 까지 큰 편차를 보인다. 역시 지난해 기준으로, 용병 한명을 데려오기 위 해서 최고로 많이 지불한 금액은 이적료와 계약금을 포함해 70만달러(5억 6천만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병 출전에 대한 제한이 있지만, 앞으 로 프로구단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이들의 몸값은 더욱 치솟을 게 자명하 다.
농구쪽을 보자. 오는 2월1일부터 출범하는 한국프로농구리그(KBL:Korea B asketball League)에는 농구의 본고장 미국 대학리그 출신인 14명의 용병 들이 선을 보이게 된다. 이들은 세계수준에 현격히 뒤떨어지고 있는 국내 농구 수준을 끌어올리고, 농구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취지 에서 영입됐다. 이들 가운데는 NBA(미국 프로농구) 수준의 파워와 테크닉 을 겸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고 농구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어쨌든 이들 용병으로 국내 농구코트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은 확실하다.
반면 우리 농구스타들의 해외진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우 물안의 개구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빠부대들이 인기를 몰고 다니지만, 해외로 나갈만한 실력을 갖춘 예는 극히 드물다. 국내서 그렇 게 날고 긴다는 서장훈이 미국에 농구유학을 갔지만 명함도 내밀지 못하 고 돌아온 것도 이의 반증이다. 과거 이충희와 박찬숙이 대만에서 활약한 게 고작이다. 결국 축구와 마찬가지로 농구도 국제경쟁력이 약해 이제 심 각한 역조현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비인기종목 선수가 효자노릇 톡톡히
가장 국제경쟁력이 세고, 해외서 보이지 않게 눈부신 활약을 보이는 선수 들이 많은 종목은 국내 비인기종목이라는 핸드볼이다. 현재 핸드볼 스타 들은 실업핸드볼이 활성화돼 있는 일본이나 핸드볼의 본고장인 유럽무대 에 상당수가 진출해 있다. 그에 따르는 외화벌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한국 여자핸드볼이 은메달을 차지하는 데 혁혁 한 공을 세웠던 임오경은 현재 일본 실업핸드볼 여자팀 감독을 맡으며 파 격적인,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그는 최근 소속팀인 이즈미를 1부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뿐 아니다. 세계적인 골잡이로 95년 세계여자핸드 볼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이었던 홍정호도 올해 이 팀에 진출해 임오경 감독과 함께 우승을 일궈냈다.
일본에는 이들말고도 10명이 넘는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고 핸드볼 관계 자들은 말한다. 다테야마 알루미늄팀의 김명회 감독, 나카무라운송팀의 박영대 감독 및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조범연·임진석 등이 바로 그들이 다.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핸드볼 스타들은 높은 기량을 인정받아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받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유럽무대에는 남자대표팀의 간판 골잡이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강재원, 윤경신, 조치효 등이 특급대우를 받으며 본고장 무대를 휘젓고 있다. 이들은 1억원을 넘나드는 연봉과 함께 부수적으로 승용차, 주택 등 의 혜택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대표 간판 골잡이였던 이석형이 강재 원이 진출해있는 스위스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핸드볼 스타들이 이처럼 국내무대를 등지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팀 부족과 팬의 외면 등 국내 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다. 지도자로서는 맹정술 전 대한핸드볼협회 사무 국장이 일본 도쿄 오사키전기 남자팀 감독, 원로인 서강석씨가 오만에 진 출해 있다.
내년부터 프로야구에도 외국선수들을 수입할 예정이어서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들에게 국내 최고액 선수의 연봉 이상을 줄 수 없고, 첫해의 연봉이 1억원을 초과할 수 없다는 등의 제약을 두고 있다. 또한 팀당 2명씩으로 출전을 제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단 용병의 물꼬가 터진 만큼, 앞으로 팀들간의 경쟁으로 수억원대의 고 액을 받고 들어오는 선수가 상당히 많아질 것은 자명하다. 야구 본고장인 미국이나 중남미 등지에서 용병이 쏟아져들어올 것이 예상되지만, 국내 스타들이 해외무대로 진출하는 것은 실력으로 볼 때 앞으로도 상당한 힘 들 전망이다. 현재 외국에서 수억원대의 몸값을 받으며 한국야구의 이름 을 떨치고 있는 선수는 박찬호(LA 다저스)뿐이다. 국보급 투수라는 선동 열(일본 주니치 드래곤스)과 조성민(요미우리 자이언츠) 등은 높은 일본 야구의 벽에 부딪쳐 역부족인 상황이다.
배구계에서도 용병도입 얘기가 빈번하게 나오고 있어 수년 내에 외국선수 들을 코트에서 볼 전망이다. 배구스타들의 해외진출사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세터 김호철이 일찌감치 배구강국인 이탈리 아에 진출해 15년 동안 선수생활을 한 게 유일하게 내세울 만한 자랑이다 . 그는 94년에는 이탈리아리그 랭킹 8위팀인 팔마스팀 감독을 맡아, 팀을 4위까지 끌어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 덕에 그는 지난해 5월 최강팀 인 트레비소 시슬리팀 감독으로 영전했다.
세계적 선수 육성으로 맞대응해야
최근에는 김남성 전 성균관대 감독이 이 팀의 전술·수비 코치직을 맡기 위해 1월23일 출국했다. 그는 김호철 감독의 서울 대신고, 성균관대 선배 다. 계약금은 10만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배구계에서는 특히 중동에 많은 지도자를 파견하고 있다.
최근 각 종목에 걸쳐 용병수입을 잇따라 허용하는 추세에 따라 앞으로 검 은 색 피부나 벽안의 외국선수들이 마치 거센 수입개방 물결처럼 몰려들 어올 것이 확실하다. 이런 추세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스포츠계도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을 발굴·육성해 좁은 울타리에 가두기보다는 세계 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경무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