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문인들의 민심기행
1997년01월30일 제 143호 한겨레21

대구/ “지 맘대로 하라카소”

방현석/ 소설가

대구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동성로를 찾은 것은 18일, 토요일 오전이었 다. 그러나 TK민심의 풍향계라는 동성로의 다방과 상가 몇 곳을 기웃거려 봤지만 시국담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구백화점 근처의 한 식당에 들어가 50대의 주인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요즘 장사 별로죠?”“지금겉은 때 잘 되는 장사 있시머 거기 이상한 거 아인교?”대답이 덤덤했다. 딸려나올 법한 엄살이나 시국담도 없다.


동성로에서 겪은 혼란스러움

“노동법·안기부법 때문에 난리들인데 여기 오는 손님들은 뭐라고 하나 요?”

잠깐 의아스런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고나서 그는 서울에서 왔느냐고 되물 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슬쩍 웃었다. “말 안해요, 이제. 옛날 에야 그 사람(김영삼) 욕도 많이 해쌌더니만 인자는 그런갑다 하고 말지 말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내야 잘 모르지만 대구사람들 그 사람한테 정 떨어진 지 오래된 거 아입니까?” 그의 말에는 냉소가 서려 있었다. 그리 고 일어서며 덧붙인 그의 말 한마디는 대구를 떠나올 때까지 나를 혼란스 럽게 만들었다. “박대통령이 살어 있었어면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되도록 내삐리놨겠는교?” 현직 대통령을 ‘그 사람’이라고 부르던 주인의 ‘박 대통령’ 발음은 정확했다. 그가 살아서 아직까지도 대통령을 하고 있어 야 하는 거냐고 묻지는 못했다. 죽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대구사람들은 박정희를 떠올리고 있었다.

2시에 열리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개악 철회를 위한 제2차 범국민 대회’를 기다리다 약국에서 만난 약사도 그랬다. “대구사람들 한번 정 주면 끝까지 줍니다. 식당에 가도 가던 식당 아이머 안 갑니다. 신세계백 화점이 들어왔다가 대백한테 깨지고 안 나갔는교?” 다른 대구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구에서 가장 큰 대구백화점을 대백이라고 부르는 약사는 현 대통령과 박정희를 비교했다. 나는 PK에 정권 넘겨주고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당한 것때문에 대구사람들이 현 정부에 대해서 반감을 더 가지는 것 아니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안할 말로 잘못했으면 잡아넣고 사형시키라 이겁니다. 원칙있는 사정을 하면 대구사람들 따릅니다. 빠질 놈은 다 빠지고 지 맘대로 치고, 결국 당한 거는 티케이출신아입니까. 이 나라를 밥 묵고 살만큼 맨들어서 지한 테 정권 넘겨준기 누군데…”

그렇게 대답한 것은 약사가 아니라 약국에 온 다른 손님이었다. 그의 목 소리에는 이씨조선시대부터 권력을 유지해왔고 근대화 과정의 주역이었다 는 이 지역 사람들 특유의 자존심과, 같은 경상도라고 하더라도 전통적으 로 아래로 보아온 부산 경남을 기반으로 한 김영삼정부에 모욕당한 자존 심으로 인한 분노가 함께 서려 있었다. 이번 날치기 사건에 대해서 어떻 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손님은 손을 내저으며 약국을 나갔다. “원래 지 맘대로 하는 사람 아입니까. 지 맘대로 하라커소.” 그들에게 노동법 과 안기법의 개정내용은 관심 밖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대구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대구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대구사람들이 아직 도 잊지 못하는 그 박정희정권 시절, 민청학련사건으로 오랜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뒤 대구에서 민주화운동을 계속해온 이강철(50)을 찾은 것은 그 혼란스러움 때문이었다. “지금 김영삼정권 퇴진하라는 구호에 동의하 는 사람들이 전부 민주주의를 좋아해서 그렇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과, 또 우리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김영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서울에서는 한 칠 대 삼 정도 된다면 대구는 그 반대로 보면 됩니다. 삼 대 칠 입니다. ”

이해하기 어려운 박정희 향수에 대해서 묻자 그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 다. “옛날에는 한 다리만 건너면 누구나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을 지 경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야 누구누구를 안다 하는 게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았지만 경찰이나 검찰을 포함해서 공무원들은 진급이 잘 됐지요 . 지금은 그게 다 피케이로 넘어가니까… 공무원들이 어떻게 보면 티케이 정서를 선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래 권력을 차지하는 동안 유력한 사람 들은 다 권력에 편입시켜버려 덕망있는 인사도 남아 있지 않고… 어려운 일이지요.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박정희나 박태준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겁니다.”


시국성명 내면 엉뚱한 이들이 좋아한다?

함께 만난 이 지역의 대학교에 적을 둔 교수는 아직 시국성명을 내지 않 았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우리가 성명을 내면 여기서는 우리와 같은 생 각을 가진 사람들보다 김종필을 지지하는 그런 사람들이 더 좋아하니까… 구더기 무서워서 장 안 담글 수도 없고.”

이강철씨는 제대로 된 정권교체가 한번은 이루어져서 지금과 같은 지역주 의가 청산되지 않는 한 대구에서 박정희 향수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구대학교 홍덕률 교수의 생각도 비슷했다. “중앙권력의 산 출지였기 때문에 스스로 권력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상적인 문제도 중앙권력에 기대어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지요. ”

예정된 2시를 조금 넘겨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를 꽉 메우고 ‘제2차 국민 대회’가 열렸다. 2천여명의 시민과 노동자, 학생이 모인 집회의 열기와 분위기는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주장도 다르지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부지런히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절반 정도의 사람들 은 두 법안이 백지화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절반은 대답을 회피 하거나 어쨌던 빨리 수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행인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던 ‘대구시민범대책회의’의 간부에게 시민들 의 호응도를 물어봤다. “6·29선언 받아낼 때보다 더 좋심더. 여기 사람 들 보수적이라서 데모하면 억수로 싫어하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달라요. 옛날같으면 주변 상인들이 설쳐서 여기서 서명도 제대로 몬 받습니다.” 시민들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꼭 노동자들과 시민단체에 대한 지지는 아니 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40대 이후는 정 말 어렵습니다.” 범어동에서 동성로까지 태워다 준 택시 운전사와 똑같 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것은 이번 투쟁을 주도하는 20∼30대는 분명히 구세대와 다르며, 20∼30대가 앞으로의 대구를 이끌어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퇴진! 김영삼”“해체! 신한국당” 두시간 가까운 집회를 마치고 일어 선 참석자들은 서울과 다름없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행진에 나섰다. 행진 대열이 지나간 대구백화점 근처에서 만난 중소기업체 사장에게 시위대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대구경제의 50% 이상이 섬유 산업인데, 섬유가 안 되지 않습니까. 더러 위천공단에 희망을 걸고 있는 데 나는 큰 기대 안 합니다. 부산 경남의 반대를 이기고 된다고 해도 얼 마나 대구 경제에 도움이 될지… 솔직히 희망이 없습니다. 정말 데모하고 싶은 건 우릴낍니다.”

그는 더이상의 질문을 막았다.

방현석/소설가
61년 울산에서 남.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창작집 `내일을 여는 집', 장편소설 `십년간'

©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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