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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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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잊혀져 있던 이름 ‘아버지’.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선진국 문턱을 넘겨다 보게 된 것이 모두 우리 아 버지와 같은 분들의 덕택이라 하더군요. 산업역군이라고도 했습니다. 먹 이랴, 입히랴, 등록금 대느라 한번도 그 휜 허리를 펴지 못하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이젠 거리로 밀려나셔야 하다니요.
그동안의 무리한 사냥일정 덕택에 벌써 기진해져 이젠 팽(烹)당할 날짜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고 된 역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아버지께 산업훈장은 커녕, 주름살 잡힌 두 손엔 해고장만이 기다리고 있다니….
휴일도 반납하고, 밤일도 마다 않고, 오로지 거리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윗사람 눈치만 보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안쓰러워 보입니 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매달 조금씩 꺼내 말일경에 월급봉투를 만들어 내밀었다는 어느 가장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접했을 땐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쫓겨나야 경제가 살아나 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이번에 노동법을 날치기한 사람들의 이야 기라죠. 일거리는 계속 새로운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는데, 구닥다리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들 때문에 경제가 새롭게 발전할 수 없다 는 말도 한편으론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재벌 위주의 경제에 있 는 건 아닐까요.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걸맞은 창의력과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이 최근 미국경제 활성화의 견인차가 아니었던가요. 노동법을 개 악하기 전에 휴짓조각에 불과한 재벌규제법을 좀더 강화해야만 할 것입니 다. 백화점과 수입품점에 아직도 수입고가품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엔 뒷짐 진 채, 일하는 사람만 길거리로 내몰면서 경 상수지적자 운운, 멕시코식 경제 운운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날 수 있 는 것인지 저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그 고통을 일하는 사 람들만이 져야 하나요. 재벌이 먼저 그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 었나요. 21세기 한국경제가 되살아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직된 자본’ 을 치유해야만 되지 않을까요. ‘경직된 자본’의 유연화(재벌해체) 없이 ‘경직된 노동’의 유연화(노동법개악)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법을 날치기했다는 거짓말은 더이상 그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고 겸허하게 대선을 위해, 대권장 악 시나리오를 위해, 날치기 한 것이라는 고백만이 지금의 분노를 멈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런 대권놀음의 희생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 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느라 지친 어깨를 우리가 아니면 감싸안을 사 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풍요를 우리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 동안 고생만 해온 우리들의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우리들의 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그래서 오늘, 어버이날은 아직 멀었지만, 아버 지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립니다. 지금도 찬바람 몰아치는 성 당 한 귀퉁이에서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있는 모든 분들, ‘아버지’라는 자랑스런 이름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의 가슴에도 이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습니다. 열심히 묵묵히 일만 해온 이 땅 모든 아버지의 가슴에, 받기만 해온 부끄러운 이 땅의 아들 딸들이 부끄 러운 사랑의 메시지-카네이션을 바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빠 힘내세요.”
신현식/ 서울시 양천구 목1동 목동아파트·연세대 대학원생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